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갈다/Soprano 박현주
요한 /Tenor 신동원
작곡/지성호
대본/김정수
총감독/조장남
연출/김홍승
지휘/이일구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5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2014.5.11
루갈다 공연 후일담
사실 루갈다를 작곡하면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 이 “내 안에 누가 있사옵니까” 이다.
인류는 부단한 역사 속에서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와 끊임없이 길항하면서 점차 인간됨의 권리를 확장해왔다.
이러한 인간다움을 확보하고자 하는 진보의 역사 속에는 성(性)적 억압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겠다.
그러나 루갈다와 요한의 동정서약은 종교적 이데올로기나 도그마의 강요가 아니라 절대자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귀일하는, 어디까지나 자발적 신앙심의 발로였다.
그 시대의 사회상을 보면 더더욱 그들의 결단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왕족이나 사대부 집안의 자제가 혼인을 거부한다는 것은 추상같은 국법을 어기고 인륜의 근간을 훼파하는 아주 불순하고 위험한 범법행위였다.
생각해보라,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집념은 반상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조선의 여인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는가를....
그 때문에 그들은 신앙과 국법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혼인의 모양새는 갖추되 실제로는 동침을 하지 않는 , 그러니까 말이 좀 그렇지만 일종의 위장결혼이라는 편법을 선택한다. 이 결혼의 중매자가 중국에서 몰래 잠입한 주문모 신부였다.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는 주신부의 주례로 양가집안의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동정서원을 한다.
감상/오페라 루갈다 中 <동정서원a vows of celibacy>
미리 서원을 마친 두 사람은 겉보기에는 여느 결혼식과 다를 바 없는 절차를 걸쳐 혼례를 치른다.
청사초롱이 너울거리는 혼례청에서 마을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감상/오페라 루갈다 中 <혼례>
그리고 전주 근교 초남이에 새집을 짓고 신방을 꾸린다.
감상/오페라 루갈다 中 <초남이의 새집>
요한과 루갈다는 이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
요한 유중철의 부친 유항검은 호남의 대지주였다.
그의 농토는 전주 인근 10여 개 고을에 걸쳐 자그마치 1만 5000마지기나 됐다.
1마지기는 지역별로 계산방법이 150평에서 200평, 300평 등으로 들쭉날쭉하지만, 전라도에선 300평으로 계산하니 이를 기준으로 하면 450만 평 규모이다. '그 집 땅을 밟지 않고는 열 곳이 넘는 동네를 못 지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부호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이순이 루갈다를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마지않았겠지만 삶의 지향이 다른 루갈다에게 이 부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남다른 서원을 가진 이 신혼부부는 4년 동안 가운데 병풍을 치고 기묘한 동거를 한다.
루갈다가 옥중에서 친정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 4년 동안 모두 열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루갈다의 나이는 꽃다운 16세였다. 요한은 18세였고...
말하자면 오페라 루갈다의 “내 안에 누가 있사옵니까”는 이 절망적인 통제력의 한계,
몸뚱어리를 가진 인간이 거절할 수 없는 리비도의 욕망, 그 치열한 주이상스를 오페라화한 곡이다.
혈기왕성한 때에 이들은 왜 보장된 부귀와 안락을 마다하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 종족보존의 본능마저 거부한 체 기꺼이 고난을 자처하고 끝내는 목숨까지 버렸을까?
신혼부부의 기묘한 잠자리 모습(상상도)
난 오페라를 작곡하는 과정에서 이 초남이 성지를 들러보았다.
오페라 한 편을 쓴다는 게 고난의 행군인지라 어떤 빌미, 아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앞으로 나갈 수 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절박함 때문에 어떤 사소한 계시라도 받고 싶은 갈급함으로 치명자 산을 올랐고 초남이를 찾았었다.
당시 호남의 제일가는 토호였던 유항검은 대역부도의 죄로 목이 잘리고 사지가 잘리는 능지처참형을 당하였고 그의 집은 철두철미하게 파가(破家)되어 흔적조차 남기지 아니하고 근거를 발본한다는 의미로 연못을 만들어 버렸다한다.
지금은 초남이를 천주교 쪽에서 성지화하여 동정부부가 살았던 집도 있고 예쁘게 꾸민 연못도 있었다. (고증을 거친 복원인줄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김제평화를 바라보는 드넓은 벌판을 다 놔두고 논 가운데 납작 엎드린 옹송스런 마을은 삭막하게만 보여 어떤 신령스런 기운도 어리지 않았다.
성지(聖地)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저 개발독재 시대 새마을 운동으로 조악해진 농촌풍경일 뿐이었다.
<나중에 다시 이어 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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