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곶자왈
새벽 미명에 인근에 있는 화순 곶자왈에 올랐다.
화산섬 제주다움의 원형이 곶자왈이다.
이끼 먹은 바위틈새마다 나무들이며 덩굴식물들이 울울하여 태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숲이다.


이른 새벽의 불청객에 놀란 노루가 껑충거리며 사라진다.
차갑고 신선한 새벽공기에 소똥냄새가 배어난다.
먼 바다를 바라보는 삼방산의 시선이 가파도에 꽂혀있다.

전망대에 올라 양팔 넓게 벌리고 머리를 곧추세운 한라산을 마주한다.
푸른빛으로 서기를 품은 위용이 과연 늠연하다.

아들은 이 광활한 공간을 포착하려는지, 드론을 날려 사위를 영상에 담는다.

집에 돌아오니 마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이니가 머리에 새집을 지은 채 씽긋 웃는다.
우리 이니는 눈이 마주치면 일단 눈웃음치는 것으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킨다.
다가가니 안아달라고 두 팔을 들어올린다.
안기는 게 그냥 수동적으로 안기는 것이 아니라 두 팔로 힘껏 목을 끌어안는다.
제법 힘이 실렸다.
뿐만 아니라 제 몸을 뒤로 하여 내 얼굴을 마주보며 살인적인 미소를 보낼 때는 이 할애비가 어쩔 줄 모르겠다.
아직 말을 못하는 우리 이니는 몸으로 격하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많이많이 사랑해요!”
3층 우리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내 품에 꼭 안겨 놔두질 않는다.
떼어내려는 애미도 밀어내고 지 애비도 밀어낸다.
겨우 내려놓고 문을 닫으려는데 폭풍 같은 울음을 토해낸다.
나중에 들으니 방바닥을 치면서 울고 내가 사라진 곳을 향해 손짓을 하며 울었단다.
이 할애비와 그동안 몇 번의 간헐적인 만남뿐이었는데 이니는 확실하게 할애비를 인지하고 깊게 애정 하는구나.
이니야 이 할애비는 말이다. 우리 이니의 따뜻한 둥지가 되고 싶구나.
이니가 맘껏 활개치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말이다.
아직은 말을 못하는 이니에게 이 할애비의 속내가 가슴으로 스미기를 바랄뿐이다.
어떤 시인이 말하더구나.
자식은 눈 안에 도는 눈물 같고 내 복숭아 뼈 같다고.
안덕계곡

전주에서 준비해간 반찬으로 아침을 나누고 아들네가 안내하는 데로 본격적인 제주 탐방 길에 나선다.
아들네는 지 에미의 몸 상태를 고려하여 안덕 계곡으로 향했다.
햇볕은 따스하고 하늘은 청청하다.
올 여름 얼마나 요란했더냐.
아들네가 제주도 들어갈 즈음에도 태풍 19호 하기비스가 일본을 초토화 시켰다.
그 전에는 18호 태풍 미탁이 제주도에 물폭탄을 쏟아 부어 안덕 계곡도 그 할퀴고 간 흔적이 상기도 남아있다.
그러나 자연의 복원력은 위대하여 오늘 이 계곡에 깊숙이 찾아든 햇빛은 신비롭고 흘러가는 물은 보석을 흩뿌린 듯 반짝인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계곡의 공기 질을 우리가 그토록 열망해마지않는 행복으로 바꾸어 놓는다.
평화, 얼마나 좋은 것이냐!



포도호텔

점심은 인근에 있는 포도호텔 레스토랑에서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서 가장 비싼 우동을 먹게 되었다.
그것도 어느 틈에 동행하신 이웃 사모님께서 식대를 지불하셔서 고맙기에 앞서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내 식생의 지론은 이렇다.
먹는 것은 가장 소박하고 정갈한 것으로 배불리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같이 과분한 자리에 과분한 비용을 지불하면 누구의 돈이 되었든 왠지 모를 죄의식이 엄습하는 것이다.
아들네의 모처럼의 배려라 짐작되지만 아들네가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랄뿐이다.

우리 이니는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도 받아 먹는다.오물오물 흘리지 않고 먹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스기야끼 우동. 이 시국에 일본냄새가 물씬 나는...
방주교회
점심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 방주교회를 향했다.
말로만 들었던 방주교회를 먼 곳에서 일견했을 때는 금속재질의 번쩍이는 지붕이 주는 차가움과 날카로움이 둘레의 풍경과 조화를 주지 못하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포근하게 위로로 다가오기보다는 모던한 건축물이 그렇듯 직선으로 반듯반듯하고 이성적이어서 까칠한 사람을 대하듯 정서적으로 다가서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뵌다.
그러나 건축물 전체가 수변에 떠있는 모습은 이타미준이라는 일본인 설계자가 방주교회라는 이름에 집착하여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아까 다녀온 포도호텔도 역시 이타미준의 설계로 그 둥그런 지붕이 제주의 초가가 연상된다하겠으나 뜬금없는 밝은 회색빛 색조가 좀 의아하게 보였었다.
금속성의 각지게 들리는 사미센 소리처럼 그저 일본인 특유의 지나친 깔끔함이 주는 차가움이라고 해야 하려나?
실내로 들어가 보니 배의 용골을 연상하고 설계했음이 틀림없는 기둥들 사이로 적나라한 자연채광이 쏟아져 들어와 실내는 별다른 조명 없이도 밝고 또 밝았다.

문득 2년 전에 림수진 교수의 안내로 들렸던 멕시코 꼴리마 Reserve de Cofradia 호텔경내의 아주 조그마했던 성당이 떠오른다. 멀리서 보기에 너무나 정갈하고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여 다가가 조심스럽게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갔었다.
어둠이 고여 있는 실내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신령한 빛을 품어내 여기가 거룩한 곳임을 고지(告知)하고 있었다. 십자가의 교차부분에 활짝 날개를 펼친 비둘기는 정교했고 아름다웠다. 상징처럼 성령이 비둘기의 날갯짓과 함께 고운 빛의 입자로 동심원을 그리며 임재 하는 듯하였다.
-작곡가 지성호의 블로그에서 인용 http://blog.daum.net/kui337/267-

멕시코 꼴리마 Reserve de Cofradia 호텔경내의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그 날 내가 다녀본 대성당들- 바티칸이나 노트르담, 세비야, 톨레도
그렇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말리아같은 대성당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진한 감동을 이곳에서 경험했던 것이다.
오죽이나 했으면 평생 나만을 위해 살았으니 나도 죽기전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영성으로 가득찬 곳에
세상에서 가장 조그맣고 가장 아름다운 기도실을 짓자는 것을 소원했을까.

방주교회의 턱없이 밝음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밝음은 생활과 활동의 영역이다.
그러나 어두움은 침잠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들뜨고 각진 생각들을 누그러뜨리고 가라앉혀줌으로 경건과 영성을 활성화 시킨다.
조용히 앉아 어둠에 익숙해지면 벌써 기도자의 마음이 된다.
직접 광이 아닌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은 인위와 자연의 조화가 어우러진 빛의 오케스트라이다.
옛날부터 많은 예술가들은 이 투명성과 색그림자가 펼쳐내는 신비의 영역에 매료되어 자신들의 종교성을 유리에 아로새겼다.
그런 면에서 방주교회의 민 창과 일체의 장식이 배제된 직선은 미니멀하여, 차갑고 모던한 단순성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방주교회는 우리나라 대다수 교회들의 행태-대형교회를 무조건적으로 따라하는 교회건축과는 확실히 다르다.
따라쟁이의 이면에는 성공신화를 이룬 메가 처치에 대한 욕망이 잠재해있다고 본다.
이상한 목사들이 활개 치는 천박함의 극치 속에서 내가 개신교임이 부끄러움에 오갈이 드는 요즘,
이만한 생각이 깃든 교회건축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방주가 뭍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방주였듯 모쪼록 제주의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방주가 되기를 빌 뿐이다.
잠시 자리에 앉아 짧지만 간절한 기도를 한다.
우리 이니가 살아 갈 이 땅이 움켜진 자들의 탐욕의 카르텔에서 벗어나
공정한 기회와 정의의 가치가 올 곧게 작동되는 세상이기를 바라는 것과,
무엇보다 강대국들의 패권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지 못하고 전쟁의 위험으로 전전긍긍하는 이 나라에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풍경

이니는 캥거루 족
카페 루시아
방주교회를 나와 카페 루시아로 향한다.
루시아는 대평포구 주변 올레길 제8코스에 연하여 있었다.
박수기정의 주상절리를 바라보고 검은 현무암 해변에 파도가 들이쳐 부서지는 한적한 곳이다.
멀리 화순항의 방파제와 크레인이 시선을 어지럽힌다.
포토샵처럼 저 부분을 내 마음의 풍경에서 오려내 딜리트 하고 싶다.

카페 루시아
올레꾼들로 북적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음미하며
가을이 가득한 오후의 들녘과 황금빛 햇빛이 반짝이는 바다를 오래도록 망연히 바라본다.
아들네가 좀 편한 시간을 보내라고 이니를 가슴에 안고 둘레를 거닌다.
이니는 호기심덩어리이다.
제주의 모든 것을 다 간섭하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돌발적으로 관심 끄는 곳을 향해 몸을 사정없이 틀어 아차하고 놓칠세라 진땀이 나기도 한다.
이니의 팔딱이는 심장의 박동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그 따스함이 어제까지 날 지배하던 분노의 아드레날린을 증발시키고 엔돌핀을 분비케 하는지 조바심치던 마음이 수평선처럼 부풀고 넉넉해진다.

박수기정
화순 금모래해변
카페를 나서 차편으로 박수기정을 넘어 화순항 금모래해변을 가다.
그 이름 때문에 화순항에 들어서면 썰물이 잘 다름질 한 해변에 금모래가 좍 펼쳐져 있는 것을 연상했다면 대 실망이다.
매립된 항구와 발전소로 모래사장은 보이지도 않는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수 있나 싶어 온라인상으로 검색해보니 화순항 2단계 개발사업의 일환인 해경부두 공사를 하면서
화순해수욕장 서쪽에 인접한 절대보전지역과 이격거리를 전혀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응회환 화산체가 해안으로 노출된 노두구간 및 일부 응회암 지대를 사석으로 매립해 버려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가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항만시설을 가로질러가니 반쪽짜리 해변이 나타났다.
이미 답사를 한 아들내미가 아니었다면 비록 반쪽이라도 이 아름다운 해변을 보지 못할 뻔 했다.
이곳 주민들은 방파제와 부두시설을 얻었을지 몰라도 금빛모래와 기암괴석의 천혜의 해수욕장을 잃어버렸다.
그 득실의 대차대조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체가 확연히 들어 날 것이다.

화순항으로 입항하는 유람선

파괴된 화순 금모래해변의 편린이 저만큼이라도 남아 있다.

천지가 개벽하던 날. 화산은 분노를 터뜨리고 용암은 흘러 흘러 이곳에서 차가운 바다와 만나 석인상의 형상으로 굳어졌다.
마치 오페라 팔리아치의 피에로 카니오 같구나.
바라보는 시선의 끝, 억만년 스쳐간 무수한 기억들로 눈은 저리도 깊어졌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