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가 부동이라더니 나자리 궁전은 안과 밖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벌레 먹고 못생긴 석류를 쪼개어 루비 보석들이 알알이 박힌 신비의 속살을 드려다 보는 기분이랄까?
어떤 찬사로도 형용 불가능한 초월적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그만 말을 잃었다.
사실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언어가 대단할 것 같지만 이토록 절대적인 것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다.
언어로 중개된 실제 표상의 방법이 불가능 할 때 우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이 궁전을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면, 대체 이 장인들은 어데서 왔단 말인가!
신의 나라에서 궁전을 짓다가 뭔가 잘못하여 이승의 나라로 추방된 사람들이 천벌을 각오하고 하늘의 기억을 되살려 조성한 것일까?
아니면 신이 인간에게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보여주기 위해 신탁(Oracle)을 통해 직접 전수하신 비법이 내림으로 은밀히 전해오다가 이 궁전에서 만개한 것일까?
본래 나자리 궁전(스페인어)이 영어권에서 나스르궁전으로 불린다.
내 생각으론 스페인 궁전이니 당연히 나자리로 불러야 맞는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영국 얘들이 지명을 자기들 입맛대로 바꾸어 부르는 오만방자함이 있다.
어쨌든 지도에서 보듯 나자리 궁전 안에는 건축연대가 각기 다른 세 개의 궁이 있다. 메수아르 궁(Mexuar Palace), 코마레스 궁(Comares Palace), 사자의 궁(Palaceof the Lions) 이다.
지도와 함께 이들 각 궁전의 건축연대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Palacios Nazaries (Nasrid Palaces)
1.Mexuar Palace: Ismail I (1314-1325), Muhammad V (1362-1391)
2.Comares Palace: Yusuf I (1333-1354), Muhammad V (1362-1391)
3.Palace of the Lions: Muhammad V (1362-1391)
10. Santa Maria de la Alhambra (산타마리아 성당)
11. Palacio de Carlos V(카를로스 5세 궁전)
20. Patio de Machuca (마추카의 중정)
21. Mexuar(메수아르 궁전)
22. Fachada de Comares (코마레스궁전의 Facade )
23. Torre de Comares (코마레스 탑)
24. Patio de Arrayanes (아라야네스 정원)
25. Bano de Comares (코마레스 궁전의 목욕탕)
26. Patio de los Leones (사자의 중정)
27. Sala de Abencerrajes (아벤세라헤스의 방)
28. Sala de los Reyes (왕의 방)
29. Sala de Dos Hermanas (두 자매의 방)
30. Patio de Lindaraja (린다하라 정원)
31. Peinador de la Reina (여왕의 Dressing Room)
아라야네스 정원(Patio de Arrayanes)
나자리 궁전은 두 개의 커다란 정원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많은 방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궁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정원이 아라야네스 정원이다.
남북 35m, 동서 7m의 직사각형으로 만든 연못 양옆에 “천국의 꽃” 이라는 아라야네스가 예각으로 잘 전정되어 짙푸르게 울타리를 둘렀다. 이 꽃나무 때문에 아라야네스 정원이라 불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천상의 꽃은 철이 아니라 볼 수 없고 그 어리는 향기는 맡을 수 없지만 멀리 시에라네바다 산으로부터 수로를 타고 흘러온 물이 찰랑이는 수면에 신비롭게 비치는 궁전의 모습은 인간이 궁리한 천국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언제나 목이 타는 열사의 땅에서 무어인들이 꿈꾸고 열망하던 이상향을 현실에 구현해 놓은 것이다.
인도의 타지마할도 여기에서 착상의 계기를 얻었다는 데 그럴 만 하겠다. 고여 있는 듯 하지만 깊이에서 쉼 없이 흘러 움직이는 물길이 궁전 곳곳을 휘돌면서 한여름 열기를 식히고 보는 이들의 마음에 그윽한 평화를 주는 낙원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 “물 위에 궁전을 지었다”는 말이 나왔나보다.
위 아래로 일곱 개의 아치를 가진 코마레스 궁.
코마레스 궁전 위로 모자를 쓴 듯 이질적이고 멋대가리 없는 카를로스 5세의 궁전 지붕이 얹혀 보인다
이와 대칭이 되는 맞은편에는 높이 45m의 코마레스 탑이 역시 일곱 개의 아치위로 솟아 있다.
그렇다면 일곱 개 아치의 의미가 있을 터인데 과연 무엇일까?
아브라함 계열 종교 즉, 유대교, 천주교, 개신교 , 이슬람교 등에서는 천국이 7개의 층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슬람 경전인 꾸란 71장, 노아의 15절에 “하나님께서 층을 두어 일곱 개의 하늘을 만드신 것을 알지 못하느뇨”와 같이 일곱 개의 층위는 명확하게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천국에 이르는 문도 일곱 개 일 수 밖에…….
참고로 무함마드의 천국 관을 보면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이 있고, 값비싼 비단으로 덮힌 의자와 침대 그리고 넘치는 잔과 감미로운 과일“ 들로 상당히 즉물적이다.
꽃잉어들의 유영이 한가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 옛날 독극물의 유입여부를 확인 하기 위해서 물고기들을 키웠다 한다
연못에 물을 공급해 주는 수반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
모두 124개의 정교한 대리석 기둥과 현란한 이슬람 문양의 아치들이 회랑을 이루어 둘러싸인 공간을 사자의 중정이라 한다.
이 중정 한 가운데 12마리의 돌사자가 떠받드는 원형분수가 놓여있다. 바로 ‘사자의 샘’이다.
12마리의 사자상은 그라나다에 살던 유대인들이 선물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 12지파를 의미한단다.
중세 기독교인들로부터 박해의 대상이었던 유대인들이었지만 무어인들 하고는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여기서 흘러나온 물은 중정을 동서남북으로 4등분하여 각 방향으로 연결된 수로를 통해 건물 안으로 물을 공급해주는 구조이다. 4개의 수로는 각각 물, 젖, 포도주, 꿀의 강을 의미한단다.
이 사자의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 감동한 타래가가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을 작곡했다는......
이 사자상 때문에 궁의 이름도 사자의 궁이 된 것이다.
전형적인 이슬람 궁에서 동물상을 보다니, 의외이다.
12마리의 사자 입에서는 매 시간마다 해당 시간을 기표하는 사자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와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역할을 했었다하나 기독교들이 이 궁을 접수하고 손을 댄 후부터는 이런 기능은 사라져 버렸다 한다.
“아랍 건축물의 최후이자 최상의 노력은 모든 물질적 형태를 초월하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문 그라나다 편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 사자의 궁의 재료는 당연히 물질이지만 장인들의 신기에 이른 솜씨로 조탁된 아름다움은 과연 물질이 아닌 생명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름다움을 ‘비율, 수려함, 완벽함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적인 속성이 아니겠는가. 신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이렇게 아름다움의 극치를 통해 감지된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죄 많은 나는 바로 이 아름다움의 원천에서 유출된 신의 호흡에 내 호흡을 일치시켜보려 하는 것이다.
124개의 기둥들은 카를로스 궁전의 열주들이 갖는 무게감과 장엄함에 견주어 본다면 비교불가의 가녀리고 섬세한 모습이다.
카잔차키스는 이를 “무게에서 해방되었다” 고 말하고 있다.
카잔차키스의 탄복을 인용해본다. “아치는 영묘하게 물결친다. 장식물들은 사상처럼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 된다. 단일한 주제가 주어지고, 이 주제는 수학적인 정교함과 환상의 풍요로움으로 무한히 울려 퍼진다”
테셀레이션(tessellation)기법이 있다. 이미지를 조합하여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만약 무어인들이 구체적 형상을 조탁해 놓았다면 이런 초월성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네델란드 화가인 에셔( M. C. Escher1898-1972)가 무어 인들의 기하학적 무늬와 수학적 변환을 이용하여 창조적인 형태의 테셀레이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용성과 효용성만을 따지는 오늘날 시각에서 저토록 지극한 공력의 심저를 짐작하기란 쉽지않다.
도림질 세공의 정교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설화 석고로 만든 아치와 대리석 기둥의 연결부위에는 납으로 처리된 부분이 있어 지진에 흔들릴 때도 일종의 완충작용을 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되어있단다. 요즘 말로 하면 내진설계가 구현되었다는 가이드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