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카를로스5세 궁전

작곡가 지성호 2016. 1. 22. 23:56

                             

                                      알히베스 광장


카를로스5세 궁전을 향한다.

확 트인 널따란 알히베스 plaza de los aljibes 광장이 나온다.

확인 할 수는 없으나 지하에 대형 저수조가 묻혀 있다고 한다.

한편에 고등학교학생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나왔는지 하는 행동거지가 왁자하니 거침없다.  

간간이 비가 내리고 추운 날씨지만 "노 프로블럼!" 

역사의 무게가 오늘 날씨만큼이나 무거운 이곳에 저들은  너무도 발랄하구나

 




지금까지 보아온 황토 빛 알카사바와 전혀 다른 분위기인지라 좀 생뚱맞게도 보이는  우람한 위용의 석조건물이 카를로스5세 궁전이다.






                              와인의 문






이 궁전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와인의 문을 거쳐야 한다.    

밖에서보다 안쪽에서 보여지는 문 주위가 섬세하게 공들인 치장으로 더 화려하다

 말굽편자 아치를 에두른 벽돌이 와인 빛이라서 와인의 문(fuerta del vino)이라 불리나?

무언가 로맨틱 한 사연이 있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옛날 군인들이 와인을 거래했다는 문이란다






                                     카를로스5세 궁전


출입문 페디먼트위의 천사상이랄지 벽면의 부조에 인물상이 조각되어있는 것이 정의의문이나 와인의 문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우상숭배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슬람문양은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표현이 정교하게 발달했다.

이러한 미적 성취는 아라베스크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슬람 미술의 역사는 식물의 형상을 기하학적 형상으로 변화시킨 역사라고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은 어데서 오나?  당연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신으로부터...


이질감에 잠시 어리둥절하다 장엄한 석주로 장식된 문으로 들어가면 다시 한번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근엄하고 경직된  정방형의 외형과 달리 난데없는 2층 원형의 건물과 이를  받쳐주는 입립한 우람한 열주들의 위용에 입이 벌어진다.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은 그가 신혼여행으로 이곳에 들렀다가 이슬람적 가치에  대항하기 위하여 갑자기 지시된 결과물이라 한다.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을 보고 보편적 인류의 탁월한 가치로 인정하면 될 것을 모든 것을 가진 오만한 자의 눈으로 볼 때는 이게 몹시 빈정이 상했었나보다.

알람브라궁전을 능가하는   궁전을 세우도록 한 지엄한  명령을 수행한 건축가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과 같은 거장들과 작업을 같이 한 바 있다는 페드로 데 마추카 Pedro Machuca이다. 그러나 정작 카를로스 5세는 이 궁전에서 머문 적도 없고 그가 죽은 후에는 완공도 되지 못한 체 흐지부지 미완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르네상스 양식을 띄고 있는 이 건축물은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열주들의 오더가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으로 각각 다르다

1층은 음향효과가 뛰어나 매년 여름철, 그라나다 음악제의 무대가 되기도 한단다.

물론 타래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회상"도 연주될 터이고…….

언젠가는 내 다시 찾아와  이 슬픈 전설의 현장에서

어떤 인위적 장치의 도움없이 심금을 울리는 천상의 화현에 흔연이 젖어드는 한 사람의 청중이고 싶다. 

2층은 미술관 겸 박물관으로 각종 귀중한 유품과 회화작품이 전시되어 있다지만  일정에 쫒기는 가이드는  다음공간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패키지 여행의 한계이다.


나중에 꼬르도바의 메스키다에서도 절실하게 느낀 것이지만 스페인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이슬람과 기독교가 교차한 이 지역에서 두 문화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선적으로 총평하자면 이슬람건축은 겉에서 보면 단순하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그 치밀하고 정교한 디테일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 건축은 겉에서 볼 때는 장식적이고 웅장하지만 실내는 이슬람의 그것에 못 미친다. 그것도 많이....

카를로스5세 궁전에서도 확연하게 확인되는 현상이다

서구의 문화우월주의에 세뇌되어 이슬람문명을 열등하게 생각됐던 그동안의 인식에 일대 혼란이 온다.

따라서 관광 동선을 짤 때, 우리 일행이 했던 것처럼 먼저 카를로스 궁전을 본 다음에 알람브라궁전을 봐야지 반대로 한다면 카를로스 궁전에 많이 실망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카를로스 5세 궁전이 스페인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며 스페인 최고의 왕실 건축물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고 하지만 하필 알람브라 궁전을 2/3나 훼손한  터 위에 세움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는다. 더구나 우열을 한 눈에 비교되게 자리 잡은 것은 제 꾀에 제가 넘어진 실책중 실책이 아닐는지...







여행기를 살펴보면 이 건물을 보통 카를로스5세궁전이라 하지만 간혹 카를로스1세궁전이라고도 한다.

사실 카를로스 1세와 5세는 같은 인물이니 둘 다 맞는 말이다

 이 혼란스러움을 좀 더 따져본다면 다음과 같다.

옛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제후들의 선거를 통해서 선출했는데, 1519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서거하자 스페인의 왕이었던 카를로스 1세를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추대한다.

그가 바로 카를로스 5(1500~1558)이다

그러니까 일국의 왕인 스페인에서는 1세이지만 신성로마제국에서는 5세가 되는 셈이다.

카를로스5세는 요즘말로 금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이다.

카를로스는 외가로부터 스페인을 물려받았다.

그의 외할머니가 바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시킨 이사벨라였다.

뿐만 아니라 합스부르크가의 왕자인 아버지로부터는 네덜란드, 나폴리, 시실리 등을 유산으로 받는 등 당시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섭렵하였고 그 유명한 무적함대를 만들어 스페인 최고의 전성시대를 구가한 황제이다.

 


                         카를로스5세


그러나 호사엔 마가 따른다는 말처럼 그의 상속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위 그림에서와 같이 주걱턱도 유산으로 받았는데, 이를 남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은 합스부르크 턱(Hapsburg jaw)이라 하며 재미있어한다.  

1516년에서 1700년 사이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영토적 욕심과  흔들림없는 공고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이 성행했다한다.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 시기에 치뤄진  11차례의 결혼 가운데 9쌍이 사촌지간 혹은 삼촌과 조카 사이에 이루어졌단다.

 

주걱턱의 유전은 후대에 갈수록 심해져 나중에 카를로스 2(1661~1700)에 이르러서는 턱의 비정상적 돌출과 비대해진 혀로 음식을 씹지 못할 정도였고 말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자식을 낳지 못해 후계를 잇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단다.


 


합스부르크 왕조 근친혼의 저주는 결국 유럽의 패권을 부르몽  왕조에 바통을 넘겨주고 몰락하고 만다.

전쟁이나 반란이 아니라 대()가 끊겨 몰락한 보기 드문 예가 되겠다.

이런면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은 참으로 현명한 대처를 했음을 알수있다.

한곳에 수백년을 자리잡아 집성촌(集姓村)을 이루어 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발생가능한 열성유전자 끼리의 결합을 예방하기 위해서 백리내 불혼을 당연시했다집안의 가격(家格)이 높을수록  먼 곳에서 사는 배우자를  선호했다. 이에 반해  아래 것들은  통혼권의 범위가 좁아서한마을이나 가까운 이웃과 통혼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