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3일 화요일
아침을 마친 호텔의 관광객들은 각자 목적지에 따라 이리 저리 갈라진다.
우리 일행은 포카라 행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짙은 농무로 운행여부가 불투명하여 호텔 로비에서 무작정 대기해야 했다.
다행히 비행기가 뜬다 하여 공항으로 향했다.
거리는 아침부터 매연이 자욱했다.
여기는 자동차의 연료가 탈황처리가 안 돼 눈도 따갑고 숨쉬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더구나 요즈음이 건기라지만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도시의 공기오염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도시는 지저분하고 남루하고 가난의 때가 덕지덕지 끼었다.
그럼에도 이방인을 긴장시키는 비정한 살벌함은 없고 오히려 편안해 보임은 웬일?
공항에 도착해서도 하늘은 맑아 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불안했다. 요 며칠 국내선 비행기는 뜨질 못했다 한다.
라케쓰의 승용차에서 배낭을 내리니 젊은 청년들이 몰려든다. 포터들이다.
필요 없다고 손 사레를 쳐도 막무가내로 달러들어 배낭을 낚아채다시피 카트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한 대의 카트에 세 명씩이나 붙는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람당 1달러씩 3달러를 요구한다.
내가 운반해도 충분할 배낭을 100m정도의 거리를 움직이는데 3달러를 소비했다.
자발적 적선이 아닌 강탈이다 싶은 게 영 마음이 불편했다.
시골 정류장 같은 국내선 공항에는 세계 각국의 트레커들로 북적거렸다.
염려가 현실이 됐다. 일부 하늘길이 열린 노선 외에는 비행기가 뜨질 않는단다.
기약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한단다.
여기는 서울이 아닌 카트만두다.
여기 형편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정말 3시간 동안 무료하게 기다리다가 결국 항공기가 뜨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고서야
다시 타말 거리의 라케쓰 사무실로 철수를 했다.
일정이 꼬여도 단단히 꼬여가고 있었다.
타말 거리의 경복궁이라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켜 점심을 먹었다. 그런 대로 김치나 찌개가 한국음식 다웠다.
라케쓰가 비상 조치한 도요타 봉고차로 포카라를 향하다. 비행기로는 30분이면 갈길을 6시간을 달려야 한단다.
복잡한 도시 카트만두를 빠져나오는 길이 무질서의 극치인지라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듯 아찔함의 연속이었다.
차선도 없고 시커먼 매연을 내품는 고물차들과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카레이서 같은 곡예 운전 경연을 벌인다.
요란하게 장식된 버스에는 출입문 까지도 사람들이 매달려 있고 심지어 지붕위에도 사람들이 가득 올라타 있다.
행인들도 일상인 듯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 엄청난 혼란의 도가니 속에 갇힌 도시는 숨쉬기조차 버겁다. 목과 눈이 아프고 머리가 아퍼왔다.
카트만두-한 때는 지구상 마지막 남은 미지의 신비로운 도시였다.
그러나 느닷없이 몰아닥친 문명의 때가 쓰레기 처리장을 방불케 하여 이 도시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도처에 궁핍과 가난이 떠돌아다닌다. 그 사이를 할 일없는 청년들이 어슬렁거린다.
그럼에도 서울과 같은 살벌함은 없다. 무질서하고 소란스럽지만 어딘지 풀어진 느슨한 모습이다.
어쩌다 서울을 가서 밀려가고 밀려오는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리다 보면 곤두선 날카로움과 비정함이 느껴지곤 했었다.
내가 노상강도를 만나 구원을 요청해도 누구하나 손 내밀 사람 없어 보였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지나칠 사람들 같아 보였다.
그들의 표정에서, 언어에서, 바쁜 걸음걸이에서. 얼음장 같은 차가움을 느끼곤 했었다.
가난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고단하게 하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것이다.
우리의 유년의 공간은 참으로 가난했었다.우리의 군대생활은 또 얼마나 가난했던가!
고단했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곧장 무시무시한 저주의 욕설이 난무 했었고 폭력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네들의가난에는 야차와 같은 아귀다툼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힌두 종교와 뿌리깊은 카스트 제도의 영향 때문인가?
주어진 상황을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묘한 달관 같은게 느껴진다.
카트만두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과정에서 서울로 서울로 몰려들었듯 네팔도 그러나 보다.
노천시장에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의 다 좌판을 벌이는 사람들이다.
카트만두 외곽의 산들은 가능한 모든 급경사의 비탈면을 층층의 다락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저 절벽과도 같은 아찔한 경사면을 어떻게 개간할 수 있었단 말이냐?
포카라로 향하는 길은 해발 1400m의 카트만두에서 800m의 저지대로 내려가는 길이다.
강원도의 구절양장 산악도로보다 더 심한 급커브를 차들은 거침없이 전속 질주한다.
지붕위에 가득 탄 사람들이나 승강구에 매달린 사람들이 튕겨 나갈까 싶어 보는 사람이 조바심 나지만 정작 그들은 태평하다.
어떤 버스위의 승객들은 소리소리 신이 나 노래 부르기 조차 한다.
도로변 곳곳에서 호박돌을 망치로 잘게 부수는 아낙들이 자주 눈에 띤다.
알 수 없는 건 남자들은 그 광경을 멀뚱히 바라만 볼 뿐 도울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포카라로 가는 동안 공장 하나 볼 수 없었지만 유일한 경제 활동이란 이 여인들이 돌 깨는 광경이었다.
랑탕 히말라야에서 발원했다는 트리슐라 강이 우리 여정에 합류하여 계속 따라간다.
처음에는 파석현장에서 유입된 폐수 때문인지 탁하게 보이더니 내려 갈수록 점점 제 색깔을 찾아간다.
3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내달리던 우리 차는 비경의 요지에 자리 잡은 멋진 레스토랑에서 잠시 쉬어간다.
사원과 같이 원형의 건물 뒤편으로 나아가니 아찔한 낭떠러지 아래 시퍼런 강물이 도도히 흘러간다.
아니 흘러 간 다기 보다는 풍경으로 정지된 모습이다.
여행객들을 유혹하기 딱 좋은 정자에서 그럴듯한 밀크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며 잠시 휴식을 즐겼다.
이 기막힌 곳에서 밀크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가졌다. 정자 아래는 시퍼런 강물이 흐르는 절벽이다. 이곳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우여곡절을 다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람들은 강물과 도로에 의지하여 마을을 이루고 모여 산다.
이 천연과 인공의 흐름 곁에 저마다의 둥지를 틀고 마을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소통한다.
이미 어두워진 도로를 한 없이 달리다 차들이 꼬리를 물고 멈춰 섰다.
긴 여정에 지친 몸뚱이는 멀미가 나고 쉬고 싶다 아우성 이지만 차는 이유를 모른 채 한없이 기다린다.
나중에 전달된 소식은 교통사고가 났단다.
더 끔찍한 소식은 이곳 사람들은 교통사고가 나면 며칠이고 도로를 폐쇄하기도 한다는 말이었다.
네팔사람들의 데모와 같은 집단행동을 반다라고 한다.
이 반다로 도로를 폐쇄하면 그들이 그만둘 때까지 대책이 없단다.
아, 이 꼬이기만 하는 일정이 두렵기만 하다. 천만다행으로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슥한 밤, 녹초가 되어서야 포카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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