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이 육 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린 시 중의 하나이다.
난 교과서에 실린 모든 시들을 암기하고자 원 했으나 암기력이 따라가질 못해 다 외우진 못했다.
그러나 이 미완의 시도가 내 창작생활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당시 시어(詩語)가 가진 무한한 깊이와 상징성을 온전하게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심금을 울린 정서적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를 음미 할 때마다 지사(志士)적 불굴의 의지와 묵시록(黙示錄)적 염원 같은 것이 주는 뭉클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시의 공간성과 시간성이 어떤 지리적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했었다.
까마득한 시원에 펼쳐진 광막한 광야는 과연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 같은 것이다.
대학 다닐 때는 이제는 작고하신 인문대의 존경하는 교수님의 영향으로 시에 몰입하던 때도 있었다.
이 분은 미당 선생의 상리과원(上里果園)이라는 긴 산문시를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암송하여 우리를 감동하게 하였었다.
이 분이 미당 시집(詩集)을 선물로 주시면서 꼭 읽어야 할 시 수십 편을 표를 해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다'라는 시였다.
바다
서 정 주
귀 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위에
무수한 밤이 往來하나,
길은 恒時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반딧불만 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울음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속에 숨기어 가지고......너는,
無言의 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낱 꽃 같은 心臟으로 沈沒하라.
아-스스로이 푸르른 情熱에 넘쳐
둥그런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 깊이 위에
네 구멍 뚫린 피리를 불고....청년아.
애비를 잊어 버려,
에미를 잊어 버려,
兄弟와,親戚과, 동무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
알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沈沒하라,沈沒하라,沈沒하라!
오-어지러운 心臟의 무게 위에 풀잎처럼 흩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東西南北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國土가 있다.
알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가뜩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방랑을 꿈꾸던 내게
“알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沈沒하라,沈沒하라,沈沒하라!”는 외침은 얼마나 가슴 뛰는 명령이었던가!
그러나 난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서 침몰을 두려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지만 떠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 십 년이 흘러 아메리카를 갈 수 있었고 광막한 광야를 끝없이 달릴 수 있었다.
주로 아메리카의 서부 지역을 떠돌았지만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곳이 바로 데쓰 벨리였다.
데스밸리는 미 서부 대평원의 협곡지대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 남동쪽의 캘리포니아 지역과 네바다 일부에 걸쳐져 있는 모하비 사막의 북단에 위치한다.
데쓰 벨리는 미국본토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이다. 남북으로는 장장 200km(우리 나라의 500리)를 뻗어있고,동서로는 2,000m가 넘는 산들이 평균 15km의 폭을 사이에 두고 장성을 두른 기이한 지형이다. 이 계곡의 가장 낮은 지점은 해면 아래 86m이니 이 협곡의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 짐작이 간다.
대부분의 지역이 미국에서 가장 뜨겁고 건조한 지역이란다.
일년 내내 강수량은 50mm 정도라니 얼마나 건조하고 척박한 지역인지 알 수 있다.
이토록 건조한 이유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장벽이 되어 태평양으로부터 오는 비를 비롯한 모든 수분을 가로 막기 때문이란다.이 계곡에는 식물이 살 수 없어 뜨거운 열을 흡수하지 못하고 대류하지만, 계곡때문에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데스밸리 안에서 돌게 되면서 여름에 50도를 넘는 날이 다반사란다. 데스밸리가 기록했던 최고 온도는 화씨 134도(섭씨 56.7도)라니, 완전 사우나 수준이다.
본래 주인인 인디언의 땅에 백인이 최초로 이곳을 찾아 온 것은 1849년 골드러쉬 붐을 타고 금광을 찾아서 49명이 탐험을 한 것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한다.
엘 도라도(El Dorado)의 꿈을 안고 계곡을 찾았으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이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계곡을 어렵게 탈출한 사람들이 뒤돌아보며 소리쳤단다. “죽음의 계곡이여 안녕!” 이때부터 데스밸리(Death Valley)가 됐단다. 군에 갔다 온 한국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인 "내 다신 이쪽을 향해 오줌을 누지 않겠다" 는 심정과 다를 바 없겠다.
그 뒤로 이들은 전설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전설의 주인공들을 '잃어버린 금광꾼(lost 49ers포티나이너스)’이라고 부른단다.
2012년 2월 1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루 종일 달려 론 파인(Lone pine)에 땅거미가 질 때 쯤 도착했다.
Lone pine이면 외로운 소나무 라는 뜻 아니겠는가?
그래 그런지 주변이 막막하고 적막한게 꼭 시즌이 아니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눈덮힌 거대한 산맥에 석양빛이 사위는 숯불처럼 애잔하게 스러져 가고 있다.
정지된 무겁고도 허허로운 풍경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다.
사진에서 보이는 흰 눈을 이고 선 산이 휘트니산(Mount Whitney)이다.
미국 전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알래스카 산맥의 매킨리 산(6,194m)이지만, 본토에서 가장 높은 곳은 휘트니 산(4,418m)이다. 등반 신청자가 많아 매년 3월에 예약을 받고, 4월에 추첨을 하여 하루에 일정 숫자의 등산객만 입장시킨단다.
Overnight Use (1박 2일 산행) : 60 명 / 하루
Day Use ( 당일 산행) : 100 명 / 하루
그러니까 이 넓은 산에 하루에 총 160명만 입장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이익이 된다면 다른 나라는 사정없이 파헤쳐도 자기나라 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아낀다.
좀 떨어진 숙소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론 파인의 식당을 찾아 나섰다.
론 파인은 서부개척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어 어디서 총잡이들이 말을 타고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좀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들어서니 사방 벽에 존 웨인 같은 서부 영화의 주인공이나 장면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알고 보니 이곳 앨러바마 힐즈(Alabama Hills)는 헐리웃 서부영화의 대표적 촬영 장소란다.
뿐만 아니라 글레디에이터(Gladiator)나 아이언 맨 의 촬영지도 이곳이란다.
결코 싸지 않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포크를 놓았다.
아무거나 잘 먹으면 좋으련만, 대접해 주는 손길에 미안 한 마음 그지없다.
어둑신한 무렵 외떨어진 2층 숙소의 긴 복도를 지나 객실 문을 여니 썰렁한 냉기가 고여 있다.
히터를 튼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공장의 기계같이 요란하다.
오늘 밤 숙면은 기대할 수 없겠다.
2012년 2월 19일
오늘도 날씨는 기막히다.
기온은 많이 내려가 우리나라 초겨울 날씨 처럼 쌀쌀하다.
데스벨리 입구에서 알렉스 내외분을 뵐 수 있었다.
알렉스라 해서 세련된 미국교포 분을 연상했었는데 시골장터에서 마주친 동네 형님처럼 편안한 분이시다.
알렉스께서 직접 제작한 TEAR DROP . 이 미니 켐핑카가 이번 여행에서 얼마나 유용했던지.......
알렉스 님의 손재주- 그 치밀성을 보여주는 부분들.
이건 공장제품이 아닌 당신 손으로 뚜닥 뚜닥 만들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 감?
이 분은 여행의 일상화, 여행의 생활화를 실천하시는 분이라 이런 경지에 오르셨나 부다.
사실 여길 오게 된 인연도 이분 덕이다.
알렉스 님은 특히 데스밸리를 좋아 하신단다.
데스밸리의 초입. 이 고개를 내려가면 데스밸리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절대의 고독이 절대의 침묵으로 정지 된 곳
얼마나 뜨거운 곳이면 지명이 스토브 파이프 일까?
미국사람들의 작명솜씨는 역사가 일천해서 인지 즉물적이고 실용적이다. 간혹 황당할 때도 있다. 사람이름도 많고....
그들이 말하는 개척자들의 -본래는 침입자이겠지만- 불굴의 정복의지를 부추기는 충동질로 읽힌다.
우리나라 사람같으면 이런식으론 명명하진 않을 것이다. 히말라야 기슭에 사는 네팔리들과 티베탄들이 짓는 이름속에는 자연에 대한 외경과 신심들이 묻어난다.
여기서 부터는 해수면과 같은 같은 높이란다.
어제 밤 숙소는 추워서 밤새 굉음을 내는 전기 히터를 틀고 선잠을 잤는데
여기는 여름이다.
샌드 듄(sand dune)에서 사막의 고독을 호흡한다.
황야를 휘도는 자동차 길이 절대적 정적의 밀도를 더한다.
1881년, 지금의 Furnace Creek 부근에서 유리와 비누의 원료인 붕사가 발견되자 William Coleman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공장을 세우고 광석을 가공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이곳 Death Valley에서 생산된 제품을 시장에 내다 팔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철도역인 Mojave역 까지 무려 약 165마일(275km)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리 수로 700리의 먼길 아닌가 . 보통 사람 같으면 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여건을 이 친구는 궁리 끝에 20마리의 노새를 한 팀으로(Twenty Mule Team)구성하여 제품을 Mojave로 이송하기로 했단다.
그럼 이 어처구니 없는 계획은 성공했을까?
놀랍게도 깔끔하게 성공했단다.
개썰매 처럼 줄줄이 엮인 20마리의 노새들은 10동안 내달려 Mojave역에 무사히 제품을 수송할 수 있었다 . 이후로 이 "20마리 노새팀은 "한낮 기온이 50도를 넘나드는 극한 지대를 왕복 20일에 걸쳐 계속해서 광산물을 수송했단다. 기록에 의하면 1883년 부터 1889년 까지 노새들은 약 2천만 파운드의 붕사를 실어 날랐고, 이 기간 동안, 단 한마리의 노새도 죽지 않고, 단 한대의 마차도 부서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믿기지 않는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위 사진은 Twenty Mule Team이 당시에 끌던 Wagon의 모습이다.
서부개척자들의 불굴의 투지를 보는 것 같았다.
Twenty Mule Team이 뽀얀 먼지를 날리며 내달렸을 황야. 숨가쁜 노새들의 발굽소리와 째찍소리를 듣는 듯 하다.
Furnace Creek Ranch의 오아시스....
중동지방의 오아시스와 다를 바 없다.
Zabriskie point
원래 여기에 호수가 있었나 보다. 호수의 이름은 Furnace Creek lake.
그런데 이 호수가 5백만년 전에 메말라 버렸단다.
짐작도 안가지만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한다.
이 기기묘묘한 지형은 호수에서 흘러나온 침전물들로 형성되었다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황금빛 물결치듯 구비구비 굴곡진 언덕은 무어라 표현할 길 없다.
Artst’s drive and palette
화가의 팔레트라니 미국사람들 다운 명명법이다.
이렇게 불리는 이유가 있다. 이 지역은 석회석 지대란다.
여기에 화산이 폭발하여 다량의 화산 파편이 퍼지면서 쌓였었나보다.
숱한 세월동안 화학 작용과 풍화작용의 조탁으로 화가의 팔레트처럼 다양한 색상이 어우러진 지형이 됐다는 것이다.
빨간색과 분홍색은 철성분이 산화한 것이고 망간은자주색을 만든다고 한다
정오무렵이라 그늘이 없어 색채의 음영이 더 드러나지 못함이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