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및 리뷰

[리뷰] 호남오페라단 창단 30주년 '라 트라비아타

작곡가 지성호 2015. 5. 27. 04:31

 

 

                                                                                    작곡가  지 성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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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공연 모습.
 

호남오페라단이 창단 30년을 즈음하여 도민과 애호가들에게 보은의 무대로 마련한 ‘라 트라비아타’는 서곡에서부터 심상치 않게 출발한다. 비올렛타의 죽음과 비극적 사랑의 결말을 암시하는 처연한 선율이 비장하게 흐르는데 무대의 높은 곳, 어둠속에서 전라의 비올렛타를 알프레도가 두 팔로 받쳐 안고 있다. 이 모습을 화려한 파티복의 또 다른 비올렛타가 지켜보는 것으로 서곡이 끝이 난다. 벌거벗은 비올렛타! 의표를 찌른다. 저게 뭐지? 강력한 의문을 품은 채 1막의 떠들썩한 파티가 시작된다.

‘라 트라비아타’는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가장 많은 공연 빈도를 가지고 있어 웬만한 청중이라면 춘향전을 보는 것 같이 익숙한 오페라이다. 이게 문제인데 똑 같은 게 반복된다면 정형화된 전례로 굳어진다. 음악악보로 고정된 이상 한계가 있고 결국 연출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30년 동안 400여회의 공연을 축적한 국내 굴지의 호남오페라단이라면 뭔가 달라야 한다. 오페라는 본래 서양 것이고 우리나라에 유입된 지 올해로 70년이다. 그 세월동안 말로 하자면 서툰 말, 흉내 내는 말이 아니라 이제 내면의 심층과 뉘앙스까지도 구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무대는 호남 오페라단도 이제는 카피에서 자기 언어로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 해준 공연이었다.

오케스트라도 악보 따기에 급급 하는 게 아니라 아우라를 풍기며 음악을 풀어낸다. 기성 악단이 아닌 이 오페라 공연을 위해 결성된 오케스트라로 알고 있는데 이일구 지휘자의 탁월함과 젊은 연주자들의 열정이 일궈 낸 성과다. 특히 스칼라 오페라 합창단은 합창은 물론이려니와 군중 신의 동선에서 전문오페라합창단 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발레단도 만년 현역 손윤숙과 함께 우아하고 세련된 몸짓으로 예술성을 고조시켜 주었다. 가수도 오케스트라와 합창도 오히려 청중이 맘 조이던 시대는 지났다.

제대로 된 오페라에 청중은 숨죽이고 무대에 몰입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30년이 걸렸다.

이제 순수예술 이라고 보호받고 양육 받는 너그러운 시대는 끝났다. 고도 정보화 시대의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저 거대한 쓰나미 같은 소비적 대중예술의 흡인력에도 맞서야 한다.

무엇으로? 오로지 작품성이다.

‘라 트라비아타’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비극적 사랑의 법칙에 등장할 법한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그만큼 통속적이다. 그런 만큼 그 뻔 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성이 개방을 넘어 방종의 시대를 살고 있어 도처에 사랑이 넘쳐 나는 것 같지만 사실 리비도적 욕망의 배설일 뿐 현대인들은 진실 된 사랑에 허기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사랑과 같은 천차만별의 미묘한 감정을 얘기 할 때는 한없이 무기력하다. 그 떨림, 그 눈빛, 환희, 탄식, 고통 같은 걸 어떻게 말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를 노래로 풀어 갈 때는 달라진다. 음악은 이런 형용불가능성을 들어내는데 타고난 재주가 있다. 음악의 힘이 아니겠는가!

비올렛타 고은영과 알프레도 박진철은 이 음악의 힘을 넓은 모악당 곳곳에 잘도 흩뿌린다. 이 고장 토박이들의 알찬 성장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다.

‘라 트라비아타’는 빠지는 사랑에서 같이 가는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순간 안타깝게도 죽음이 사랑을 격리시킨다. 어쩔 수 없이….

생명이 점점 꺼져가는 비올렛타는 다시 서곡에서처럼 벌거벗은 몸으로 몸부림친다.

“오, 하느님! 많은 고통을 겪은 젊은 생명이 이렇게 죽나이다!”

무대에 온통 드리워진 하얀 커튼은 죽음의 빛깔일까? 절묘한 수미쌍관이다.

벌거벗은 몸처럼 죽음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 일 수밖에 없다는!

   
▲ 지성호 오페라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