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고원.히말라야 종단기

티벳고원, 히말라야 종단기3

작곡가 지성호 2005. 8. 4. 21:42

 

 티벳고원.히말라야 산맥 종단여행기 3

                                              작곡가 지 성 호

 

표박(漂迫) 제3일(8월4일 목요일)

 

먼냐스키

어제 밤은 저녁도 포기한 체 고소 증으로 두통을 앓았다. 배는 고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여행이 만만치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역시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티베트 민중 신앙의 성지 먼냐스키로 향했다.

티베탄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이면 타루쵸가 어지럽게 펄럭이는 먼냐스키로 마니윤차를 돌리면서 꼬라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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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 마니차를 돌리며 꼬라 나가는 사람들)

타루쵸,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회날 운동장을 장식한 만국기를 연상하면 된다.

(실제로 타루쵸는 깃발이라는 뜻이란다)

깃발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빼곡히 불경이 적혀있다.

색깔은 청, 홍, 황, 녹, 백색의 오행색이고 설치 방법도 다섯 장, 열장, 이십 장 하는 식의

5배수로 조합하여 대문, 동네 어귀, 산마루턱, 나루터, 지붕 위, 다리난간, 갈림길 등 영혼이 다니는 길목이라고 생각되면 어디나 걸어놓는 풍속이다.

그러면 왜 오행색일까?

지구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티베트는 보통 해발 4000-5000m의 고원지대인 만큼

바람이 강하게 불고 햇빛 또한 강렬하다.

멀리 눈부시게 흰 설산은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며

기슭의 에메랄드 빛 빙하호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바람(風)과 햇빛(火), 설산(土)과 호수(水), 그리고 하늘(空),

이 다섯 가지야말로 티베트의 아이콘이 아니겠는가.

이 타루쵸라는 말 대신에 ‘바람의 말(風馬)’이라는 의미의 룽따 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감사와 경배를 표하기 위해 오색의 타루쵸를 내걸었다한다.

현재도 티베트 고원 곳곳에는 타루쵸가 티베트 민족의 비원(悲願)을

설역고원(雪域高原) 에 펄럭이며 흩뿌리고 있을 것이다.

이 타루쵸와 함께 눈에 잘 띠는 도로변이나 언덕배기, 담벼락, 마니석 무더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글자는 “옴 마니 반메 훔(Om Mani Padme Hum)”이라는 불교적 진언이다.

온 우주에 충만한 지혜와 자비가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됨을 의미한단다.

북한의 살벌한 정치적 구호나 한국의 자본의 구호보다 얼마나 고격(高格)인가!

이게 바로 티베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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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냐스키의 타루쵸)

 

티베탄들은 한국의 할머니들이 교회나 절에서 자식의 복을 빌 듯 이곳 서낭당과도 같은 먼냐스키에 와서 쉼 없는 오체투지로 선명하게 채색된 마애불에 몸을 던져 경배하며 복을 빈다.

내 유년의 공간에서도 우리 집안의 여자들은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새벽기도를 드렸다.

할머니도 그랬고 어머니도 그랬다.

할머니는- 이 분을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새벽 미명에 호롱불 원광 안에서 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으시고 홀로

긴 시간 눈물로 온 가족의 이름을 거명하며 기도하셨다.

난 가끔 깨어 평소 우리 할머니 같지 않은 범접할 수 없는 할머니의 거룩한 시간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다를 바 없다.

이들에게 신(神)의 나라와 그의 의는 너무나 멀고 추상적이다.

단지 본능적으로 고이고 쏠리는 내 속으로 난 것들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이

눈물의 기도로 터지는 것일진대 어찌 이를 기복(祈福)이라고 폄 할 수만 있으리.

 

티베탄들의 절하는 모습은 처절하리만큼 필사적이다.

소위 문명권의 신자들은 믿는다 하면서도 자아를 포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소유는 더더욱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체투지! 말 그대로 티베탄들은 온 몸을 던지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몸을 던져 절을 했기에

먼냐스키의 기도처 시멘트 바닥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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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배객들 앞에 저것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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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옷은 김홍경선생님)

 

유감스럽게도 먼냐스키는 빨리 벗어나고픈 곳이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나에게는 먼냐스키의 강렬한 무속적 분위기나

티베탄들의 종교적 열정이 솔직히 부담스러웠고

더 솔직히 말하라면 도처에 방치된 개들의 배설물이

가뜩이나 야크버터 등불이 풍기는 노릿한 냄새로 뉘역거리는 속을 뒤집는 것이었다.

티베탄들이 꼬라 길에 개들을 동행시키는 것은 이들이 우리가 세종대왕만큼이나 존경하는 송첸감포가 개를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노브린카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 노브린카로 이동.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슨 축제와 겹쳐 사람들로 북적인다.

별궁답게 푸른 정원이 있고 연못에는 잉어와 오리가 한가하게 유영하고....

사람 사는 곳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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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원은 일국의 별궁에 걸맞은 세련된 설계나 관리를 받았다기 보다

꽃 좋아하는 주인이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울긋불긋한 화분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촌티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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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온통 황금 칠로 번쩍이지만 이것 역시 시골 장터에서 고사리 파는 할머니의 손가락에 끼어진 곗돈 부어 장만한 싯누런 금반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이 갖는 느낌일까? 방들도 다 궁이 아닌 여염집으로 보기에도 초라하고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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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역시 내 인식의 편견을 가지고 보는 건 아닐까?

개화기 이래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문화보편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구 문명만이 보편적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선진(先進)이라 부르면서 열심히 모방하려 했고, 가능하다면 따라잡고자 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비엔나의 쉘부른 궁전이나 파리 교외의 베르사이유,

아니면 북경의 자금성과 비교해 보는 건 아닐까?

레비 스트로스 같은 구조주의자들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이들의 시각은 원시인이건 현대인이건, 미개인이건, 문명인이건 모두가 ‘인간 정신’이란

동일한 메커니즘에 의한 존재이다.

어떤 문명도 야만과 문명, 비논리와 논리, 우와 열로 대비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물질적 공간도 비균질하다.

예를 들어 자신이 태어난 곳, 첫 사랑의 장소 등은 아무리 누추하더라도

다른 공간과 구별시켜 특별한 공간으로 여기려는 성향을 가진다.

언젠가 책을 보니 다람샬라의 달라이 라마는 최근에 라싸를 여행했던 사람에게

이 여름궁전의 근황을 가장 궁금해 하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달라이 라마에겐 노브린카가 꿈에 그리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달라이 라마가 앉았던 방석에 주인은 어디로 가고 빈자리만

유난히 휑해 보인다.

궁전을 나오는 길에 천막을 친 무대에선 티베트 민속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챰(cham)이라는 것인가?

우리네 창극 같기도 하고 의상을 입고 가면을 쓴 것을 보면 산대도감놀이 같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사진만 몇 컷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유난히 거슬리는 건 젊은 공안 녀석이 거드름을 피며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에는 저랬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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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앉아있는 공안-왼쪽)

 

점심은 바코르 광장 부근의 한국식당에서 된장찌개와 김치로 달게 먹었다.

집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자못 감격스럽기 까지 했다.

 

조캉사원과 바코르 광장

‘신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싸, 그 라싸의 심장부가 조캉사원이다.

포탈라 궁은 달라이라마의 궁전이지만 조캉사원은 문성공주가 중국에서

시집올 때 가져온 석가모니불을 안치한 사원이기 때문에

순례 객들 의 궁극적 참배의 목표이기도 하다.

당나라의 문성공주가 티베탄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내력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청장고원(靑藏高原) 일대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킨 후 강대한 토번왕국을 건설한

송첸감포는 MB가 미국을 좋아하듯 당나라를 흠모하여

2번씩이나 혼인을 간청하다 여의치 않자

나중엔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당을 공략하기도 한다.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당 황실과 혼인을 하면 그만큼 본인의 위상이 국내외적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당태종은 현실적인 고려로 수양딸 문성공주와 혼인을 허락한다.

그래서 문성공주를 화번공주(和蕃公主)라 부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오랑캐와 화친하기 위한 공주인 셈이다.

이러한 정략결혼으로 3000km의 험로를 가마타고 말 타고 시집온

문명국 교양미인 문성공주는 송첸감포뿐만 아니라 모든 티벤탄들의 우상이 됐던 모양이다. 당나라 황실은 오랑캐에게 시집가는 문성공주가 안됐던지

5000명 정도의 사람들과 바리바리 혼수 물을 딸려 보낸다.

일행 중에는 각종 기능인, 악공들도 있었다.

서양도 예외일 순 없지만 옛날엔 이런 식으로 국가 간 교류가 이뤄졌다.

아무튼 문성공주로 인해 불교가 전래되고 선진문물과 제도도 도입되고...

송첸감포는 문성공주의 지성과 미모에 푹 빠져 그녀가 원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다 들어주었던 모양이다.

기존의 토착종교를 불교로 대치하고 전국에 조캉을 비롯한 400여개의 사찰을 건립하고

포탈라 궁도 짓고...

그래서 티베트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송첸감포와 문성공주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야만 한다.

문성공주가 시집올 때의 노정(路程)은 당시 일대 사건이었기에

신화화 되었고 전설이 되었다.

이때 뚫린 길을 당번고도(唐蕃高道)라 명칭 했고 이후 사신과 문물이 왕래했다.

 

광활한 땅 티베트의 순례 객들은 필생의 소원으로 몇 달, 몇 년을 거쳐

오체투지로  조캉에 도달하면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리고 조캉사원의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면 경쟁적으로 내달려서

가장 먼저 공주의 불상 발 앞에 엎드려 머리를 부비고 싶어 한다.

이들의 문성공주에 대한 사랑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이들은 장력(藏曆) 4월 15일을 공주가 라싸에 도착한 날로,

장력 10월 15일을 공주의 탄신일로 기린다한다.

공주는 한족과 티베트 두 민족에 있어서 우호의 화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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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캉 사원)

 

이들의 오체투지는 보는 사람을 숙연케 한다.

카메라에 담고 싶지만 감히 렌즈를 들이밀지를 못하겠다.

가죽으로 만든 앞자락과 손을 보호하는 짝짝이 같은 장갑을 끼고 이마에는 얼마나

절을 했는지 검은 공이가 박힌 체 연신 몸을 내던지는 순례 객들로

조캉사원 정문 앞의 돌바닥은 날마다 반질거린다.

이들은 이 같은 고행을 통해 다음 생에서는 더 나은 삶을 기원한다.

현실은 신산하지만 착하고 선하게 공덕을 축적하면 다음 세상에서는

더 좋은 삶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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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캉사원 입구의 순례객들)

그러나 이 지성소가 문화혁명 당시에는 홍위병들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고 유린되어

돼지우리로 사용되었다 한다.

이러한 만행은 티베탄들의 정신세계에 치명적인 모멸감을 주기위해

의도적으로 저질러진 것이라 하니 피해자의 상처가 너무나도 커서 둘 사이의 화해는

문성공주가 환생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2008)일어난 티베트 민중봉기도 당연히 이곳에서부터 촉발되었고

티베트의 진정한 독립 때 까지는 언제든 폭발할 수밖에 없는 활화산 인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조캉사원에서 마주치는 순례자들은 두 부류가 있다한다.

순례 코스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면 토착종교인 뵌교 신도들이고

왼쪽에서 오른쪽, 즉 시계 방향으로 도는 사람들은 불교도들이란다.

 

드디어 1400년 연륜의 조캉사원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는 무수한 야크버터 등불로 숨쉬기조차 힘이 들고 멀미가 난다.

이네들의 사원 건축양식은 창문이 없거나 있어도 손바닥만 하니 환기도 안 되고

어두컴컴하다.

사원에는 문성공주가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1.5m 크기의 석가모니 금동 상을 중앙으로

주위에 무량광불과 미륵불, 금강신상과 천수천안관음상을 일렬로 늘어놓아

위세를 갖추었으나 이방인이자 이교도의 눈에는 별 감흥이 있을리 없다.

옥상에 오르니 우선 숨쉬기가 편해서 좋았다.

저 멀리 세계의 불가사의인 포탈라궁전이 신비한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사원의 금장식 지붕과 라싸의 원경, 하얀 향로에서 모깃불처럼 피어오르는

바코르 광장의 쥬니퍼 향이 마치 시골집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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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포탈라 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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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캉 옥상에서 바라본 바코르 광장-오른쪽 하단에 하얀 향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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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 광장의 티베트 사람들)

 

오후에는 라싸 교외의 민속공연 장소로 이동하여 양고기 바비큐를 비롯한 티베트음식을 먹고 민속공연을 관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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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바베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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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공연을 마치고 춤추는 관광객들-지원종선생님도 보이네! 근디 몸치 아녀?)

 

관광객 중에는 의외로 한족들이 많다.

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점령지를 시찰하는 의기양양함일까?

라싸는 이제 더 이상 베일에 가려진 신비의 도시가 아니다.

붉은 가사의 라마승들도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자하면 달러를 요구한다.

호텔, 음식점, 큰 상점들은 이미 한족들이 차지했다.

다국적 기업의 자본과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밤에는 이들의 네온 광고가 거리를 밝힌다. 찡짱철도가 개통되면 그 속도는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신의 땅’ 라싸에 신의 자리는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