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루갈다

조장남 교수 정년퇴임 기념음악회

작곡가 지성호 2015. 7. 14. 15:46

그동안 참으로 수고 많았습니다!

                                     작곡가 지성호

 

2008년 여름, 호남오페라 단원들과 함께 신안군 관내 섬을 순회하며 제가 작곡한 오페라 <논개>를 공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도초도, 가보셨는지요! 중국의 닭 홰치는 소리, 개 짓는 소리가 들린다는 머나 먼 낙도, 이 궁벽한 곳이 조장남 교수님의 고향이지요.

금의환향인 셈인 그의 모교에서 공연을 마친 밤, 저는 그의 연로한 어머님이 홀로 지키시는 바닷가 오래된 집에서 숙면을 방해하는 황소개구리 울음을 들으며 섬 소년 조장남을 곰곰 생각했습니다. 조교수님과의 첫 만남은 40년을 훌쩍 넘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요. 억센 남도 사투리의 시커먼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문명세계로 갓 나온 부시맨처럼 보였던 생각을 떠올리고 혼자 입 꼬리가 올라가던 밤이기도 했습니다.

루소의 말처럼 가난이 가르쳐 주는 것은 많습니다. 한겨울 난 바다에서 불어치는 맵찬 바람과 그보다 더 가혹한 가난 속에서 소년 조장남이 어떤 각오와 꿈을 키웠는지 다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정말 뜬금없이 오페라에 뛰어 들었고 오페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몇 번 그러다 말겠지 하는 방관과 냉소와 심지어는 조롱조차 아랑곳 하지 않고 호남오페라단을 전국적 위상과 관록을 자랑하는 오페라단으로 키워 냈습니다. 잘나가는 오페라 단장과 국립대학교 교수로 모교의 후배들 앞에 우뚝 서 인사말을 하는 그의 심사는 어땠을까요? 동네 이장으로만 뽑혀도 플랜카드가 서너장씩 내걸리는 낙도에서 그는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성공의 배후를 그의 가난으로 지목하고 싶습니다. 가난이 그를 담금질 했고 헝그리 정신으로 골수까지 무장시켜 되고 싶은 나를 실현시킨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바닥은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은 절망할 때 그는 넘어진 자리에서 두 손에 흙을 움켜쥐고 헐크처럼 일어서는 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실패가 두려워 나서기를 두려워하며 뒤에서 궁시렁 거리는 사람보다는 욕먹을 짓을 뻔히 알면서 기어이 오페라를 올리는 그를 보면서 행동력이 결핍된 채 그저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저를 뒤돌아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말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고요. 이런 면에서 그는 이 시대의 돈키호테입니다. 그래서 별명을 지어 준다면 사마귀가 수레에 맞선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 적절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장남 교수님!

정년이라면 백발 할아버지의 일이지 우리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우리가 최전선입니다. 그리고 활동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우리네 숙명입니다. 그러나 공자님을 들먹이지 않아도 거리낌 없이 어떤 말을 한다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어떤 일을 한다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 귀하디귀한 경험을 축적한 젊은 원로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제 허심탄회하게 한국적 오페라의 기치를 내걸고 세계로 진출하는 오페라 단장으로서의 마지막 책무를 담당 할 때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황혼의 광휘로움으로 붉고 아름답게 타오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