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및 리뷰

리뷰-장한나와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익산 연주

작곡가 지성호 2019. 11. 18. 20:56


  •   승인 2019.11.18 20:23



 

내가 장한나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어린 나이에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 우승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천재 첼리스트로서보다 음악을 좀 더 메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하버드대 철학과에 입학했다는 

인터뷰를 접하고서부터이다

단순한 연주기술자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의 깊이와 넓이에 천착하려는 

그녀의 지향에서 묵직한 울림이 전달됐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20대 초반에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을 들을 때는 

항용 저널에서 띄우는 상투적수사로서가 아니라 이미 한 세계를 구축한 비루투오조적 경지에

가슴이 서늘했었다.

그랬던 장한나가 보우가 아닌 지휘봉을 잡고 포디움에 섰다

그녀의 음악적 포부는 첼로안에 갇히기에는 너무나 협소했나보다.

비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는 궂은 날씨에서도 만석을 이룬 객석은 장한나가 지휘봉을 들고 입장하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맞이하여 지휘자 장한나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충천한지를 알게 해줬다.

장한나와 트론헤임 심포니의 첫 레파토리는 그리그의 페르퀸트 모음곡이었다

1<아침의 기분> 어택에서 장한나는 6/8박자를 둘로 나누지 않고 비트를 잘게 쪼갬으로 

8분 음표 하나하나 까지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다 드러내겠다는 의도가 감지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미세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큐를 주며 오케스트라를 통제했다.

2, <오제의 죽음>에서 약음기를 낀 현은 북구의 어둡고 음산한 서정을 유감없이 품어내었다

노르웨이 대지를 깊숙이 파고든 피요르드의 겨울 바람소리처럼 쓸쓸하고 처연한 정서는 

공연장의 공기질을 바꾸어놓으며 숨죽이게 했다

종지부분 모렌도의 페르마타는 충분히 길었고 청중은 호흡을 멈추며 깊게 몰입했다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역시 본토 오케스트라 다운 사운드였다

4<산속 마왕의 동굴>에서 첼로와 더불베이스의 피치카토는 

그 아티쿨레이션의 억양이 분명하고 크레센도의 진폭이 입체적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점점 몰아치며 투티로 폭발하는 부분에서 장한나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지듯 열정적인 몸짓으로

절정을 이끌어냈다.

두 번째 스테이지는 임동혁과 협연하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붉은 선이 내려온 독특한 연주복에서 앙팡 테리블이라 불렸던 임동혁이

저절로 환기되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사십대를 바라보는 나이답게 중후한 연주자로 노련하게 음악을 풀어내었다

한 치의 어김없이 난타하는 화성적 패시지에서는 남성적 에너지가 폭발하는가 하면 

절제된 루바토로 속삭이는 가운데 녹아나는 영롱함은 한숨을 몰아쉬게 했다

청중의 열화 같은 앙콜에 임동혁은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으로 응답했다. 
거한 밥상을 물리고 깔끔한 후식으로 마무리하듯 섬세하고 투명한 피아니즘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마지막 스테이지, 차이콥스키 최후의 교향곡 제6<비창>은 긴장과 이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며 

전개되는 대서사로 때로는 격렬하게 부서지고 솟구치며 내달리다가 이윽고 기슭에 몸을 부리는 

유장한 대하의 흐름이었다

이 과정에서 장한나는 부지런하고 세밀한 큐로 불굴의 투지를 불사르듯 <비창>을 장대하게 풀어내었다

그녀의 전신을 투여하는 바통 제스쳐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후의 악장 아다지오에서 저음악기군은 악보상에 주어진 라멘토소(애도)pppp를 염두에 두며 

가장 무겁고 어둡게, 그리고 긴 음영을 드리우며 탄식처럼 종지된다

청중은 차마 박수를 치지 못한다

그렇게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장한나가 움직이자 기다렸다는 듯 공연장은 떠나갈듯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 찬다여기저기서 기립하며 청중의 고조된 흥분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페르귄트 4<산속 마왕의 동굴>을 재연하는 것으로 2시간이 넘는 천상의 하모니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리하여 지휘자 장한나의 변신은 완성된 것이다.


/지성호 작곡가





지성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