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사색

플라톤의 음악미학

작곡가 지성호 2014. 4. 9. 06:04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 head, 1861-1947)는 "지난 2000년간의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을 해석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양 철학이라는 것이 다 플라톤의 철학을 이리 풀고 저리 푼 것이라는 말이다.

서양성의 근간이 된 플라톤의 세계관은 관념론이고 이성(理性) 중심 사상이다.

 

 

 

 

이데아(Idea)

 

플라톤은 존재하는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의 두 가지 종류라는 것이다.

이것을 그의 영혼론에 비추어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육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정화란 다름 아니라 육체로부터 영혼의 분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하면 영혼이 모든 방면에서 육체로부터 떠나 자기 자신을 수습하고 저 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도, 될 수 있는 대로 자기만으로 사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하면 육체의 쇠사슬로부터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심미아스 :사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이 해방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심미아스 : 그렇지요.

 

위의 대화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플라톤은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육체를 지니지만 결국은 육체에서 이탈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육체에 구애받지 말아야 하며, 사람은 순수하게 사유함으로써 진리의 인식에 접근할 수 있고, 인간 영혼의 가장 순수한 상태는 종국적으로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분리되는 죽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은 피타고라스 그리고 오르페우스교와도 통하는 일면이다.

그리고 뒤따라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서 영혼은 죽지 않고 살아 존재한다는 입장을 플라톤은 전개해 나가고 있다.

모든 것에 본질이 있듯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있었고 태어나면서 육체를 입은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가 죽은 후 또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은 후에도 영혼은 어떤 곳에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존재하며,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플라톤은 이야기한다.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을 실체관적 철학이라 한다.

실체관이란 플라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처럼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쪼개어지지 않는 하나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단일성으로 존재하고 이 단일성을 지탱해주는 것을 본질이라고 하며 이 단일성의 최초의 근원을 실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서양 철학은 기본적으로 이 세계는 가장 근원적인 어떤 토대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참으로 존재하는, 변화하지 않는, 합성되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과 더불어 이데아론에 접근해 간다.

즉 불멸하는 영혼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분해되거나 변하지 않고, 살아 숨 쉬며 돌아갈 수 있는 영원한 장소가 이데아라고 피력한다.

영혼은 그 명칭 자체에 '참으로 존재한다' 는 뜻을 내포하고 있고, 그 본질처럼 육체에 들어가기 전에 생존하는 것이요, 그것은 조화이며, 덕이다.

이러한 순수한 영혼이 사유(思惟)하는 이성(理性)을 통해 이데아의 세계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 철학을 기본적으로 사유(思惟)의 구조물이라 고한다.

플라톤의 관심은 인간이 어떻게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이 사는 공동체에 반영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미덕과 탁월함이 바로 이 이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 이성을 발휘해서 감각이 주는 착오에서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인간의 이성을 신적인 원리(Logos)와 동일시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성은 신적인 원리이자 동시에 인간적인 미덕이었던 셈이다.

그러면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해야 죽은 상태의 순수성에는 못 미치지만, 가장 순수한 상태의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플라톤과 음악은 만난다.

육체적인 성질에 젖지 않고 영혼이 해방될 때까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인식에 가장 가까이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육체의 건강함도 중요하고, 조화를 지향하는 하모니와 리듬, 즉 음악을 통해 영혼의 조화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들은 플라톤에게 미친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으로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수를 통해 음악을 탐구하던 피타고라스학파와 플라톤의 '순수한 사유'의 방식은 큰 차이가 있으며,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음악학의 방법은 더 큰 차이를 보인다.

 

형이상학

 

이데아의 세계는 비물질적인 세계로서 물질세계의 원형이다.

이데아에 관한 학문은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isik)이라고 불리는데, 이 말은 "비물질적" 또는 더 직역하자면 "물질을 넘어서는" 것에 관한 학문을 뜻한다.

이러한 이데아로부터 이상(理想:Ideal)이란 용어가 나온다. 즉, 추구되는 완전한 무엇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은 현실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 관한 학문은 인식론이라 한다.

우리가 접촉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현상세계, 경험의 세계는 모두 변하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유한하기 때문에 완벽한 세계가 될 수 없다. 진리가 아니다.

세계를 이와같이 완벽한 세계와 완벽하지 않은 세계로 보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서양성의 특징이다.

 

 

동굴의 비유

 

플라톤은 자신의 이데아론을 세 가지의 비유로 설명했다.

그 중 하나가 잘 알려진-『국가론』 제7권의- (동굴의 비유)이다.

그림에서 처럼 인간의 인식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①태양, ②자연물들, ③자연물들의 그림자들, ④불, ⑤인조적 (人造的) 물건들, ⑥인조적 물건들의 그림자들.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곳은 맨 하위의 단계이다.

이 비유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동굴 속에서 뒤를 돌아볼 수 없도록 머리가 고정 되어버린 죄수와 같다는 것이다.

그들의 등 뒤에는 불이 있고, 그 불 앞을 지나는 여러 물체의 그림자가 동굴의 안쪽 벽을 비친다.

죄수는 그림자밖에 볼 수 없으므로 그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죄수 중의 한 사람이 사슬을 풀고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의 빛을 보게 되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지만, 점점 익숙해지면 이제는 더 이상 그림자의 세계를 실재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서 다시 죄수는 동굴로 돌아가 나머지 죄수에게 밖에서 본 실재에 대해 얘기하지만 나머지 죄수들은 밖에서 들어온 죄수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비유이다.

 플라톤이 밖의 세계로 비유했던 것은 이데아의 세계이며, 그 중에서도 태양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이데아 중에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이다.

동굴 속의 세계란 우리들의 육체가 묶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이며, 밖의 세계를 보고 온 죄수는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자 애쓰는 철학자요, 그는 오직 사유에 의해서 이 빛 자체, 즉 이데아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모방이론Mimesis

교재311-312쪽

오희숙 저<음악속의 철학 95-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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