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산골살자
“처음에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자연을 통한 감동으로 시도하셨고, 그 다음으로는 예술을 통하여 그 숨은 뜻을 전달하고자 하셨고, 맨 마지막으로 당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오. 그러므로 자연을 사랑하고 그 품에서 사는 생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기품 있는 정신으로 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요.”
언젠가 독서를 하다가 사무치게 가슴에 와 닿는 글귀여서 비망록에 적어둔 부분입니다.
도시적 삶의 권태와 무의미함을 벗어나 산자락이나 들꽃 흐드러진 초원에 주거지를 정하는 것은 에덴의 생활로 돌아가는 믿음의 도약이요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마음과 생활을 향하는 개심의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 사람들은 편리를 최상으로 여기지만 자연을 누리는 것이 편리와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동안,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시골생활을 동경해오다가 미련 없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모악산 자락에 손수 집을 지어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달콤한 고요 가운데 거하며, 장엄한 일출과 애잔한 일몰을 철없이 조망한다던가, 대원사의 저녁종 소리에 오래도록 귀 기울이며 , 조금은 쓸쓸하지만 실답고 감미로운 일상을 누리고 삽니다.
이러한 저를 바라보는 도시 사람들은 우선 부러움을 표시하면서도 여러 가지 궁금증을 토로합니다. 외진 곳이 무섭지 않느냐, 외롭지 않느냐, 과연 투자전망이 있느냐, 자녀 교육은? 등등 온갖 시골에 살수 없는 이유들을 열거하기 시작합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이것저것 헤아려 보니 손해 보는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은> 현대인의 합리적 계산법이 자기들의 꿈을 저어하는 것입니다.
소박한 자연의 생활을 즐겼던 <HD 소로>는 그의 저서 <숲속의 생활>에서 삶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음식물과 입을 옷, 그리고 들어가 살 집 을 장만하면 되는데도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온갖 물질들을 소유하고자 자신의 진정한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처럼 얽매여 평생을 허덕이며 지내게 된다는 것을 지적 하였습니다. 쓸데없는 탐욕과 이기심에 매달리다 보니 평상심을 잃어버리게 되고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언제나 선택은 망설임을 동반하지만 소유를 쫓아갈 건가, 자유를 쫓아갈 건가의 문제도 역시 어려운 결단입니다. 그러나 세네카가 말했듯이 우리 인간은 돈벌이를 위해서는 상당히 위험한 곳에 뛰어들며, 또 명예를 위해서는 분골쇄신하지만, 자유를 누리거나 유유자적한 생활에는 참으로 인색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꼭두새벽부터 밤늦도록 벌고 쓰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하여 애를 쓰느라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도 보지 못하고, 심금마저 버리게 되니 참으로 남루한 흥정입니다.
그래서 잠언의 말씀은 언제나 저를 깨우쳐 줍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잠.30:8)
덧 붙여,
<그 나머지 시간은 참으로 자유롭게 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