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논개

지성호의 창작오페라 <논개>

작곡가 지성호 2011. 7. 5. 11:41

 

입력 2011-07-14 09:23:01, 수정 2011-07-14 09:23:01

[정다훈의 연극家 사람들] 도도한 오페라 문턱을 낮춘 ‘잔니 스키키’·‘논개’…그럼에도 2% 부족한 경주(race)

지난 10일 막을 내린 서울시오페라단의 [잔니스키키]는 코믹 오페라의 엑기스만 뽑아낸 60분의 향연이었다. 12일 막을 올린 호남오페라단의 [논개]는 판소리와 아리아가 절묘하게 만난 한국적 오페라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2%아쉬움이 남는 공연들이었다. [잔니스키키]는 일부 가수들의 음량과 연기력이 다소 미흡했으며, [논개]는 극 구성의 치밀성이 부족해 관객의 몰입을 끝까지 끌고가지 못했다.


 

◆ 더 짜릿한 희극의 정수를 선사해줘! 오페라부파 [잔니 스키키]

공연장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보면 키가 작은 평범한 아저씨로 보이는 바리톤 가수가 한명 있다.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서 주역을 맡은 바리톤 한경석이 바로 그 주인공. 그를 오페라 무대에서 만나면 느낌이 180도 달라진다. 한번 보면 쉽사리 잊기 어려울 정도로 존재감을 아로새기는 가창과 연기력을 보여줘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경석이 분한 '잔니 스키키'는 진중한 듯 코믹한 인물이었다. 해학성과 영민함 역시 생생히 살아있었다. 특히 후반 공증인을 불러들인 후 유언을 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표정과 연기가 압권이다. 그때 부르는 짧은 아리아 '안녕, 피렌체'역시 극 전개에 힘을 실어줬다.  또한 그는 정해진 대본만 그대로 따르는게 아니라 역할에 대해 수차례 고민했음을 간간히 엿볼 수 있게 했다.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진정한 부포(광대)는 베이스 박준혁(시모네)과 메조 소프라노 권수빈(지타)이었다. 빠른 트릴과 패시지를 자유롭게 구가하며 익살스럽다 못해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선보인 두 가수들로 인해 객석엔 웃음꽃이 피었다. 온 집안을 뒤져 유언장을 찾는 장면의 자잘한 웃음포인트가 좋다. 각자의 이득만 생각하느라 복잡하게 꼬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연출해낸 이경재의 꼼꼼한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을 희화적으로 표현한 푸치니의 철학도 잘 살려냈다.

그럼에도 이번작품에서 아쉬운 건 젊은 가수들의 발성과 호흡이 불안한 점이다. 라우렛타의 유명한 아리아 '오, 사랑하는 아버지'가 과히 나쁘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다 깊이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가수의 성량이 작았던 탓이다. 라우렛타의 연인 리눗치오는 아직 무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눈빛은 불안했으며 고음 부분에서는 관객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마음껏 희극의 정수를 맛보고 싶었으나 귀와 눈이 만족하지 못하니 중간 중간 몰입이 끊겼다.

한편, 푸치니의 단막 오페라 [잔니 스키키]는 피렌체의 한 부자의 유산을 둘러싼 유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써, 재산을 탐내는 인간 본성을 코믹 오페라로 완성시킨 작품. 수도원에 재산을 전부 기부하겠다는 부오소의 유서를 바꿔치기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한 친척들은 리눗치오의 제안을 따르게 된다. 즉, 약삭 빠르지만 시골출신인 잔니 스끼끼에게 부탁하게 된 것. 하지만 잔니 스끼끼는 이중 사기행각을 궁리 중이다. 자신과 딸을 위해 부오소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내용.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잔니스키키의 활약이 돋보이는 오페라다.

오페라 [잔니 스키키]는 ‘3부작 IL Trittico(일 트리티코)'라 이름 붙은 3개의 오페라 중 하나이다. 소재와 주제를 단테의 신곡에서 따온 .[일 트리티코]는 <외투>,<수녀 안젤리카><잔니 스키키>이 세개의 단막 오페라로 구성.  

예술총감독은 박세원 서울시립오페라단장, 조정현 지휘자와 인씨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힘을 보탰다.

서울시 오페라단의 차기공연은 대표레퍼토리인 [라 트라비아타](11/24~27.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다.

◆ 한국적 섬세한 감성을 보다 치밀하게 살려줘! 창작 오페라 [논개]

오페라 [논개] 작곡자 지성호는 프로그램 내 작곡후기란에 "사실 완성이란 모든 창작하는 사람들의 오르지 못할 로망일 것입니다. 연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전적 의미는 '계속 연마하여 구멍을 뚫는 것'입니다. 많이 부족한 저로서는 그저 연찬할 뿐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12일 첫 공연을 본 소감은 지성호 작곡가의 멘트와 일맥상통했다. 이번 무대가 최종 완성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각 막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일맥요연하게 전달해주는 도창, 아쟁과 피리의 구슬픈 선율과 맞물려 논개의 기구한 운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점, 가면 쓴 여인들의 움직임으로 논개의 내면과 혼을 형상화 한 점은 극에 힘을 실었다. 한국적 정서가 잘 표출 된 김씨의 죽음이후 펼쳐지는 전라도 상여소리 장면도 일품이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논개]를 대표할 만한 아리아가 없다는 점, 시간의 흐름 순서대로만 극이 진행 돼 긴장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한국관객들은 뭔가 긴장의 끈을 팽팽히 조여주는 스토리텔링에 끌린다. 반면 [논개]는 관객들의 예상대로만 극이 진행되고 있어 100%매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즉, 관객들은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공연보다는 드라마틱한 장면 하나로 기억되는 공연에 더 마음이 간다는 의미이다.

그 중 4막이 가장 아쉽다. 게야무라와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이는 승전잔치 장면이 나오자 객석은 술렁거렸다. 특히 아줌마 관객들은 자신도 아는 내용이라며 옆자리 관객과 소곤거리는 한편 무대에 급격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작품은 논개와 기생들이 모의를 한 후 가락지를 양 손 낀 논개가 게아무라와 투신하는 것으로 처리했다. 물론 기생의 소름끼치는 비명소리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논개의 독창을 도입해 점차 관객을 몰입시켰지만 그 이후가 너무 밋밋했다. 투신하는 장면 역시 극적이지 못했다. 합창이 4막 마지막에 나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투신 직전 중간 중간 코러스처럼 불려지는 게 더 유효할 듯 보인다. 이 장면이 보다 촘촘하게 수정된다면 관객들의 집중력을 두배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이 선보인 [논개]는 아름다운 신촌 장수를 배경으로 조선 선조시대 의기이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부실이었던 논개의 어린시절과 최경회 장수현감과 부인 김씨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논개의 기구한 생애를 표현한 작품.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전투에서 최경회가 전사하자 일본군이 촉석루에서 벌이는 잔치에 기생으로 위장 참석해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다는 줄거리.

논개의 혼을 입은 '논개'역의 소프라노 조혜경은 결연한 의지가 담긴 연기력과 절절한 고음을 선사했다. 테너 김남두는 3막 흔들리는 진주성 장면에서 기약없는 전쟁에 대한 심경을 풀어낸 '최경회 독창'을 시원하게 뽑아냈다. 어떤 무대에서든 존재감이 돋보이는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은 이번 무대 역시 혼신을 다하는 연기와 가창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특히 최경회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심경을 토로한 2막의 독창이 일품이었다. 도창 김금희의 장단이 명확한 발성 역시 관객들의 귀를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제2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세 번째 작품인 [논개]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어 네번째 작품인 구미 오페라단(단장 박영구)의 [메밀꽃 필 무렵]이 21일부터 24일까지 공연된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축하를 위한 뜻도 담겨 있는 이번 작품은 이효석 원작ㆍ 탁계석 대본ㆍ우종억 작곡으로 탄생된 창작오페라. 특히, 주목할 점은 팔순의 작곡가 우종억이 직접 지휘봉을 잡는다는 사실. [논개]에서 호흡을 맞춘 인천오페라합창단이 이번에도 함께한다.

 

공연전문 칼럼니스트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