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1월27일 토요일
오늘은 여정의 최종 목적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Annapurna Base Camp, 4130m)에 오르는 날이다.
덕 다운 파커와 스키바지를 껴입고 두터운 침낭에 들었는데도 냉기가 파고든다. 코가 시려 침낭속에 얼굴을 묻다.
잠이 오지 않아 수시로 시간을 첵크한다.
새벽 4시에 가이드와 포터를 기상시키고 완전무장을 한채 롯지 밖으로 나오니 추위가 매섭다.
간 밤에 된 바람이 비명을 지르며 온 산간을 휘젓고 다녀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저 아래 좁은 계곡을 몰려 오면서 사나워 질대로 사나워진 바람이 가로막는 산 자락에 부딪쳐 분노하며 폭발하는 소리가 으르렁, 으르렁 밤새 포효 하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무렵 찍은 산장 밑의 계곡이다. 바람이 밤새 이 계곡에서 맹수처럼 으르렁 거렸다.
가이드가 마늘 스프를 끊여 먹기를 권했다. 하도 뭘 먹질 못하니까 걱정이 된 모양이다.
사실 지난 밤 잠못이룬 이유는 바람소리도 요란하거니와 물처럼 멀건 마늘 스프만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더니 배가 고파 의식이 명징 해진 때문이었다.
새벽의 마늘스프는 흰죽을 넣어 요기가 되었다. 후배에게는 누룽지와 육포를 강권했다.
무어라도 먹여야 추위와 고산 증을 이기고 ABC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출발하기 위해 하늘을 보니 어제 밤보다 별이 헤성했다. 바람이 얼마나 차가운지 숨을 들이쉬면 콧속이 싸하니 아렸다.
칠흑 같은 어둠속을 해드랜턴에 의지하여 가이드를 따른다. 해드랜턴이 비추는 범위만큼이 내 시야의 전부였다. 그 밖은 온통 어둠의 심연일 뿐.
곤두박질치는 심장의 박동소리. 으르릉 거리는 바람소리. 스틱이 댕댕 언 땅을 부딪는 소리. 가끔 돌멩이 구르는 소리.
심장이 용랑을 초과하여 터져버릴 듯 고통스러웠다.
가이드가 따라붙은 후배는 점차 멀어지더니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먼 형벌의 땅으로 유형의 길을 떠나듯 참담하기조차 했다.
끝없는 경사면을 두 시간 동안 헉헉 거리며 오르니 흰 눈을 뒤집어 쓴 안나푸르나Ⅰ(8091m)의 위용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안나푸르나의 일출을 렌즈에 잡기 위해 ABC 롯지를 지나 언덕배기를 단발마의 힘을 쥐어짜 올라갔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온몸이 다 얼어왔다. 두터운 모직장갑을 낀 손이 감각이 없고 노출된 얼굴 전체가 아팠다.
어느 순간 안나푸르나Ⅰ의 정상부근이 오렌지 빛으로 환해지더니 그 빛이 번지듯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위가 밝아져 주위를 둘러보니 8000m~6000m 급 산들이 나를 중심으로 완전한 원을 형성해 있었다.
안나푸르나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왜 안나푸르나가 Ⅰ.Ⅱ.Ⅲ.Ⅳ. South로 나뉘어서 부르는지 몰랐다가 그제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어느 혹성에 홀로 불시착한 어린왕자 처럼 난 주위를 살폈다. 꿈을 꾸듯 낯설고 환상적인 세계였다.
매서운 바람만이 횡행하는 이 황량한 공간에 산들은 나를 에워싸고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난 많은 것을 느끼면서도 이를 형용할 말을 잃었다.
묘한 것은 내가 서있는 곳에서 저 봉우리 까지는 그리 높게 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맘만 먹으면 한달음에 올라갈것 같은 착시가 일어났다.
일출을 등지니 실루엣으로 나올 수 밖에....
발아래 절벽 밑은 마치 커다란 포클레인이 땅을 온통 헤집어 놓은 듯 빙하가 빠져나간 모레인 지역이다.
손이 꽁꽁 얼어 카메라 만지기가 쉽지 않았다. 몸 움직임도 굳어져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자칫 넘어져 추락할까 겁도 나고...
뒷면 마차푸차레에 볕이 들기를 기다렸으나 추위를 견딜 수 없어 ABC 로 후퇴하였다.
ABC롯지 실내 벽에는 세계 각국의 산객들이 소감과 함께 방문 기념 사진을 게시해 놓았다. 살펴보니 역시나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heater charge Rs.70 per person이란 글이 이곳이 얼마나 추운 공간인지를 말해준다.
난방은 MBC와 같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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