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죽은자들에 대한 애도

작곡가 지성호 2015. 11. 17. 17:37

 

 

      죽은자들에 대한 애도

 

무고한 파리시민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애도의 뜻으로 내 사진에도 삼색기를 덧입혔다. 그게 페북에 익숙한 고수들이나 하는 것 인 줄 알아 그냥 넘어갔는데 우연히 지시하는 대로 따라했더니 단박에 해결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나는 최신식이 되었다.

나는 본래 몰려다니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작곡 전공학생들에게 내가 제일 많이 강조하는 말이 몰려다니지 마라이다. 창작의 세계에서 독창성, 그러니까 나 다움은 생명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의 유행에는 둔감을 넘어서서 관심조차 없다. 내 구두는 20년을 넘어 언제부터 신었는지 셈조차 할 수 없고 내가 입고 다니는 옷들도 유행하고는 전혀 무관하게 보통 20년씩은 넘은 것들이다. 오히려 낡은 것과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니 늙은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없지)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두 대이다. 하나는 작곡전용이고 하나는 강의준비나 논문, 블로그 와 같은 문서작성용이다. 작곡전용은 바이러스가 무서워 인터넷과 연결이 아예 차단돼 있지만 다른 하나는 라인과 연결되어있다. 요즘은 문서작업이 많아 밤낮으로 이 컴퓨터의 모니터를 들여 다 보고 산다.

띨롱하고 실시간으로 정보들이 타고 들어와 거센 세상의 탁류 속으로 나를 몰아넣는다. 시대를 역류하는 정치적 상황에 분노하고 데자뷰같이 반복되는 유신의 생생한 기억에 공포도 느낀다. 라인을 차단하고도 싶지만 검색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다 어떤 분의 포스팅이 확 눈길을 끈다.

 

파리시민에 대한 애도, 진정 공정한 박애주의자인지.. 자문해본다 백인들의 고통엔 깊이 공감하면서, 시리아의, 팔레스타인의, 3세계의 고통에 이토록 함께 공감한 적이 있는지... (중략)

폭력의 근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진정한 세계 폭력의 주체가 누구인지... 강자의 논리로, 배워온 대로..알게 모르게 뿌리박힌 백인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세상을 깊이 들여다볼 때가 아닌가 싶다.

 

백번, 천 번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파리 시민들의 무고한 희생은 애도 받아 마땅하다. 이 애도를 통해 뜻밖의 죽음의 덧에 채여 그들이 겪었던 전율스런 공포에 공감하고 세상의 모든 폭력과 그 구조에 저항해야 마땅하다. 어떤 이유 때문에(그것이 아무리 타당하다 하더라도) 이들의 죽음을 애써 외면한다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본다면 괴물과 싸우다 그 스스로 괴물이 되는 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