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프르나

머나 먼 안나프르나3

작곡가 지성호 2007. 1. 24. 16:23

 

2007년 1월24일 수요일

6시30분에 호텔을 나와 여명으로 밝아오는 포카라 페와호수(Phewa Lake)를 산책하다.

호텔주변의 풍광이 히말라야의 휴양지답게 예사롭지 않다.

한국은 엄동설한이지만 이곳은 한 여름 같은 녹색이 별천지를 이룬다.

크리스마스카드에서나 볼 수 있는 부겐벨리아와 포인세티아가 그 치명적인 붉은 빛을,

지난여름의 격렬했던 기억을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야자수의 넓은 잎, 이름 모를 원색의 꽃들이 골목골목 쌓아올린 돌담에 기대어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전설처럼 아스라했던 이 땅에 어찌 대가없이 쉽사리 접근할 수 있겠는가!

어제의 괴롭던 긴 여정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구나!

호수주변엔 요즘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까마귀 떼 까악 대는 소리가 괴기스럽다.

여기 아낙들은 새벽에 빨래를 하나보다.

무리지어 호숫물에 빨래를 행구는 모습이 잠깐 지나치는 나그네 입장에서는 심히 못마땅하다.

설산을 흘러내려 태곳적부터 에메랄드빛으로 고인 이 신령한 호수에 땟물 쩐 비누거품을 저렇게 뒤섞다니…….

 

 

8시15분 티코만한 크기의 낡은 승용차에 5명이 동승한다.

또 그만큼의 짐을 우겨 넣고 험산준령을 오르내려 1시간 정도를 달려서 나야폴(Nayapul /해발1070m)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는 오로지 두 발로만 걸어야 한다.

우리 일행은 나와 내 후배인 O, 라케쓰가 맘먹고 보내 준 가이드 라쥬, 포터 나쿨, 이렇게 4명이다.

산악국 네팔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100여개 종족이 계곡마다 각기 다른 풍습과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어서

이름 뒤에는 성처럼 자기 종족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러니까 가이드 라쥬 구릉(Raju Gurung)은 구릉 족임을 알 수 있다.

나야풀은 안나프르나 트레킹의 출발지로 많은 트레커들에게 잘 알려진 명소이지만

우리나라 60년대의 면소재지와 비슷한 분위기다.

 

 

 

등산로 좌우로 가게, 약국, 트레킹 용품점,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차가 다니는 도로가 이 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이틀, 사흘, 나흘, 그 이상을 산길을 걸어 나야풀에 이르러야 비로소 차를 타고 모든 대처와 연결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야풀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출렁다리를 건너면 갈래길이 나온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푼힐(Poon Hill, 3,210m) 전망대와 고라빠니(Ghorapani, 2,860m)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나온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출렁다리-티벳 불교의 영향인지 빗바랜 롱다가 걸레조각처럼 나부낀다.


이 다리를 건널 때 마을 청년들이 통행료를 요구해 가이드와  실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안나프르나 루트는 잘 개발되고 뻔한 루트라 어쩌면 가이드가 필요없는 코스라고 생각 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뿐만 아니라 고산지대 인 만큼 고산병과 같은 위급시에 가이드는 보험과 같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번 트레킹에서 착하고 성실한 가이드 라쥬는 난관마다 우직하게 자기의 소임을 다해 주었다.

 

 

 

 

간드룽 가는 길, 정면 멀리 네팔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 한다는 영산 마차푸차레가 보인다.

오로지 저 산만을 바라고 며칠을 걸어야만 한다.

 

 

1월인데도 볏가리 쌓인 다락논에 농부의 밭갈이가 한창이다.

누렁소만 아닐 뿐 60년대 우리나라 농촌풍경과 다를 바 없다.

"이려!이려! 자라!자라! " 농부의 소 모는 소리는 없지만 논 아래 계속에선 물소리 철철 흐르고

봄기운이 물씬 오른 산하에 아지랑 아지랑 내려쌓이는 봄볕.

어서들 기지개 펴고 일어나 움직여라는 외침 누리에 가득하다.

산행 첫날, 이토록 기막힌 날씨는 행운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달리 단 히말라야의 바람은 코끝을 간지르고 천국과 같은 이곳에서 누질러 살고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바나나는 햇볕을 탐하여 튼실하게 알알이 열매 맺고

 

 

 

우마의 방울소리 한가로운 마을길에는 소똥냄새,말똥냄새가 향기롭다.

향기롭다는 말에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가공된 사료가 아닌 풀만 먹고 사는 동물의 배설물은 정말 향기롭다.

 

 

                               

 

 

엄마는 등짐 가득 지고 허위허위 걷는길,  막대들고 종종거리며 따르는 아이의 등에 봄볕이 따사롭다.

 

 

               꼬꼬꼬 암탉은 병아리떼 데불고 마당을 헤치고, 봄볕이 아까운 아낙은 옥수수 열매를 자리에 편다.

 

 

 

 멀리 설산에서 발원한 모디콜리강은 억만년 세월 산을 후비고 파내 갖가지 비경을 만들고

다랑이 다랑이 밭들은 하늘 밑 산꼭대기 까지 이르른다.

 

                                                        

                                             강원도 너와집처럼 이곳의 지붕도 너와를 이었다.

 

 

돌담두른 초가집이 우리나라와 똑같다.

 

 

                                 

 

 

부끄럼 많은 산골 아가씨들.... 사진을 찍자고 양해를 구하니 수줍게 웃기만 한다. 

맨발에 슬리퍼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햇볕을 결사적으로 피하지만 여기 여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길에서 마주친 여자들 중  요란한 아웃도어 복장에 ,짙은 썬글라스에, 가면을 쓰고,

쌍지팡이를 든 여자는 당연 한국여자들이다.

 

 

       산골이라 돌이 많다. 담도 돌담이고 계단도 길도 검은 판석을 깔았다. 지붕조차도 이 돌로 얹은 집들이 많다.

 

 

 평지가 드문 네팔리들은 산을 두려워 않는다.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급경사의 산속에도 동네가 있다.

Machhapuchhre Guest House에서 오므라이스에 토마토 수프로 점심을 먹다.

Guest House 라 해서 대단한 건 아니고 옛날 시골 주막집을 연상하면 된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비법은 절대로 주방을 엿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네팔리들의 위생관념은 우리네 60년대 수준.

가이드와 포터는 언제나 달밧을 먹는다. 쟁반에 소복한- 저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많은 양의 음식을

새까만 손톱과 씻지 않은 손으로  개 눈 감추듯 맛있게 먹는다.

그렇다고 더럽다고 생각하면 그건 우리 생각일 뿐이다.

자기 몫을 쟁반에 담아 먹는 네팔리들은 여러사람이 찌개를 가운데 놓고 숟가락 부딪치며  떠먹는 우리 식문화를 이해 하지 못한다.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오후들어 햇볕은 우리나라 4-5월의 훈풍처럼 더욱 따뜻해져 땀이 비오듯 흐른다. 자연히 쉬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난다.


 

초등학생이 물을 받고 있다. 이네들의 교복이다.  오른쪽에 캠핑 플레이스라는 입간판이 서있다.

 

 

 

안나프르나 루트에는 숱한 게스트하우스와 롯지들이 사진처럼 예쁘게 꾸미고 유혹한다. 

아치 두른 붉은 장미

은성한 꽃 그늘

반쯤 열린 사립문 지나

고단한 이 몸  잘도 안아 줄

저 하얗게 빛나는  의자에 발뻗고 눕히고 앉아

어린왕자처럼 히말라야의 설산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지 않은가!

등산로 곳곳에 배낭을 놓을 곳을 만들어 놓고 꼭 쉬고싶을 만한 장소에는 어김없이 탁자와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어떤 곳은 등산로가 마당을 질러가게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카트만두에서 비행기가 뜨지않아 전체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첫날 감당 해야 할 일정이 벅차다.

포터는 오늘 숙영지로 무거운 배낭 두개를 한데 묶어 지고는 벌써 사라져 버렸다.

상식을 뛰어넘는 괴력의 소유지다.

가이드는 은근히 갈길을 재촉하지만 후배는 걷는게 고통스러워 뵌다.

걷는 것 보다 쉬는 짬이 갈수록 늘어난다.

가벼운 배낭이 어깨를 파고든다.

다음엔 일정을 정해놓지 않고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걷고 싶을 때 걸어야지.....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뒤의 다랑밭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안나프르나 (왼쪽)와 마차푸차래가 (오른쪽)가 시립하여 지켜보고 있다.

 

 

 

이 조그만 공간이 학생들의 운동장이다.  그 아래는 낭떠러지, 공놀이조차 불가능 해 뵌다.

 

 

 

멀리 안나프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20m)와 동생처럼 거느린 히운출리(Hiunchuli, 6441m),

 능선의 설선이 낮에 나온 반달처럼  곱기만 하다.

 

 

                                    길섶 보석처럼 눈에 번쩍 띄는 샛노란 꽃무리. 아름다워라!

 

 

 

방금 세상에 태어난 새끼 염소. 비틀거리며 일어선 순간이다.

오른쪽엔 산고의 치열한 흔적인 핏자국이 선명하다.

 

 

네팔 전통모자인 토피를 쓴 노인이 안타까운 봄날 오후의 양광을 탐하고 계신다.  

둘러 덮은 숄에 사그라질듯 쇠잔한 육신이 애잔하다.

발치에  검둥이,  세상모르게 깊은 잠에 빠지고......

사진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석양놀에 황토바른 축대가 얼마나 빛나던지....

 

 

 

망원렌즈로 당겨 본 설산 밑부리가 석양빛에 물들어 간다.

 

 

 

산중 땅거미는 빠르기도 하구나.

저 산을 바라고 기를 쓰고 걸어보지만 산은 다가오지 않고  그자리에 있을 뿐이다.

먼산은 붉게 물들고 검게 보이는 앞산 중턱에 오늘의 숙박지 지누의 롯지 지붕이 하얗게 보인다.

이곳 리버롯지에서 오늘 일정을 끝냈으면 하련만 가이드는 아랑곳 하지않고 갈길을 재촉한다.

원숭이떼들이 요란하게 나무 사이를 날라 다니더니 이윽고 산 아래로 자취를 감춘다.

어둠이 밀려오는데 우리 일행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포터는 먼저 숙영지로 가버리고 자꾸만 주저 앉아 버리는 후배 때문에 가이드도 뒤 처졌다. 

어둠이 내리니 조금만 쉬어도 싸한 냉기가 소름을 돋는다.

멀리 계곡 건너 지누 마을의 불빛만 바라보고 어두운 히말라야의 산길을 홀로 걷다가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기척이 없어 고함을 쳐 불러도 대답이 없다.

덜컥 겁이 났다.

원숭이가 무리 지어 사는 히말라야 원시림인데

사나운 짐승이 살지 말란 법도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나중에 도반을 지나 정글을 통과할 때 표범이나 맹수가 출현할 수 있으니 정글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을 보았다)

배낭 어댄가 있을 헤드 랜턴을 찾는 손끝이 당황스럽다.

몇번이나 배낭을 뒤진끝에 가까스로 랜턴을 찾아 머리에 두른 후

나혼자 목적지까지 가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판단이 안선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체온이 떨어져 견딜 수 없고

오던 길로 되돌아 갔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 갔다가

목청껏 불러 봤다가를 반복하면서 점점 이 상황이 공포스러웠다.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란 말이  갑자기 뇌리를 쳤다.

링반데룽이란 히말라야 같은 고산지대에서 기상악화로 지치고 피로하여 사고력이 둔해진 사람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동일한 장소에서 원을 그리며 방황하다가 결국 지쳐 죽는 것을 말한다.

아, 나는 이 마법에 갇혀버린 것인가!

한참을 우왕좌왕 하는데

내 외치는 고함소리가 누군가에 들렸던지 아래 계곡 오른쪽과 왼쪽에서

구원의 신호같이 랜턴 불빛이 깜박거린다.

어느쪽 불빛을 향해 가야하나 판단이 안섰다.

계곡 건너에서 어떤 외침이 들리긴 들리는데 물소리 때문에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왼쪽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에 계곡을 건너는 어떤 시설물이 있을 것 같고 지누 마을의 깜박이는 불빛을 보고 올라간다면

살길이 있을 것 같은 판단에서였다.

계곡에 당도하니 고맙게도 집 한채가 계곡에 면해 있었고 어떤 사내가 랜턴으로 나를 유도해 준다.

어두워서 얼굴은 볼 수 없으나  이 친절한 사내는 뒤에 몇 사람이 더 오느냐고 영어로 물었다.

원주민? 아니면 ?  이곳 원주민 들은 영어가 안통한다. 

두명이 더 있다고 하니 건너야 할 징검다리를 랜턴으로 비춰준다.

비쳐주는 랜턴에 의지하여 계곡을 건넌 후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던 오른쪽의 불빛을 향해 걸었다.

그 불빛을 찾아가니 놀랍게도 가이드와 후배였다.

난 이 상황을 이해 할 수 없어 어리둥절하니 이곳 지리에 밝은 가이드가 지름길로 먼저 가서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내가 지누를 향해 잘 갔을 거라 믿었겠지만

나로서는 영 오지 않는 두 사람이 걱정 되어 기다리다가 어둠에 홀로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몸도 지칠대로 지치고 화도 났지만 어쩌겠는가

미리 도착해 기다리다가 걱정이 됐던지 포터도 되잡아 내려왔다가 후배의 배낭을 들러매고 성큼 성큼 앞장을 선다.

계곡서부터 지누의 롯지까지는 어찌나 급경사던지 몇계단 올라서서는 터질것 같은 숨을 고루고

헉헉 대면서 쉬다 가다를 반복했다.

속절없이 하늘에는 주먹만한 별들이 초롱인다.

하필 우리가 묵을 롯지는 지누에서도 꼭대기 집이었다.

히말라야의 가이드들은 서로 주고받는게 있는 것인지 꼭 정해진 롯지와 식당을 찾아 들었다.

트레킹을 하다보면 쉬고 싶고 들르고 싶은 장소가 있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거의 죽음에 이르러 롯지에 도착하니 9시가 다 되었다.

여섯시간 일정이 4시간이나 차질이 생긴것이었다.

앞날의 일정이 염려스러웠다.

너무 지쳐 밥을 먹을 수 없어 가져온 컵라면으로 떼우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낭에 몸을 파묻으니

나도 모르게 잇새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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