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12 일요일
간밤 꼴리마 시간으로 새벽 두시 경에 잠이 깼나보다.
한국에서나 시차가 15시간이 늦은 이곳에서나 변함없이 이 시간대에 잠이 깨는 원인을 침대에서 오랫동안 생각해 본다.
결론은 나의 수면 시간은 시차와 상관없이 잠들고 나서 3-4시간동안이라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오페라를 쓰면서 굳어진 생체리듬일까? 아침 동안에는 좀 몽롱하지만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 완전한 정적과 어둠이 지배하는 곳에서 인위적 난방장치의 도움 없이 담요의 온기만으로 포근한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추운 겨울나라를 빠져나온 나로서는 여간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여기는 호텔 방이 아니고 여염집이다. 길 떠난 자에게 아무리 쾌적한 호텔이라도 어쩔 수 없는 객방인지라 그 낯선 것들이 주는 배타성은 침대의 하얀 시트가 주는 차가움만큼이나 마음 붙이기 어려운 법이다.
림교수의 마음을 생각했다.
자기가 쓰는 침실을 내어주고 매트래스며 이불이며 침구들을 남국의 따가운 햇볕에 온종일 널어 거풍을 했다고 했다. 그래 그런지 베개닛 이나 이불에 햇볕 냄새가 묻어난다. 피부에 닿는 감촉의 그 고실고실함이라니, 쾌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집안에 거울과 빗이 없는 집이 있을까? 남자가 사는 공간이라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림교수 집에는 거울과 빗이 없었다. 우리가 온다고 해서 조그마한 거울을 사 놓았는데 그만 빗을 준비하는 것을 깜빡하여 어쩌나했단다. 우리가 빗을 가지고 다닌다 하니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짧은 머리에 청바지 차림에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다니는 림교수의 외양은 젠더가 모호해 보일뿐더러 근엄하신 대학교수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방금 지리산에서 내려온 영락없는 선머슴아 모습이다. 그의 행동거지도 웬만한 남자보다 호탕하고 거침이 없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하이소프라노라 의심 없이 남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겪어 본 나이 든 사람의 경험으로 말한다면 언뜻언뜻 림교수에게서 섬세하고 결이 고운 여성성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독또라 림수진>
그런 림교수가 안방을 내어주고 자기는 조그만 방, 간이침대에서 잠을 잔다.
조심스럽게 거실에 나와 벽을 더듬어 불을 켜고 태블릿을 펼친다. 잠 못 이뤄 전전반측하기보다는 이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인지 모른다. 이 절대적 시간을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제3의 시간이라 칭한다. 이 시간에 곡을 쓰고 강의준비도 하고 글도 쓴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내 여행기가 길어지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아침 시간, 벌써 햇볕이 높은 담을 넘어 뜰 안에 가득하다. 하늘은 군청으로 맑고 드높다. “댕그렁! 댕그렁!” 먼 곳의 종소리가 내 귀에는 “평화! 평화!” 로 들린다. 뜰로 통하는 거실의 유리문을 활짝 열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서늘한 공기를 호흡하며 난 오랜만에 된장국에 흰쌀밥을 대하니 행복하고, 아내는 이곳에서 생산된 신선한 농산물을 가공하지 않고 삶은 것만으로 아침을 먹으니 행복하단다. 더할 나위가 없단다. 여기 로칼 식품이 유기농이라 하기도 뭐한 것이, 형편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농약이나 거름을 줄 수 있는 돈이 없어 뭐든지 땅과 하늘이 허락하는 만큼만 수확하여 먹으니 이보다 더 완전한 천연식품이 어디 있겠는가!
이로서 조금만 맞지 않은 음식을 섭취하면 고통을 호소하는 아내의 먹는 문제가 해결됐으니 가장 큰 난관이 해결된 셈이다.
< 멕시코의 신선한 아침식사에 흐뭇해 하는 아내 >
교회 가는 길
꼴리마의 간선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이지만 이면 길을 들어서면 주먹만 한 호박돌들이 촘촘히 박혀있어 덜컹거리는 진동이 편하지만은 않다. 차량왕래가 빈번한 곳은 철도 궤도처럼 딱 자동차 바퀴 간격만큼만 두 줄로 포장을 해 놓았지만 대부분은 그마져도 안 돼 있기 때문에 자동차가 많이 상하는 모양이다. 털털거리며 동네를 벗어나 잘 포장된 국도에 진입하면 매끄러운 지면을 속도를 높여 달리는 기분이 아주 썩 좋을 수밖에 없다. 원시림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 국도변에 가끔 눈에 확 띠는 프리마베라, 부겐벨리가 눈부시다.
시내로 진입하자 차가 밀린다. 림교수의 말대로 하면 출근길에 저 멀리 차가 한대 보인다든지
아니면 뒤 따라 오는 차가 있다면 그건 틀림없는 꼴리마식 트래픽이라는데 오늘 대도시의 출퇴근 시간처럼 차가 밀리는 이유는 뭐람? 다름 아니라 오늘 말 축제(Festejos Charrotaurinos Villa de Alvarez)가 열려 교통이 통제되기 때문이란다.
<교회 가는 길 트래픽에 걸리다>
림교수의 어머님께서 먼 이국땅을 살아가는 림교수에게 두 가지 꼭 지켜야 할 계명을 내리셨는데 림교수는 그걸 마음의 돌판에 새기고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그중 하나는 주일성수를 하라는 것이고 나중 하나는 공중도덕을 잘 지키라는 것이란다. 오늘 우리는 이 첫 번째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 꼴리마 남쪽, 구시가지에 자리한 은혜교회(LA GRACIA)를 찾았다.
교회 앞에는 일단의 무장병력이 난데없는 총을 겨누고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지라 별 생각 없이 카메라를 꺼내니 림교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제지하였다. 나중에 설명을 들은 바로는 권위적인 군인들은 이 경우 가차 없이 폭력을 쓴다든지 아니면 체포당할 수도 있단다. 이런 해프닝 끝에 교회를 들어서자 주일학교 학생들이 옹기종기 그룹을 지어 성경구절을 암송하는지 아니면 교사의 선창을 따라하는지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운을 형성하면서 교회 안에 가득하였다. 햇빛이 눈부신 마당에서 이들이 자리한 어두운 쪽은 잘 들여다뵈지 않았지만 아주 열악한 환경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더구나 본당과는 아무런 격벽이 없어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 예배가 진행됐지만 누구도 괘념치 않는 모습이었다. 삼면은 막혀있으나 본당에 진입하는 쪽은 개방된 창고형 교회였다. 더군다나 천정은 철골이 노출되고 벽면은 미장 마감이 덜된 짓다 만 건물이었다. 림교수의 말에 의하면 교회건축은 목사님이 직접 설계하고 교인들의 조력을 받아 목사님의 노동으로 일일이 짓고 있는 건물인지라 완공 날짜를 기약할 수 없단다. 흙바닥을 면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둥도 벽도 짓다 말았네>
멕시코는 독립 직후인 1824년 제헌 헌법에서 카톨릭을 국교로 지정한 카톨릭 국가이고 브라질에 이어 카톨릭 인구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공식적으로 개신교에 대한 차별이나 탄압은 없는 모양이지만 카톨릭 안에서 차별받고 소외받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개신교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한다. 2017년 자료에 의하면 개신교 비중이 9.2%로 나온단다.
이곳 콜리마 은혜교회는 침례교단으로 이런 현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뵌다.
예배순서는 한국과 다르게 긴 광고와 신자들과의 친교로부터 시작되었다. 가까운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먼 자리에서도 일부러 찾아와 남녀노소 불구하고 진중하게 악수를 청한다. 그 진심이 손에서 가슴으로 전달됐다. 찬양은 통기타에 맞춰 유니손으로 불렀는데 익숙한 곡도 있고 모르는 곡도 있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노출하거나 난데없이 튀는 소리도 없었고 선율의 왜곡이나 흩어짐도 없어 깊은 울림이 있었다.
이어 토마스 목사의 설교 시간, 스페인어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 긴 시간 앉아 있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들의 예배를 존중하고 동참한다는 의미로 견딜 만 하였다. 토마스 목사의 억양은 대학 강단과 같이 잔잔했고 진지했다. 앞의 여인은 빨강글씨로 노트를 빼곡하게 채워갔다. 도처에 경청하면서 기록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한국교회에서와 같이 아멘이나 할렐루야와 같은 열광적 응답은 일절 없었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에선 그들의 언어로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반응했다. 내 귀엔 “목사님, 당신의 말씀에 진정으로 공감합니다!”로 들렸다. 어떤 할머니는 휠체어를 굴려 설교단 앞까지 나아가 가장 겸손한 자세로 두 손을 모으고 말씀에 대한 순응을 표현했다. 어쩌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둘레를 돌아보니 그 긴 시간 누구하나 조는 사람도 없었고 자세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감동적이었다. 하나님도 이 가난한 자들의 가장 겸손하고 진정어린 예배를 기뻐 흠향하시리라 믿는다.
예배를 마치고 림교수에게 물어봤다. 예배분위기가 한국의 대학교회보다 더 지적인데 이 교회 구성원들이 다 지식인이냐고. 림교수 펄쩍 뛰며 하는 말이 이곳 사회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소외 받는 못 배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꼴리마에서 대하는 멕시코 사람들은 점잖았고 남을 먼저 배려했다. 마주치면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밝게 인사했다. 미국의 여느 세련된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오래전부터 유전된 그들의 문화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담 미국이나 한국에서 통용되는 멕시칸들에 대한 편견은 어찌된 일인가? 림교수와 진지하게 토론해봄직한 문제다.
<토마스 목사의 설교모습. 모두들 진지하게 경청 하고있다>
숲속에서의 점심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가는 길들이 다 통제된다. 여기를 가도 막히고 저기를 가도 막힌다. 말 축제 때문인데 오늘 행사에 동원되는 말들이 3000마리 정도라니 그 규모가 상상이 안갈정도로 놀랍다. 온 동네 마을의 말들이 다 모여 끝없는 행진을 벌인단다. 그 가운데 한 번 잘못 갇히면 완전히 오도 가도 못하는 딱한 신세가 된단다.
<말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대로를 활보하는 기사들...아들로 보이는 꼬마도 의젓하다>
멕시코 사람들은 놀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 모두 10개의 시로 구성된 꼴리마주는 매 달 서로 다른 시에서 한 달씩 축제를 벌이니 일 년 열두 달 중 거의 매일이 축제인 셈이다.
그 중 가장 큰 축제는 11월에 20일간 계속되는 꼴리마 축제고 이 축제 때는 온통 주 전체가 들썩거린단다. 림교수가 소속된 꼴리마 대학도 이 기간 동안 5일간의 축제 방학을 한단다. 방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결근자와 결석자가 속출하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객들과 언론들이 복지를 확충하자하면 언제나 들고 나오는 단골 메뉴가 남미를 들먹인다. 그래서 한국은 일상이 축제인 이들처럼 행복한가? 멕시코는 물론 많은 모순들이 있지만 이네들은 오늘도 놀기에 바쁘다.
막히면 우회하고 막히면 또 우회하여 겨우 쉬치틀란 이라는 식당이 있는 마을에 도착하였는데 여기는 여기대로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마을을 점령하듯 넘쳐나 주차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트럼프 쇼크에도 아랑곳없이 멕시칸들은 노는 것을 멈출 수 없나보다.
<멀리 만국기 펄럭이는 너머 꼴리마화산이 엄청난 수증기를 뿜어 올리고 있다>
<식당입구에서 판을 벌리는 바베큐 아저씨, 식욕을 자극하는 고기굽는 냄새!>
겉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쉬치틀란 식당을 들어서니 뒤란에 울울한 고목들이 남국의 햇빛을 차단한 넓은 공간에 식탁들이 가득 놓여있고 식탁마다 사람들로 흥청거린다.
노출된 주방에서는 많은 조리사들이 부치고 굽고 써느라 분주하고 서빙하는 종업원들도 식탁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오더를 받고 음식을 나르고 마리아치들은 기타를 쟁그렁거리며 목청 드높여 노래하고 깔깔거리고 먹고 마시는 굉장히 즐거운 잔치판과 같았다.
우리 일행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멕시코 토속음식을 먹는 중에 아까 교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미세스 유니(가명)가 합석했다. 이로서 콜리마주에 있는 모든 한인의 총원집합이 완료된 것이다. 유니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겉보기엔 예쁘고 여린 대학생 같으나 요즘에 보기 드문 당차고 야무진, 한마디로 대단하다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유니는 이곳 꼴리마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공부하던 중에 멕시코 남학생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니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결혼을 성사시킨다. 유니가 스물세 살에 일어난 일이다. 금이야 옥이야 딸내미 잘되기만 온갖 정성을 쏟아 부은 부모입장에서는 기막힌 일이겠지만 자식 이길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멕시코 사위 집안을 많은 경비를 들여 모조리 서울로 불러 결혼식을 올렸다한다. 딸이 그 위험하다는 멕시코에서 신혼살림을 꾸리자 요것들이 어찌 사나 얼마나 걱정됐을까, 친정부모가 꼴리마를 방문한다. 딸에게 부담될까봐 호텔에 머무르며 딸이 사는 집을 찾았을 때 딸집 천장의 벌거벗은 알등을 보고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훔쳤다는 얘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사위는 이곳 가까운 광산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시아버지는 맘씨 좋은 전형적인 멕시코 택시기사란다.
세상이라는 굴레는 유미 같은 사람들이 앞을 향하여 굴린다. 약삭빠른 존재들은 절대로 열정을 갖지 못한다. 이들은 내적명령에 따라 노를 저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노를 젓는다. 기실 주인의 고삐에 끌려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낙타와 같은 존재이다. 이런 부류는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머쥐었을지라도 실상은 공허한 삶일 뿐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조건으로만 견줘 결정하는 경향이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열정적인 사랑의 끝이 모두 해피엔딩일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주는 꿈에 자신의 삶을 던지는 순수한 열정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이런 열정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식당의 창이 인상적이어서 기념으로 찰칵!>
꼴리마 화산
점심후에는 꼴리마 화산 둘레 길을 탐방하기로 했다.
꼴리마 화산은 해발 3988m이다. 꼴리마 시에서 어딜 가든 이 화산은 그 준수한 자태를 드러내 등대처럼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기가 서있는 위치를 확인하는 깃점이 되기도 한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바라보고 저녁에 집을 가면서도 바라본다. 꼴리마 사람들에게 이 화산은 우러름의 외경과 미래의 두려움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 매일 연기와 용암을 토해내는지라 집집마다 화산재가 내려 그 처치에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꼴리마 화산 탐방 길, 그림처럼 정갈하다>
림교수 집 대문을 나서면 정면에서 우뚝 그 비현실적인 존재를 드러내 보여준다. 림교수는 멕시코 동료들이 개발(犬足)이라 부를 정도로 그야말로 개처럼 이 화산 둘레를 빨빨거리고 다닌단다. 시시각각 빛의 스펙트럼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화산의 모습을 찾아 오늘도 림교수는 우리를 여기저기로 안내하기 바쁘다. 그 태도에서 림교수가 이 화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오늘 이 탐방 길에 나는 열채도 넘는 집을 지었다. 저 오붓하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경치에 팔려 집 한 채 짓고 노을에 비낀 꼴리마 화산의 자태가 오롯이 보이는 곳이라서 집 한 채 짓고, 호수 건너 보이는 화산이 너무나 아름다워 집 한 채 짓고 ....
<이 호수의 이름이 Carizalillo 란다. 일요일인지라 가족단위의 행락객이 많이 보인다. 얼마간의 입장료도 받고...>
< 아득하게 먼 풍경...나는 이곳에 통창이 큰 집 한 채를 지었다>
아마 오늘 찾아본 최고의 길지가 여기가 아닐는지.
앞으로는 건기에도 불구하고 쫄쫄쫄 내가 흐르고 뒤로는 원경으로 꼴리마가 위용을 뽐내고 중경으로는 한국의 산세와 다를 바 없는 야트막한 산들이 위급 시 화산의 쇄설물을 막아 줄 것 같고...
<최고의 길지를 발견하다. 여기에 또 한 채의 집을 짓다>
<돌이 촘촘히 박힌 끝없는 길을 달리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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