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4
군산 비행장. 쓸쓸한 일몰의 허공을 바라고 비행기는 굼뜬 몸을 서서히 움직인다.
아들네가 시월 한 달간 제주 살이 떠난 지 보름이 되었다.
진즉 가본다는 것이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에 밀려 이제야 비행기에 오른다.
채 끝내지 못한 저술을 놔두고 길을 떠나서 일는지,
아니면 난데없는 조장관의 사직 때문에 임계점까지 도달한 분노 게이지 때문인지,
조국대전의 허탈한 결말에 길 떠난 심사가 납덩이처럼 무겁고 또 무겁다.
멀리 있던 정치가 가까이 다가와 내 일상을 지배했던 시기가 몇 번인가 있었다.
두 달여 전개된 정치지형에 내가 이토록 상처를 받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본다.
나에겐 이번 조국대전이 진영논리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였다.
대통령만 바꿨을 뿐, 우리 정치 현실은 여전히 강고한 앙시앙레짐의 카르텔이 오만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요즘이다.
특히 선출되지 않은 검찰 권력의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휘두름은 소름조차 돋는다..
검찰과 짝짜꿍하는 언론의 추악함도 그 끝을 모르겠다.
개혁을 진척시키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보다.
착륙 직전 비행기에서 바라본 제주의 야경. 무엇인든 멀리보면 아름답지 않은가.
지금부터 39년도 넘은 1980년 5월19일, 결혼식을 마친 아내와 나는 배낭을 메고 신혼 여행길에 올랐었다.
기차의 앞좌석에는 근엄하신 노인분이 지팡이에 두 손을 모으고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고는 가끔 들으라는 듯 헛기침을 하시곤 했다.
그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자리를 옮기려 했으나 장항선 완행열차는 빈자리가 없었고 서서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눅자 치려 싸온 인절미를 아내가 권하니 과장된 손 사레를 치다 마지못해 받으시고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배낭을 멘 우리가 신혼 부부인줄은 꿈에도 몰랐고 탈선한 젊은 것들이 버젓이 배낭을 메고 미풍양속을 헤치고 다니는 모습이 배알이 뒤틀려 어찌 혼을 내주나 궁리 중이셨다는 것이었다.
그러실 만도 한 것이, 당시 신혼여행길에 나서는 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은 남자는 상고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큰 트렁크를 들고, 여자는 옥색 삼회장저고리에 밑동에 금박물린 붉은 스란치마를 입고 핸드백을 든 모습이었다.
그런데 우리모습은 청바지에 배낭을 멘 영락없는 탈선한 싸가지 없는 젊은 것들이었다.
우리부부의 신혼 여행길은 꼭 인사를 드려야 할 어르신이 계셔 우선 광주에 들르고 거기서 목포로 해서 배편으로 제주도에 가려는 계획이었지만 그만 광주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휘말려 무산되고 말았다.
그 사연은 얼마 전에 상영된 ‘택시운전사’ 못지않게 손에 땀을 쥐는 구구절절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언젠가는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글로 남겨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사연으로 아내는 제주도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다가 백발 할머니가 되어 손자 보러 가게 된 것이다.
제주 공항 안착
제주공항에 마중 나온 아들네와 반가운 해후를 하고 우리 이니를 한 달 만에 안아보게 되었다.
이 어린 것의 살 냄새를 맡을 때마다 가슴속에 애틋한 것이 뭉클 차오른다.
그동안에도 우리 이니는 텃밭의 무처럼 쑥쑥 자라 싫은 것과 좋은 것에 대한 의사표시가 좀 더 분명해졌다.
인근 맛 집에서 제주토속음식으로 저녁을 같이 먹고 서귀포 안덕면 화순리 아들네 월세 집에 고단한 몸을 뉘였다.
먼 바다가 뒤척이는지 가끔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