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루갈다

명동성당 순교자 기념음악회

작곡가 지성호 2015. 5. 21. 22:34

 

 

서울 명동 대성당에서 순교자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립니다.

영광스럽게도 제가 작곡한 오페라 <루갈다>중에서 두 곡이 발췌되어 연주됩니다.

2관편성의 오케스트라와 독창, 합창으로 연주됩니다.

 

내 사랑 내 누이여(Tenor 강훈)

유중철 요한의 최후의 아리아입니다.

 

요즘 정치가들이야 말로만 목숨을 잘도 내놓지만 순교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유중철 요한은 23세의 피 끓는 나이에 단지 믿는다는 것 때문에 교수형을 당합니다.

요한은 마지막 순간에 11월의 시퍼런 하늘을 우러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옥중에서 밤낮 없이 무거운 칼을 차고  앉아  다가오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곱씹고 또 곱씹었을까요!

믿음과 회의 사이를, 천국과 지옥 사이를 시계추처럼 수도 없이 왕래했을 것입니다.

당장 바위처럼 목과 어깨를 짓누르는 커다란 칼과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그대로 입고 지내야만 하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물 없는 그곳, 슬픔 없는 그곳, 고통과 이별 없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루갈다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모든 의심과 회의를 억눌렀기에

요한은 기꺼이 그 길로 걸어갔을 것입니다.

 

 

요한이 순교한 뒤, 옥중에 있던 아내 루갈다는 그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하였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마침내 편지 한 장이 집에서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러한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요한의 옷안에서 자기 누이(즉 아내 루갈다)에게 보내는 쪽지가 발견되었는데, 그 쪽지에는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주의 기도 (Bariton  김정석의 솔로와 트리니타스 합창단)

 

<주의 기도>는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의 유명한 곡들이 너무나 많아 정말 작곡하기에 부담스런 곡이었습니다.

 전문 합창단이 아니더라도 실제 예전에서 부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대본작가의 간곡한 부탁이 더해져 고심에 고심을 한 합창곡입니다.

다행히 초연을 앞두고 연습과정에서부터 모든 가수들이 욕심을 내더군요.

2014년 제 5회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에 오페라<루갈다>가 선정되어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는데

무대에서 합창이 노래되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아득하고 높은 곳에서 <주의 기도가> 울려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정녕 천상의 화현으로 수만 송이의 꽃잎이 천사의 하얀 날개 짓으로 흩뿌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전율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 것이었습니다.

무대에 시선이 꽃힌 청중들 모르게 어둠을 타고 객석 3층으로 스며든 합창단이 부르게 하는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연출 김홍승 선생님의 히든 카드였습니다.

과연 명동성당에서는 이 <주의 기도>가 어떤 감동을 줄는지 몹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