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아벤세라헤스 방

작곡가 지성호 2016. 2. 5. 19:06

아벤세라헤스 방(Sala de los Abencerrages)

이제 사자의 중정에서 실내로 들어간다.

사자의 중정에서 남쪽으로 들어가면 아벤세라헤스방이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지른다.




어두운 밤하늘에 명멸하는 휘황찬란한 불꽃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듯한, 그야말로 별유천지에 들어선 것이다.

저 화려의 극이 수정처럼 뭉쳐 빛나는 것들을 모카라베(Mocarabes) 양식이라 한단다. 순간 서양음악사에 언급되는 모자라빅 챤트와 연관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이점은 나중에 톨레도 기행 때 언급하도록 하겠다

 

무함마드40세가 되던 610, 메카 근교 히라(Hira)산 동굴에서 깊은 명상에 잠겨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쿠란을 받아 이슬람의 개종조(開宗祖)가 된다. 이때 하늘에는 초승달과 샛별이 나란히 떠 있었고 동굴의 천정에는 빼곡히 들어찬 종유석들이 천사의 광채로 보석처럼 빛났었다 한다. 무슬림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 날, 신비의 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나무나 석회의 작은 파편들로 정교하게 천정을 장식하는 모카라베 양식을 고안해 낸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예수의 수태를 고지한 천사인데 무함마드에게도 나타났었나보다  

하여간, 대천사 가브리엘은 무함마드에게 신이 준 문서를 들고 나타났으며 읽으라고 세 번 말했으나 무함마드는 읽지 않았다.

저런! 글을 읽을 줄 몰랐단다.

천지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역사적 순간에 모양새를 엄청 구기는 일이지만 할 수 없이 가브리엘이 직접 읽어준다.

이 어색한 상황은 전능자 알라신이 모함마드가 까막눈임을 미처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대천사 가브리엘이나 무함마드는 잘못이 없다.

아니지, 아니지! 무함마드가 까막눈이기 때문에 신의 문서는 진정한 계시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무함마드는 이슬람이라고 대답하게 된다. 이는 아랍어로 귀의,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읽는다는 의미의 쿠란이라는 말이 곧 이슬람교의 경전이 된 것이다.





8각 별모양의 천장 아래 측면에 자리 잡은 16개의 창문을 통해 빛이 입사되고, 이 빛을 머금었다 되쏘는 5천여 개의 프리즘은 빛의 각도에 따라 별이 총총한 하늘이 회전하는 듯 한 효과를 자아낸다.

광막한 사막에서 하늘을 이고 한뎃잠을 자는 무어인들에게 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이글거리는 태양이 열풍과 함께 모래언덕너머로 사라지면 고단한 한낮의 기억을 뒤로 한 체 억만년 먼 곳으로부터 갓 태어난 푸른 별들이 찾아와 매일 매일 촘촘해지는 하늘을 우러르며 이들은 어떤 꿈을 꾸는 걸까?

우주적인 시공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무의미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동이 트면 사라질 부랑의 꿈을 물화시켜 이들은 저렇게도 빼꼭하게 천장에 별을 새겼다. 무의미와의 치열한 싸움이자 존재에 대한 확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무슬림들이 그들의 꿈과 환상을 현실에 조탁한 이 지독하게 아름다운 방에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육이 일어났었다고 한다면 믿기겠는가? 극명한 탐미의 이면에는 광기어린 파괴와 살육의 본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이 방의 이름이 아벤세라헤스라 명명된 유래가 되었다는 끔찍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술탄 보아브딜과 정적관계로 대립했던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한 청년이 왕실 여름별장인 헤네랄리페에서 왕비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술탄이 연회를 구실로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청년 36명을 초대해서는 무참하게 도륙했다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방이 가장 참혹한 비극의 방이 돼버린 것이다. 이 날 아벤세라헤스 방의 수조는 선혈로 넘쳐났고 이 핏물은 연결된 수로를 타고 사자의 중정으로 흘러가 12마리의 사자상은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해 냈다는 것이다. 다시 이 핏물은 동서남북으로 뻗은 수로를 타고 연결된 모든 방으로 흘러갔을 터이니 온 궁전이 아비규환의 피범벅으로 점철된 셈이다.



                                            아벤세라헤스 방의 수조

이날 빗줄기가 굵어지는 가운데 알람브라 궁전 탐방의 최종 목적지인 헤네랄리페 아세키아 중정에 들어섰을 때 비운의 주인공인 왕비와 청년이 이 나무 밑에서 첫 키스를 나눴다는 고사목을 볼 수 있었다. 술탄의 복수는 집요하고 치밀했던 모양인지 이들의 밀회를 지켜 본 나무의 뿌리를 잘라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다. 뿌리 없는 나무는 고사 할 수밖에... 애꿎게 횡액을 당한 나무는 담벼락에 묵인 채 육탈된 흉한 몰골로 당시의 비극을 고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궁중비사는 태풍과 같은 재해로 뿌리가 뽑혀 고사한 나무를 보고 누군가 말재주 좋고 상상력 좋은 사람이 아주 그럴듯하게 꾸며 낸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간들은 비극에 감동한다.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화한 꿈의 궁전 알람브라에 이만한 비극적 전설이 없다면 영화의 세트장과 다를 바 없겠다

 죽은 나무의 벽에 타일로 새겨진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내가 스페인 말을 모르니 해독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겠다. 다만 이러한 판타지를 통해 우리는 무언의 통찰력을 얻게 된다.

사랑의 집착은 이토록 맹목적이고 무자비하다는 것을....



                                   타일에 아벤세라헤스와 보아브딜의 이름이 보인다.


인도의 샤 자한(Shah Janhan)은 사랑하는 왕비가 출산하다 죽자 상실한 사랑의 슬픔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세상에 다시없는 아름다운 영묘를 세운다. 인부 20여만 명, 코끼리 1,000마리가 동원됐고 오천 명이 넘는 당대 최고의 장인들을 모아 22년 동안 공사를 벌였다. 후세사람들은 이를 왕비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의 묘 곧, 타즈마할(Taj Mahal)이라 부른다. 왕의 비원대로 모든 것이 끝나던 날, 누구도 이와 같은 아름다운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장인들의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사랑의 집착이 불러온 광기이다.

흔히 사랑이란 이름으로 대상에 집착한다. 집착은 맹렬한 열정을 불러와 무분별을 낳는다. 무분별의 끝은 파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말라

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애써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커다란 불행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얽매임이 없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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