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70

한 해를 보내며......

올해도 이제 막바지다. 오후 5시면 벌써 모악산 자락에서 어둠이 몰려와 동네를 삼키기 시작한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섬뜩한 냉기는 집집마다 서릿발 같은 위리안치를 쳐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킨다. 배고픈 길냥이만 도둑처럼 돌담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언제나 이 시간이면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으로 차례차례 문단속한다. 하루의 빗장을 거는 것이다. 12월 메모난을 살펴보니 해야 할 일이 두 건만 남았다. 하나는 내년을 온통 이 일에 매달려야 할 작곡에 관한 계약 건이고 하나는 송구영신의 연례적 일정이다. 이렇게 2020년도 서서히 빗장을 걸 시간이 되었다. 올 한 해의 나를 돌이켜 보건데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은 소나무를 전지하다가 가지가 부러져 5미터 아래로 추락한 사건이다. 다행히 정신 줄을 ..

나의 이야기 2020.12.29

책을 버리다

한 때, 만권당(萬卷堂)을 꿈꾸면서 한 권 한 권 사 모은 책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살았습니다. 바라 볼 때마다 부자가 곡간에 가득 쟁여진 쌀가마를 바라보는 심사가 이러려니 하면서 말입니다. 3십년, 4십년 넘은 묵은 책들을 열흘 전쯤 1톤짜리 용달차가 두 번에 걸쳐 실어갔습니다. 누렇게 책갈피는 갈변되었고 세로로 두 단 씩 작은 활자로 빼곡히 채운 글씨를 더는 읽을 수 없는 노안이 되었음을 진작 알았지만 버리지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책에 따라서는 사연도 더깨더깨 쌓여있는 손때 묻은 책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은 너무 욕심나는 책이었지만 우리 세 식구가 한 달을 좋이 먹고도 남을 쌀값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가격인지로 들었다 놓았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그만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당시 비싼 하..

나의 이야기 2020.12.21

정신병동에 갇히다

교회 갈려는 준비로 한참 분주한 시간에 94세 드신 아버님께서 아침을 드시면서 어눌한 말투로 하시는 말씀이 내 가슴에서 “쿵”하는 소리로 반향 한다. 전기면도기로 수염을 깎다가 면도기를 떨어트렸단다. 올 것이 왔구나! 3년 전이던가, 가벼운 뇌경색으로 병원에 한 일주일 입원 하셨는데 검사결과 뇌신경이 교차하는 정수리 부분 대동맥에 꽈리가 생겼단다. 노령으로 뇌수술을 않기로 결정하고 집에서 약으로 잘 관리하라는 주의와 함께 퇴원 하셨다. 그것이 또 도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평일이면 바로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하지만 하필이면 일요일, 병원에 가봤자 응급실에서 검사만 받으셔야 한다. 아내가 아버지께 여쭤보니 속이 거북하여 혈전을 용해하는 약을 오랫동안 안 드셨단다. 그 중요한 약을 안 드시다니, 기가 막..

나의 이야기 2020.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