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난에 대한 반응

작곡가 지성호 2018. 2. 7. 18:15

 

영하 십 몇 도의 추위가 혹독한 나날이다.

내 어릴 적, 윗목에 놓아둔 물대접이 꽁꽁 얼고 얼음 끼친 김치보시기가 밥상위에서 미끄럼을 타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을 향해 간밤에 거지가 얼어 죽었다거나 아니면 문둥이가 얼어 죽었다는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을 전하곤 하셨다. 그 말씀의 이면에는 이 추위에 비록 빠듯하지만 얼어 죽지 않고 잠잘 방과 끼니를 꾸려 나가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자위도 없는 게 아니겠지만 그보다는 너희들도 어머니 말 잘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는 을러댐이 보다 확실한 의도였다고 생각된다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목숨에 위기감을 준다.

 

                              혹한에 현관 유리창이 터져 임시변통으로 시트지를 붙여놨다


201824일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일요일 아침 세수를 하는데 물발이 어째 약해 좀 이상타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교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결혼식 참석차 청주에 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설거지하는데 수압이 너무 약하니 수도좀 점검해보라는 말이었다. 아내도 똑같이 느낀 이상이었다

마당에 나가 계량기를 확인해보니 물을 쓰지 않는데도 바늘이 제법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관로가 터져 상당한 양의 물이 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눈앞이 다 캄캄해졌다

마당을 가로질러 집안에 들어가 벽이며 바닥이며 콘크리트 속을 신경망처럼 퍼진 배관 속에서 누수의 원인과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숲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운 일이고, 설령 찾아낸다 하더라도 천지가 다 꽁꽁 얼어붙은 이 추위에 방바닥이나 벽을 들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우째 이런 일이...”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면서 보일러실, 목욕탕을 비롯해 온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봐도 누수의 흔적은 없었다

계량기의 바늘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 약한 곳이나 연결부위가 터져 누수된 물이 바닥 깊은 곳으로 흔적 없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짐작됐다. 차라리 밖으로 물이 스며 나온다면 다행인데 최악의 상황이었다

누수탐지 전문가를 불러야 하겠지만 이미 해거름인지라 그럴 수도 없고 수도꼭지마다 귀를 대보니 몇 군데 의심이 가는 곳이 있기는 했다

생각다 못해 가장 믿을만한 분에게 전화를 해보니 요즘 수도 동파 때문에 일이 밀려 내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단다

이미 오랜 시간 상당한 양이 누수됐을터인데 임시조처로 계량기 메인밸브를 잠그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물이 안 나오면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고 취사도 불가능하다

다행히 전기판넬 장판인지라 잠자리는 어찌 해본다 하더라도 구십이 넘으신 아버지도 계신데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없었다

뒷목이 다 뻐근해지고 잠도 오지않았다

다음날 아침, 그동안의 오랜 인연으로 순서를 무시하고 K사장님이 우리집부터 오셨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에 제주도에 사는 제자의 어머니가 어제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카톡을 타고 전달됐다

머피의 법칙이 작동되나? 좋지 않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황망함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상주는 나중에 찾아보도록 하고 급한 불부터 꺼야했다.



                            드디어 계량기의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집의 구조가 몇 번의 증축으로 수도 배관이 미로처럼 엉켜 이곳저곳 청진을 통해 의심되는 곳을 햄머드릴로 관을 노출시켜봐도 원인을 찾아낼수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각종 공구들이 동원됐고 나중에는 대형 햄머드릴로 바위처럼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을 30cm 이상 파헤쳐내는 사투끝에 엘보에서 엑셀관이 아예 빠져버린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수십 번을 마당을 가로질러 계량기를 확인해야 했고 필요한 부속을 구입하기 위해 철물점을 다섯 번이나 다녀와야 했다. 아침에 시작한 일이 밤8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집안은 한바탕 전쟁을 치룬 듯 엉망이 되어 어떻게 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버력을 치우고 먼지를 쓸어내고 닦고 하느라 꼬박 하루를 소비했다.



                     격전의 흔적중 한 곳. 날이 풀리면 타일을 붙여야한다

 

불확실성이란 삶의 본질적 조건이다

우리 삶의 구체성 안에는 예기치 않은 환난이나 질병들이 일상의 평온을 파괴해버리고 불현 듯 찾아든다

이러한 대책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은 당황하면서도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는가? 원인을 따져보고 해석하려 든다

이번 일만해도 그렇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항상 잘못된다(Anything that can go wrong will go wrong)”는 말처럼 재난은 약점을 귀신같이 파고든다

요즈음 제천이나 밀양의 화재사건만 봐도 사람들은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원인이 규명돼야 책임소재도 가려지고 그 반성위에 보상이나 대책이 세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재난의 원인을 대통령에게 돌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신의 진노로도 해석한다

재난이 발생하는 순간에도 사소한 우연이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이층에 있었기 때문에 죽고 어떤 사람은 3층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 나온다

그렇다고 살아나온 사람이 착하고 선한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일수도 있다.

그때마다 여기에 대한 반응과 해석도 가지가지다

운으로 돌리기도 하고 신앙의 응답으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교회 강단에서는 기적과도 같은 응답의 결과가 많이 소개된다. 반면에 교인도 똑같이 사고를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사례는 소개되지 않는다

드러난 현상에는 신학자조차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 한 영역이 있다

결국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신앙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지영이 그의 소설 <즐거운 나의집>에서 얘기한바와 같이 자극과 반응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성장과 행복은 그 반응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어차피 벌어진 일, 내가 아무리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해도 상황을 1mm도 바꿀 수 없다면 침착한 대응과 담담한 마음가짐이 여러 면에서 유익이 될 것이지만 문제는 이게 말처럼 쉽지않다는 것이다

나의 한계이자 인간의 한계가 아닐 수 없겠다

불확실성의 궁극은 죽음의 도래일 것이다

그때가 오면 도리질치지 않고 낙엽이 떨어지듯 그렇게 소리 없이 순리에 순응할 수는 없는 것인가

오늘 모처럼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난데없는 노동에 이곳저곳 쑤시는 근육을 달래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