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및 리뷰

한국 오페라 세계 진출 앞장서 주길

작곡가 지성호 2015. 7. 2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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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남 교수 정년퇴임 기념음악회를 보고] "한국 오페라 세계 진출 앞장서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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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3일 (목) 23:44:28 기고 desk@jjan.kr
   
▲ 작곡가 지성호
 

정년퇴임을 축하한다는 말처럼 모순된 말도 없겠다. 그런 자리에라도 갈라치면 당사자 앞에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언제나 말을 더듬는다. 이제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준엄한 선고가 아니겠는가.

지난 16일 소리의 전당 연지홀에서 조장남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그렇고 그런 뻔한 인사치레의 자리가 아니라 내로라하는 국중의 오페라 가수들과 합창단이 관현악과 함께 좀처럼 보기 드문 호화롭고 알찬 무대를 마련했으며 만석을 이룬 객석의 반응도 뜨거웠다. 판사가 판결로 말하듯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말한다. 지휘자 이일구와 그의 동료들이 성의로 마련한 자리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 할 수 없는 감동으로 조장남 교수의 30년 강단생활과 오페라 인생을 위무했으며 감사와 위로와 격려의 훈훈한 마음들이 음악의 화현 안에서 흥건히 교감되는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어금지금한 우리네 삶은 대체로 찌질하다. 이 찌질한 삶을 특별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그 사람이 하는 일이다. 조장남 교수는 가장 가난한 땅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오페라를 위해 오직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한길을 간다는 것,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인가! 작고 소박한 개인적 소망의 실현도 만만치 않은 게 세상사이다. 그러나 그는 무모한 꿈에 목숨을 걸었다. 바라는 것과 현실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고 포기의 유혹도 많았을 것이다. 그가 정작 넘어야 했던 장벽은 어쩌면 재정적인 장벽이 아니라 방관과 냉소와 조롱이라는 이름의 장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호남오페라단을 전국적 위상과 관록을 자랑하는 오페라단으로 키워 냈다.

자신 있게 말하거니와, 비아냥대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장래에 대한 비관주의자가 업적을 이뤄낸 경우를 찾기 힘들다. 뭔가를 해내는 사람은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의 그릇은 시련과 역경의 시간에 확연히 드러난다. 조장남 교수는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얘기하고 모든 게 다 무너졌다고 생각할 때 분연한 오기를 가지고 일어서는 사람이었다. 그는 타고 난 승부사였다.

그날 기념음악회에 전국각지에서 음악인들이 기꺼이 달려와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오페라단장 조장남 교수에 대한 오마주가 작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국립대학 교수에서 은퇴한 자연인 조장남 씨에게 남은 과제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시골에 사는 우리 집 아래에는 텃밭이 있다. 7월의 폭양에도 아랑곳 않고 왼종일 엎드려 풀을 메는 90세 노파의 허리는 굽은 정도가 아니라 반으로 접어져 이 분의 각다분한 일생이 짐작되는 것이었다. 너무 안쓰러워 말을 붙였다. “할머니, 힘드시지 않아요? 날도 이리 더운데...”

“암시랑토 안혀, 집에 있음 우두머니 심심혀. 외레 일 하는 게 좋아!”

예상치 못한 할머니의 말씀에 죽비로 맞은 듯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심심한 게 죽음보다 무섭다는.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일이 있어야 한다는.

그렇다. 자연인 조장남 씨가 심심하게 빈둥거리기에는 너무나 젊다. 이제 허심탄회하게 한국적 오페라의 기치를 내걸고 세계로 진출하는 오페라 단장으로서의 마지막 책무를 담당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