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년만의 LA 방문

작곡가 지성호 2019. 2. 12. 20:55

라성에 사시는 장모님이 심각한 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딸을 몽매에도 그리워하신다는 말을 진즉 들었지만 학기 중이라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모시는 92세 드신 시아버지와 사고를 당한 91세의 친정어머니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제야 가까스로 미국을 향했다.

문제는 나였다.

길 떠나기 전에 다가오는 524일부터 26일까지 3회 공연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올라가는 내 오페라 <달하 비취시오라>의 개작과 보안 작업을 끝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을 온통 이 일에 매달렸다. 막판에는 쪽잠을 자가면서 죽을 똥 살 똥으로 작업을 마치고 겨우 악보를 넘길 수 있었다. 이제 나 없어도연습일정은 차질 없이 오페라단에서 진행할 것이다.




악보를 넘기고나니 이번에는 나 없어도교회의 예배는 계속돼야 하기 때문에 3곡의 찬양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고 파트 보까지 넘기느라 금, 토욜을 역시 쪽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수면이 부족하면 입술에 열이 오른다. 비몽사몽간에 여기저기 잘 부딪히기도 한다. 안간힘으로 의식을 집중해야한다. 사이사이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제자가 부탁한 악보도 챙겨야 하고, 대학원 종합시험 출제도 해야 하고, ‘나없이는 안 되는회의도 참석해야하고...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그러다보니 미국 갈 준비를 할 겨를이 없어 이 또한 맹렬하게 집중하여 겨우겨우 여행 보따리를 꾸릴 수가 있었다.

정말이지 내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내가 어딘가 쓰임새가 있다면 살릴 것이요. 그렇잖으면 데려갈 것이다.

여행준비 중에 내가 느낀 게 있다. ESTA 신청이며 비행기 티켓 팅이며 공항 체크인도 그렇고 모든 게 전산화되어 끊임없이 비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요구하는 일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막판에 보딩게이트 앞에서조차 핸드폰을 미국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절차에서 어떤 일인지 다음으로 넘어가질 못한다. 비행기 탈시간은 촉박한데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과 연락이 끊어진다. 할 수 없이 염치 불구하고 알만하게 보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 고개를 젓는다. 몹시 당황스런 가운데 이런 일에 능해 보이는 두 아가씨에게 부탁을 했다. 평소라면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다급하니 어쩌랴! 원인은 아주 작은 글씨의 매뉴얼에 적힌 *가 노안의 내겐 마침표로 보였던 것이다.

어이구!




다행이 비행기는 에어버스인지라 좌석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장거리 여행을 견딜만하였다.




그 긴 시간을 잠못들어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의식은 말똥말똥하였다. 공항에서 급한 전화가 와서 와이파이가 터지는 엘에이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문서를 보내야하는 일 때문이었다. 이 일이 잘못 방향을 잡으면 엄청난 혼란이 온다. 6월에 있을 전주고등학교 개교100주년 기념음악회 건이다. 그러나 들고 온 태블릿 피씨를 꺼내고 독서 등을 켤까하여 둘레를 돌아보니 어느 곳도 불이 켜진 곳이 없었다. 기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용기가 나지 않아 주저하다가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닌지라 눈을 쏘는 듯, 강렬한 독서 등을 켜고 자판을 두들겼다.

그리고는 장모님댁, 잠이 깨어 거실에 나와 시계를 보니 여기시간 새벽 130!

한국에서 내가 일어나는 바로 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