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호 지음 <클래식 음악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2020. 5, 소리내)는 서양 근대 음악을 주조해 낸 대표적인 작곡가들의 삶을 통해서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읽어 내고 음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입니다. 여기에는 음악의 기본 지식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있습니다.
1부 ‘음악과 사랑’에는 <겨울나그네>, 이별의 왈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사랑은 환상이다, <라 보엠>, <여행에의 초대>, 너를 위해 살고 너를 위해 죽는다, 바그너가 말하는 세 편의 낭만적 사랑이 음악에 얽힌 작곡가들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2부 ‘음악과 사유思惟’에서는 죽음을 이기는 음악, 하프와 피리의 대결, 피타고라스가 음악가라고?, 노트르담 대성당, 산마르코 성당, 파리넬리, <크로이처 소나타>, 바그너 그 거대한 산맥, 두 작곡가의 절필이 음악과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작곡가는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입니다. 31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야말로 세상을 진정 행복하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이해를 돕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19쪽).
슈베르트는 자신의 친구인 레오폴트 쿠펠비저(Leopold Kupelwieser)에게 이런 편지도 보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네. 건강이 영원히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 그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 보게나. 매일 잠에 들 때마다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이 또 엄습한다네. 기쁨도 편안함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네.”(20쪽).
아버지는 빈농 출신이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일하다가 슈베르트를 낳았다고 합니다(21쪽).
슈베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매독 증상이 악화되면서 장티푸스균이 침투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정설인가 봅니다(43쪽).
이 책에는 슈베르트의 깨진 안경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53쪽).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과 리스트(Franz Liszt)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쇼팽은 그 훌륭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리스트는 한 가지 일을 벌인다.
음악회를 연 리스트는 첫 스테이지 연주가 끝난 후 조명을 껐다.
어둠 속에서 피아노 연주는 계속됐고 그 연주는 더할 나위 없이 감동 그 자체였다.
연주가 끝난 뒤 다시 조명이 밝아졌을 때 청중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사를 하는 사람은 리스트가 아니라 쇼팽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리스트의 의도를 알고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는 쇼팽의 훌륭한 연주뿐만 아니라 둘 사이의 깊은 우정에 감동한 박수였던 것이다.
쇼팽이 파리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한다.”(61, 62쪽).
살리에리(Antonio Salieri)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각인된 그의 이미지는 부정적입니다.
이 책은 살리에리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뒤바꿔 놓고 있습니다. 그는 슈베르트뿐만 아니라 베토벤, 리스트, 체르니의 스승이었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지은이 지성호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했던 것입니다.
“영화의 설정처럼 모차르트는 하늘이 낸 천재입니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천재가 아닙니다.
오로지 뼈를 깎는 노력으로만 곡 쓰기가 가능한 작곡가입니다.
그런 살리에리 입장에선 신의 처사가 불공정합니다. 모차르트에게 주신 것을 왜 나에겐 주시지 않느냐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원망조차 없는 사람들은 곡 쓰기에 목숨을 걸지 않는 사람들뿐입니다.
나나 여러분이나 모두는 모차르트가 아닙니다. 살리에리처럼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만 곡 한 편을 겨우 쓰는 것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살리에리조차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그 시대의 성공한 작곡가이자 교육자였습니다. 진정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은 천재 모차르트가 아니라 번민하고 좌절하고 노력하는 살리에리입니다.”(25, 26쪽).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 새로운 곡이 대중에게 다가가기는 매우 어려운가 봅니다. 지은이 지성호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중은 초연곡과 같은 낯선 음악을 싫어한다. 마르고 닳도록 귀에 익은 음악을 선호한다.
현대음악에서는 이것을 시차론時差論이라 말한다.”(147쪽).
작곡가들에게는 <교향곡 제9번>의 저주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곡까지는 성공적으로 썼다가 아홉 번째 곡에서 막히는 징크스를 가리킵니다.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작곡가가 러시아의 쇼스타코비치(Dmitri Dmitriyevich Shostakovich)라고 합니다. 15개의 교향곡을 작곡한 그도 9번의 문턱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고 합니다(181쪽).
이 책에 히틀러 이야기가 나오길래 저는 ‘히틀러가 왜?’라는 생각으로 읽어봤습니다.
“바그너에 열광했던 화가 지망생 히틀러는 이 음악극의 무대 디자인을 맡은 알프레드 롤러(Alfred Roller)의 문하생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찾아왔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에 무대 뒤로 롤러를 찾아가지도 못했고, 준비해 간 추천장도 내밀지 못하였다고 한다.”(188쪽).
피타고라스가 음악학자였다는 이야기는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오랫동안 음악의 음정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어느 날, 신의 안내를 받아 그는 대장간 옆을 지나게 되었다. 대장간에서는 음악적 조화를 이루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놀라서 그곳에 다가갔다. 서로 협화를 이루는 음고音高들이 망치에서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망치의 무게들을 점검해 보았고 첫째 망치는 12파운드, 둘째 망치는 9파운드, 셋째 망치는 8파운드, 넷째 망치는 6파운드가 나간다는 것을 알아냈다.
12파운드와 6파운드짜리 망치는 옥타브, 즉 두 개의 음고가 가장 일치하는 소리를 내는 음정으로 울렸다. 12파운드와 8파운드짜리 망치, 그리고 9파운드와 6파운드짜리 망치는 옥타브 다음으로 아름다운 음정인 5도 소리를 냈다.
12파운드와 9파운드 망치, 그리고 8파운드와 6파운드 망치는 협화 음정 중 가장 좁은 음정인 4도 소리를 냈다. 이러한 방식으로 피타고라스는 음악적 하모니의 비율, 불변의 본질을 발견해 냈다.”(275쪽).
이 책은 두 작곡가의 절필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로시니(Gioachino Rossini)와 핀란디아(Finlandia)의 작곡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가 그들입니다. 특히 로시니의 절필은 음악사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로 회자된다고 합니다(423쪽).
지은이 지성호는 이렇게 말합니다.
“창조의 영감이 고갈됐다고 생각될 때, 그 초조함 속에 전전반측 잠 못 이루며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예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백척간두에서 예술가는 어쩔 수 없이 절필을 선언하고 현장을 떠나기도 한다.”
(421쪽)
는 것입니다.
이 책의 지은이 지성호는 창작 오페라 <루갈다>의 작곡가로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습니다. <루갈다>는 1801년 신유년(辛酉年)에 일어난 천주교도 박해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92쪽).
오페라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만한 지은이의 말이 있습니다.
“<라 보엠> 초연 포스터를 보면 대본가 둘의 이름과 전면에 도배하다시피 한 작곡가 푸치니의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창작오페라는 대본가뿐만 아니라 작곡가 이름도 홀대받는다. 어떤 경우는 유령이 작곡했는지 그냥 창작오페라라고 한다. 그 대신 오페라 단장의 이름은 주목받는 위치에 큰 폰트로 절대 빠트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국립오페라단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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