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지성호
음악사에 기록된 작곡가들은 대개 비범한 천재들입니다.
그러나 한갓 필부인 저에게 작곡은 언제나 제 한계와의 죽기살기 식 싸움이었습니다.
이번 오페라<루갈다>도 예외일 순 없었습니다.
여섯 번째의 오페라이니 제법 미립이 날만도 하건만 할수록 더 각다분한 것입니다.
어떤 작가가 말한 것처럼 포기의 유혹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달콤한’ 것이었는지요.
제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후기를 쓸 수 있게 된 힘은 아내가 저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신자들의 처절한 순교기록을 읽으면서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교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 받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믿기지 않는 만행이 법의 이름으로 자행됐던 기록들을 보면서 숨겨진 인간의 잔혹성에 몸서리치기도 했습니다.
그 참상 중에 어쩌면 사소한 것인지도 모르는 한 장면이 생생하게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신자들을 밖으로 끌어내자 그들이 옥중에서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형장 주변의 풀을 정신없이 뜯어먹더라는 기록입니다.
숭고한 가치를 위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행동치곤 좀 의아한 행동입니다.
이토록 굶주림이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일진 데 이들은 배교만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 갔던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소망에 비추어 역사의 응답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절망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오로지 돈과 안락함만을 쫒는 현대인에게 이들의 신념은 소통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들의 미련 맞은 우직함에 화가 나기도 했었지만 거기에 제 마음을 비춰보면 한없이 왜소해지는 초라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순교자들의 치열한 삶을 음악으로 치환하면서 비록 고통이었지만 제 흠집투성이의 무딘 영혼이 쇄신되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많이 부족하여 부끄럽지만 창작의 순간순간 느꼈던 그 진실 되고 뜨거운 감정들이 모쪼록 여러분의 영혼에도 전달되기만을 바랄뿐입니다.
압둘 바하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의식적으로 전 능력을 기울여, 열심히 그 완성에 힘을 집중하여 한 장의 종잇조각을 만드는 자는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아! 이 고마운 분의 말에 의지하여 감히 말한다면 저는 알 품는 암탉처럼 웅크린 채 숱한 불면으로 지새운 창작의 날들을 온통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끝으로 이제 막 탄생한 오페라「루갈다」를 전주, 서울, 이태리 로마 까지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리며, 루갈다, 요한 부부가 치명으로 밝힌 위대한 사랑의 꽃불을 향해 걸어가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삼가 이 작품을 바칩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음에 대하여 (0) | 2014.01.14 |
---|---|
국사봉에서 옥정호를 바라보다 (0) | 2013.12.06 |
15년간의 인연 (0) | 2013.12.04 |
작곡가 지성호의 창작 노트 <전라북도 산수비경> (0) | 2007.11.16 |
논개 작곡후기 (0) | 2007.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