나의 이야기

길고도 긴 밤

작곡가 지성호 2019. 2. 17. 21:11


LA에 요즘 연일 비가 내린다

굵은 비가 사납게 내리다가 가끔 햇빛도 비추다가 우리나라 한 여름 장마철과 다를 바가 없다

오늘 점심참에 잔뜩 찌푸린 하늘이지만 설마 비가 내리랴 싶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네 산책에 나섰다가 쏟아지는 비에 옷을 적셨다.

 


처남집 근처에 있는 성공회

돌로 된 교회의 위용이 근방에서 압도적이다.

오늘은 심란한 마음에 들어가 조용히 기도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닫힌 출입문이 한치 빈틈이 없다

그러고보니 카프카의 성채처럼 열린 성문을 찾아 돌고 돌아도 찾지 못하는 견고한 요새같기도 하다

작은 시련의 돌부리에도 어김없이 무너져 내리는 내 빈약한 마음자리가 참으로 초라하고 궁색하다. 





장모님은 아침이면 휠체어로 침실에서 거실로 이동하신다

제일먼저 처남댁이 출근을 하면 이어서 처남이 나가고 맨 마지막 조카가 학교를 가고나면 집안은 아침의 분주함이 사라지고 깊은 물속처럼 정적이 찾아든다

텅 빈 집에서 장모님은 아내가 챙겨주는 음식과 약을 드시고 딸과 밑도 끝도 없는 대화가 시작된다

그 대화방식은 아내가 어머니의 혼미한 정신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 사돈에 팔촌이며 어머니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떠오르는 데로 조곤조곤 풀어놓으며 뭔가 묻기라도 할라치면 단 답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시다가도 가끔 의식이 환기되는지 대화의 맥락 속에서 연관된 사건을 물어보시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내는 신이나 이야기에 물이 오르면 장모님은 어느새 고개를 꺾은채 깊은 잠에 빠지신다

그러다 흠칫 몸을 떨며 놀라시기도 한다

이 순간, 아내는 나에게 장모님이 혹 졸다가 휠체어에서 떨어지실까봐 지켜보라 이르고는 아주 잠깐이지만 쪽잠을 잘 수 있다

애를 키울 때 애가 잠이 들어야만 쉴 수 있는 엄마의 상태와 똑 같다.

 

나의 일상은 한국보다 더 단조롭다. 그저 처남집의 이층 침실과 아래층 식탁을 오갈뿐이다

할일이 없는 나는 침실에 누워 베개를 높이 고이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아래층에서 아내가 장모님과 나누는 대화 소리를 그저 들을 뿐이다. 그저 듣는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아내가 주방에서 달그닥달그닥 설거지하는 소리를 들으며 신문을 읽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구조중 가장 수동적인 감각기관이 귀이다. 귀는 눈처럼 커플이 없기 때문에 들려오는 소리를 좋든 싫든 들어야 한다. 그러나 다행히 의식을 집중하지 않으면 소리는 있으되 들리지 않는다.

말하자면 눈꺼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 중이(中耳)에 있는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라고 알고 있다

아내와 장모님이 조곤조곤 나누는 대화는 바닷가의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는 소리나 깊은 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차 지나가는 소리처럼 의식되지 않는 백색소음일뿐이지만 거기에는 어떤 음조(音調)가 어려있다.

아내가 어렸을적엔 장모님이 아내를 토닥이며 잠재웠겠지만 이제는 그 엄마가 늙고 병들어 머리 하얀 딸이 엄마를 어르며 잠재운다.

나는 하릴없이 누워 이 소리를 들으며 우리 인생이 갖는 근원적 슬픔에 깊이 잠긴다.

 

처남네 식구들의 귀소가 끝나면 장모님은 표정은 없지만 식탁에 최대한 휠체어를 밀착시키고 식구들이 나누는 모든 얘기에 귀를 기울이신다.

간혹 졸기도 하지만 대체로 집중하시는 편이다.

그로 미루어 이 시간이 당신에겐 좋은 모양이다.

그러다가 10시경에 잠자리에 드신다.

이 시간은 초저녁잠이 많은 아내가 장모님의 손발이 되어 하루 종일 수발들다가 놓여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도 아내의 잠자리를 방해할 수 없어 덩달아 잠을 청한다
 

새벽 130분경이면 한국에서와 같이 첫잠이 깬 나는 아내가 깰세라 어둠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아래층 식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온라인망으로 한국의 뉴스를 읽고 분개하기도 하고 아들네가 올려주는 손자의 모습을 인스타그램으로 보기도 한다. 현대문명이 먼 거리를 상쇄시켜 동시성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불편함이 있다면 이곳이 낮이라면 한국은 밤이라는 시차뿐이다.

이런 나의 새벽일과가 미국에서 광장한 유용성을 갖게 되었다.

요의나 변의가 있으시면 장모님은 침대 곁의 방울을 울리신다.

그러면 나는 쏜살같이 이층으로 뛰쳐올라가 아내를 깨운다. 잠에 취한 아내는 비칠거리며 내려와 어머니의 대소변 시중을 들어야 한다. 나는 불침번 서는 워치독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처남내외는 아내의 미국행을 간절히 원했다.

장모님이 멀쩡한 방에서 넘어져 고관절 뼈가 17조각으로 부러지자 처남댁은 직장을 쉬고 시어머니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그 덕분에 고혈압과 당뇨가 심한 91세 노인이 기사회생하셨다.

재활도 상당히 진척돼 화장실 출입도 가능하셨다.

그러나 빠른 회복에 잠깐 방심하셨던지 다시 넘어져 이번에는 엉치뼈에 두 군데나 금이 가셨다.

그 바람에 누군가 옆에서 24시간 수발을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최악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우리가 도착하자 처남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그동안 억눌렀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어머니의 성정이 깔끔하셔서 요양병원을 극구 싫어하시기 때문에 그런 시설에 어머니를 모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회복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아니라고 거역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처남에게 정말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장모님의 반응을 살폈다.

아내는 거의 울상이었다.

우리가 미국에 있을 시간은 단 2주 동안뿐이다.

92세된 아버지를 한국에 놓고 온 아내와 나는 물가에 어린애를 놓고 온 것처럼 불안한 마음을 한시도 떨칠 수 없다.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다.

그동안에 화장실 출입을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들어가셔야 한다.

장모님은 침묵으로 대응하셨다.

그 긴 침묵을 참을 수 없어 처남, 모든 게 잘 될 거야!” 나는 겨우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날은 모두가 잠 못 이루는 길고도 긴 밤이었다.

 


60먹은 아들 재롱에 즐거워 하시는 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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