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나후아또, 첫째 날
(2017년 2월15일)
햇빛 양양한 꽈우테묵 림교수 집의 아침나절
녹색 비로드 같은 장방형 잔디밭에 “햇빛의 색깔은 이렇다”라고 알려주듯 찬란한 순금 빛으로 보자기를 펼치는 꼴리마의 햇살을 바라보며 향기로운 커피도 마시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한껏 게으르게 유유자적 하고도 싶었지만 오늘 정해진 여행의 일정이 있는지라 아쉽게도 꼴리마를 떠나야 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햇볕과 첨가물 없는 온전한 먹거리를 놔두고 이제 떠나야 하다니...
짐을 싸고 푸는 것에 제법 이력이 붙었지만 마음 한구석 똬리를 튼 미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벌써 등 따숩고 배부름을 탐하다니....
꽈우떼묵 림교수 집. 과나후아또를 향해 집을 나서는 중이다.
내 학창시절, 급우들이 일류대학을 바라보고 머리를 싸매며 시험선수들이 되갈 때 나는 들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거침없이 떠도는 삶을 꿈꿨었다.
미당 선생의 시에 선동되어 사막의 별빛과 망망대해에 저무는 핏빛 노을을 동경했었다.
알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이 시를 읖조릴때마다 가보지 못한 먼 대륙의 흙냄새와 대양의 거친 숨소리로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었다.
떠도는 자가 잠시 몸을 부리는 침대는 내일의 떠돎을 위한 하룻밤의 거처 일 뿐이다.
노마드는 안주(安住)를 모른다.
어제 밤, 림교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깜짝 발표를 했다. 우리 내외용으로 예약한 과나후아또 버스 승차권을 찾으러 갔다가 순간적으로 마음이 동해 자기 티켓도 같이 구입 했다는 것이다. 학교에다가는 하루 휴가를 내고서 말이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멕시코의 규정은 하루 휴가를 내면 월급에서 하루분의 급여가 빠진다는 것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기다리는 강의를 휴강해야 한다는 게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말도 통하지 않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우리로서는 고맙기 이를 데 없지만 이 돌발적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하면서 림교수의 속마음을 헤아려 보게 되었다. 우리가 림교수의 평온한 일상에 바람을 일으킨 것인가? 겉으로는 선머슴아 같이 시원시원하고 통 크게 행동하지만 여리디 여린 림교수의 내면을 드려다 본 것 같아 마음이 짠해 졌다.
프리메라 플러스(Primera Plus)버스를 타고 8시30분에 중간 경유지인 과달라하라로 출발.
한 가지 낯선 것은 승차하기 전 음료수 한 병과 샌드위치를 준다는 것과 비행기 탑승에 버금가는 보안검색을 한다는 것이다. 좌석은 우리나라 우등보다 안락하고 와이파이도 접속이 가능하나 속도가 느려 터져 별무 소용이다. 실내에 화장실이 남녀 구분하여 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고 일단 출발 전 비행기 기장이 그러하듯 정장을 한 기사가 제법 긴 인사말을 늘어놓은 다음 운전석을 완전 봉쇄한다. 승객들은 꼼짝없이 다음 정류장까지는 갇혀가야 하는 꼴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같이 중간 휴게소를 이용하게 한다면 마피아 같은 무장 세력이 차에 침입해 승객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과거에 그런 사건이 발생해 사상자도 나고 그랬던 모양이다.
승차하기전에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준다
열려있는 공간은 수화물칸이고 좌측 조그만 창이 있는 칸은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운행시 교대하는 기사가 잠자는 공간이란다. 멕시코의 장거리 버스는 미국의 뉴욕도 가고 남미의 먼 나라들도 다닌단다. 저 바닥의 소음과 진동을 어떻게 견디며 그 속에서 잠은 또 어떻게 잔다는 것인지!
여자 보안요원이 탑승객 소지품을 검색하고 있다. 허리에 찬 것은 금속 탐지봉이다.
과달라하라로 가는 길, 차창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모습은 광대무변의 불모지가 끝없이 펼쳐져 굳게 입 다문 무거운 침묵으로만 보인다. 아득한 곳 그 끝에서 대지는 선을 긋고 하얀 하늘과 맞닿아있다. 지평선이다.
건기라서 바짝 말라버린 사율라호수(Laguna del Sayula)에 바람이 부는지 자욱한 모래먼지가 인다. 하얗게 탈색된 바닥이 드러나 사막처럼 목마른 풍경을 한 시간 이상을 달려가야 그 끝이 보인다.
사율라호수는 지난번에 얘기한 바 있는 후안 룰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단다. 그의 대표적 소설 뻬드로빠라모 Pedro Paramo 속에서 꼬말라는 죽은 자들이 사는 마을로, 버려진 공동묘지처럼 매우 황량하게 표현되는데 림교수 말에 의하면 저토록 황폐하고 척박한 건기의 사율라호수가 주는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단다.
이 호수는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은지 운동장 같이 평평하여 건기에는 여기서 카레이서들이 경주도 하고 그런 모양이다. 우기에는 당연히 물이 잠겨 통행이 금지되고 차량은 다른 곳으로 우회한단다.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 가까왔나보다.
각다분한 살림살이들이 노출되는 대도시의 꾀죄죄한 속살들이 한없이 이어진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 중서부 할리스코 주의 주도로 인구는 150만이 넘고 인접한 도시권 인구만 해도 400만 명이 넘는 멕시코 제2의 도시란다. 이런 인구밀집지역이 우리나라처럼 고층아파트나 고층빌딩으로 집중되기보다는 높지 않은 건물들로 넓게 퍼져있어 시내에 있는 과달라하라 버스터미널까지 진입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신호대기도 많고 차도 밀리고 서다 가다를 반복하다보니 지치고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여기에서 과나후아또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한단다.
대기 시간동안 자상한 림교수는 내일모레 과나후아또에서 다시 과달라하라로 나와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과정을 누누이 설명하며 현장학습을 시킨다. 과달라하라 버스 터미널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규모인지라 복잡하고 운영시스템도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버스회사가 통합시스템으로 운영되지만 여기는 회사마다 전용 매표소와 대합실이 따로 있고 버스도 회사별로 대기하는 장소가 다 다르다. 림교수가 동행하지 않았다면 많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과달라하라 버스 터미널, 프리마 플러스 라인에 늘어선 버스들
12시20분에 과달라하라에서 출발한 버스가 과나후아또에 4시30분에 도착했으니 4시간 넘게 달려온 셈이고 꼴리마에서부터 따지자면 8시간을 내처 달려온 셈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둘레를 황급히 바라본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까?
그런데 “이게 뭥미?” 과나후아또를 “비비드한 크레파스 마을”이라고 화장품 선전에나 쓸 만한 기행문을 온라인 상에서 읽으며 ‘비비드 컬러(vivid color)’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무척 궁금했었는데 아무리 눈 씻고 봐도 보이는 건 우중충한 건물들뿐!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뭔가 잘못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산록을 제법 달리던 택시가 이윽고 조명시설도 없는 깜깜한 터널로 들어섰다. 전조등에 비친 터널 천장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거칠게 암반을 이리저리 뚫은 흔적들이 보였다. 과나후아또가 광산개발로 형성됐다더니 폐광구를 자동차터널로 사용하나? 터널 안에 미로처럼 갈래 길도 나타나고 그런가하면 다듬은 돌로 아치를 만든 또 다른 터널로 연결되기도 한다. 바닥면도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라 돌로 되어 있어 소음과 진동이 크게 전달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과나후아또의 간선도로 상당부분이 옛 지하수로를 그대로 도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도로를 내기 위해 지상의 건물들을 허물지 않으려는 고육책이었던 모양이다. 지하수로가 다행히 차가 무난히 다닐만한 규모였으니 망정이지. 그렇다면 우기에 도시의 빗물은 어디로 빼돌린담?
조명도 없는 깜깜한 터널안. 승용차 한 대 겨우 빠져 나갈 공간이지만 택시는 덜컹거리며 잘도 달린다
하여튼, 덕분에 계곡과 산비탈에 빼곡하게 들어찬 건물과 골목길이 원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옛 성채도 내부만 손을 봐 호텔로 사용하는 등, 곳곳이 스페인식민시대의 고시가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도시전체가 유네스코에 통째로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긴 동굴을 빠져나오니 어떤 전설이나 동화속의 도시가 현실로 나타난 형국이었다.
더구나 이 도시는 폐허의 죽은 도시가 아니라 생생한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퇴근시간 무렵인지 좁은 골목길에 차들은 정체와 지체를 반복하고 사람들은 넘쳐났으며 높은 교회의 종탑에서는 종소리 댕댕 울리고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광장에는 목줄 없는 개들이 거리낌 없이 어슬렁거리고 시민들은 저마다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없는 것이 있다면 네온사인과 신호등이 없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아직도 이런 도시가 있다니 과연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닌가!
택시에서 내려 림교수가 예약한 숙소를 찾아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숨이 턱에 찼다. 여기가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지라니 그럴 만 했다. 골목길이라 좀 헤맸지만 우리가 이틀을 묵을 보랏빛 숙소 <삐따네 집>을 찾아 들었다.
숙소를 찾아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아내. 어휴, 숨차!
casa de pita 드디어 숙소에 도착! 앞 집은 공사중이네
숙소에 아내와 내 이름을 환영하는 문구. 세세한 관리가 돋보인다.
민박집 주인 삐따 할머니의 손녀 알렉씨와 림교수
숙소 로비에서
내가 찍은 레스토랑 <터키no.7>
멕시코 관광청이 소개한 레스토랑 <터키 no.7>
유서 깊은 앤틱 레스토랑 <터키no.7>에서 림교수와 저녁을 함께하였다.
우리 내외가 겁도 없이 멕시코를 찾아 든 것은 오로지 림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항 관제탑의 노련한 관제사처럼 우리의 여정을 세밀하게 유도하여 꼴리마까지 안착할 수 있게 하였고, 꼴리마에 머무는 동안 부모 모시듯 극진하였다. 그것에 더하여 과나후아또까지 동행해 주었으니 뭐라 말할 수 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저녁을 마치면 학내 논문심사가 있어 꼬박 밤을 새워 꼴리마로 되돌아가야 한단다. 내일 아침에나 꼴리마에 도착한다하니 24시간 버스만 타는 셈이다. 올 때는 더불어 왔다하더라도 갈 때는 혼자 가야하는 그 긴 여정을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내 나이 정도 되면 세월의 더깨가 굳은살처럼 박혀 만나고 헤어짐에 내성이 생길만도 하지만 좋은 사람과의 이별은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서툴다. 이 시간이 지나면 림교수와는 기약 없는 이별이다. 쉬 드나들기에는 멕시코는 너무나 멀다.
자, 이제는 일어서서 인사를 하자. 만감이 교차하지만 웃으며 하는 말은 “림교수 부디 잘가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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