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방치된 죽음앞에서

작곡가 지성호 2016. 6. 23. 16:01

 


 



용산 참사라든가 세월호 사건, 최근에는 구의역 청년 수리공의 죽음과 같이 야만적 자본의 탐욕이 극에 달할 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비식별 구역에서 허망하게 죽어간 이들의 하찮은 삶,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들을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라 칭했다.

 

모악산 산자락에 기대어 살고 있는 나로서는 아침 출근길에 로드킬로 방치된 죽음을 자주 목격한다.

이 죽음을 딛고 숱한 자동차들은 거침없이 질주한다. 너덜해진 사채는 결국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다. 이렇게 티끌로 변한 죽음은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의 범주에도 들지 못한다. ? 호모가 아닌 동물이기 때문에...

 

집 계단을 오르다 뒤꼍 풀숲에 뭔가 널브러진 모습이 확 눈에 띄었다.

가만 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간밤에 차에 친 고라니가 근처 풀숲에 뛰어 들었다 숨을 거둔 모양이다.

우리 동네는 문명과 야생의 점이지대다요즘 부쩍 야생동물들이 출몰하는 횟수가 잦아진다.

바로 윗집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밤이면 산에서 내려와 텃밭을 망치는 멧돼지 무리와 전쟁을 벌이신다.  

이 놈들은 할머니가 이층 창문을 열고 세숫대야를 두들기고 소리를 질러도 별로 개의치 않는단다.

우리 집에서 스무 걸음도 안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니 그만큼 모악산에 사는 야생의 개체수가 늘어난 때문이라고 짐작만 하지 이놈들과 공존의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지척의 고라니 죽음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예술고 가는 길목인지라 혹시나 눈에 띠면 오고가는 사람들이 기겁을 하게 생겼다. 무엇보다 무더운 날씨에 시간이 갈수록 부패할 수밖에 없으니 어떡하든 손을 써야 하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스크에 긴팔에 완전무장을 하고 접근을 하니 벌써 파리 떼가 윙하니 날아오른다. 사체 주변을 파보니 돌밭이라 삽이 먹질 않는다. 원래는 깊이 파고 묻으려 했으나 포기하고 흙을 덮기로 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그래도 묻어 줄 자릴 보고 뛰어든 인연을 생각했다.

가까스로 봉분처럼 만들고 풀을 깎아 덮어주며 이 놈이 마지막 우러렀을 하늘과 땅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놈과 연결된 인트라망을 생각했다.

 

오래된 영화 <금지된 장난>이 불현 듯 떠올랐다.

아직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린 것들의 궁리에도 생명이 죽었을 때는 묻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새든, 벌레든 죽은 것들을 수습해 무덤을 만들고 십자가를 세워준다

영화 속의 어린것들이나 나나 삶에서 깊숙이 은폐된 죽음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땡볕속의 노동으로 훅훅 달아오른 얼굴에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연신 흩으며 한갓 미물이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죽음 앞에서 내 앞에 마주선 죽음을 대면하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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