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지성호의 스페인 떠돌기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은 사자의 궁전을 끼고 아벤세라헤스 방(Sala de los Abencerrages)과 마주보는 방으로 알람브라궁전에서 아름다움을 두고 쌍벽을 이루는 방이다.
술탄의 은밀한 하렘에 두 자매의 방이라는 명칭이 궁금하기는 하나 그 유래가 분명치 않아 보인다. 보아브딜이 총애해 마지않던 후궁 자매와 열락을 누리기 위해 사치를 다한 곳이라는 설이 있는데 아무리 그렇지, 명색이 후궁이라도 왕비인데 두 자매를 한방에 기거하게 하고 술탄이 드나들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다른 설로는 이 방에 같은 모양의 대리석이 두 개가 있어 명칭이 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랫동안 연금술사들은 원소 전환설을 근거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며 값싼 납과 같은 금속을 비싼 금으로 바꾸려는 대박의 꿈을 실현시키려 무진 애를 썼지만 무위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알람브라 궁을 조성한 장인들은 설화석고(雪花石膏)라는 무른 돌을 재료로 보석보다 더 보석다운 보석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보라! 저 무르녹을 듯 영롱한 보석의 주렴을!
알람브라 궁전을 지을 당시 이븐 잠라크(Ibn Zamrak)라는 궁정시인이 있었다. 당대에 가장 뛰어난 문학적 성과를 획득한 시인이었던 그는 이 방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벽면에 다음과 같은 시구를 새기게 했다.
기둥으로 떠받친 볼트를 수놓은 수많은 아치,
밤이면 반사되는 빛에 아치는 더없이 아름다워진다네!
그대여, 이들이 마치 하늘을 회전하는 행성 같지 않은가
긴 밤을 지낸 후 새벽의 기둥이 어렴풋이 나타날 무렵
새벽의 빛조차 무색케 할 것 같지 않은가!
오늘같이 추위로 을씨년스러운 날, ‘새벽빛조차 무색케 할 것 같은’ 두 자매의 방은 수로를 타고 흘러들어 원형수반을 가득채운 뜨거운 물로 기분 좋게 덥혀졌을 테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마치 하늘을 회전하는 행성 같은’ 천장으로 안개의 너울처럼 휘돌며 지상에서 천상의 열락을 누리려는 술탄의 욕망을 채워줬을 것이다.
망국의 한을 안고 북아프리카로 떠나면서 보와브딜이 고갯마루 마상에서 멀리 알람브라를 내려다보며 "스페인을 잃은 것은 아깝지 않으나 알람브라를 다시 못 보는 것이 원통하다" 고 눈물을 흘렸다는데, 아마 이 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닐는지...
두 자매의 방 천장
두 자매의 방 벽면의 현란한 문양은 종교적 금기로 사람이나 동물의 구체적 형상을 넣지 않았지만, 나무나 꽃, 식물과 같은 문양이 추상적으로 무한 전개되는 아라베스크의 정수박이를 보여주고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아폴로나 아테네 여신상과 같이 다양한 신상에 익숙한 문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형상에 대한 병적인 회피는 의아스럽기 조차하다.
그러나 유대교나 이슬람이 신상을 세우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그들에게 신은 언어와 형태를 넘어선 영원한 타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억제된 창조본능은 테셀레이션(Tessellation)같은 추상의 영역에서 만개한다.
미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적 대상의 묘사에 종속되는 인물이나 동물의 표현은 자칫 진부해 질 수 있다. 그러나 대상이 추상화 되면 적어도 진부해지지는 않는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전통적 조성음악의 틀로 작곡을 한다 할 때 고도의 음악성이 결여된 작품은 진부하기 이를 때 없지만 20세기 표현주의 이후의 현대음악은 서툴게 작곡한 작품이라도 적어도 촌스럽게 들리지는 않는다고...
두 자매의 방 벽면의 현란한 문양들
린다하라 중정
린다하라 중정은 중정이라는 말 그대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답답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건물의 외벽에 갇힌 것이 아니라 중세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아치 회랑이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라 오히려 아늑하고 편안하다. 마치 부지런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주부의 거실에 들어선 듯 모든게 반듯하다.
본래는 야외 정원이었지만 카를로스 5세의 거처를 증축하는 과정에서 오늘과 같은 안뜰이 되었단다.
잘 전지된 키 작은 관목들이 기하학적 도형으로 구분되고 그 중앙에 설화석고 세공의 원형 분수가 자리하고 있다.
워싱턴 어빙은 두 자매의 방에서 기거했다한다. 그는 이 방의 창가에서 내려다뵈는 분수를 보고 찬탄의 글귀를 남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원인가! 땅위의 꽃들이 하늘의 별들과 겨루는 곳! 수정 같은 물이 가득 찬 저 설화석고 수반은 세상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한가운데 빛나는 꽉 찬 보름달 말고는 아무것도 비할 수가 없네.’
이 설화석고 수반은 복사본이고 진품은 알람브라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단다.사이사이에는 왜소하게 껑쭝한 사이프러스나무들이 기둥처럼 들어서 예각으로 깎여진 수리적 질서의 경직성을 깨고 있다.
린다하라 중정
뜬금없이 내 고등학교시절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게 된다.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이 프랑스식 정원을 만드실 거라고 조회시간마다 자랑을 하셔서 프랑스식 정원을 아무도 본 바 없는 우리들은 그 대단할 것 같은 미구의 정원에 대한 기대가 증폭되었다. 당시 우리 촌놈들은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미의식이 발단한 예술의 나라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완성된 프랑스식 정원의 실체는 시멘트 구조물에 페인트로 마감한 원형분수대와 예의 기하학적 도형의 꽃밭이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기 마련, 이후로 그 조악한 프랑스식 정원은 우리에게 조소의 대상이었다. 오래전 베르사이유 궁전에 갔을 때 압도적으로 장대한 규모와 깎고 다듬은 인공미의 정수를 보고 내 모교의 짝퉁 정원이 떠올랐었는데....
대사의 방 (Sala de Embajadores)
대사의 방은 술탄이 외국대사들을 접견하던 업무적 공간이다. 그래 그런지 나자르궁에서 가장 큰 규모로 사방 12m의 정방형 방이다. 서구의 궁전 접견실에 비하면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 정교한 장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짙은 밤색의 천장은 이슬람 세계의 우주관과 종교관을 형상화한 것이란다. 그들의 도그마에서 말하는 천국의 문은 8개이고 지옥의 문은 7개인데 천국의 문이 지옥의 문보다 하나가 많은 것은 알라의 자비가 분노보다 많다는 것을 뜻한단다. 알라가 거하는 궁극의 제 8천국(天國)에 이를 때까지 7개의 관문은 무슬림들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천로역정인 셈이다. 이러한 도그마에 입각한 일곱 개의 천국이 삼나무로 된 퍼즐 8,017개로 정교하게 맞물려 표현되고 있다지만 이방인인 나로서는 종교적인 감흥은 있을 리 만무하고 다만 그 정교함에 경탄 할 뿐이다.
이 대사의 방은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의미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사벨라는 보아브딜에게 공식적 항복을 받아냄으로 718년부터 1492년까지의 이슬람 통치를 종식시키고 레콩키스타를 완성한다. 이 날 보아브딜은 이사벨에게 무어인들의 종교적 자유와 재산권 그리고 상권을 유지시켜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의 항복조건은 겨우 7년 정도밖에 지켜지지 않았고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처럼 탄압이 시작된다. 800년 가까운 정주의 세월이면 이미 그들의 땅이다. 그러나 그들은 패전민이다. 그들은 고향과 다를 바 없는 그라나다를 떠나 북아프리카로 대량 이민을 가거나 강제적으로 개종해야만 했다.
고토회복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사실상 정복자들인 기독교 왕정은 그라나다를 점령하자마자 이슬람의 잔재를 철저하게 파괴하기 시작했다. 알람브라 궁전도 이 재앙을 피해 갈수는 없었다. 3분의 2가 파괴되고서야 그라나다를 방문한 페르디난도가 알람브라궁전의 아름다움에 놀라 이 만행을 중지시켰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의 알람브라는 이 때 이후에 원형을 복원하고 보존시키도록 노력한 결과물이다.
대사의 방 창문
세계사의 또 하나의 전기는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의 만남이다.
보아브딜에게 항복을 받아 내고나서 4개월 보름이 지난 1492년 4월 17일,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와 이 대사의 방에서 면담을 갖고 협약을 체결한다. 그 유명한 산타페 협약이다. 산타페라, 어데서 많이 들었던 이름 아닌가?
제노바 평민 출신 콜럼버스는 이 회담에서 말도 안 돼는 파격적인 요구를 들이민다.
콜럼버스가 요구한 내용은 세습권으로서 제독과 종신직으로서 부왕의 지위에 버금가는 총독의 지위를 달라는 것이다. 또한 새로이 발견된 지역으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이익의 10%와 차후 예상되는 교역활동에 대해서도 최고 1/8의 자본참가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황당할 정도로 불합리한 요구였지만,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가 요구하는 대로 다들어주었다. 이 파격성 때문에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는 이야기도 만들어진다.
사실, 콜럼버스는 포르투갈과 프랑스등 여러 나라를 떠돌며 자신의 야심찬 항해를 후원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모두들 당시로서는 황당한 제안에 사기꾼정도로 치부하고는 문전박대 하곤 했었다. 그러니 이런 오해를 받을만했다.
이 협약에 따라 1492년 8월 3일, 산타마리아 호, 핀타 호, 니냐 호 3척에 12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마침내 파로스 항구로부터 그토록 열망했던 항해에 나서게 된다. 위기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492년 10월 12일, 드디어 핀타호에 타고 있던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가 소리쳤다.
“육지가 보인다!”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외침이었다.
여기까지는 정복자의 입장이다. 그러나 역사가 승자만의 기록이 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피정복자의 처지를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대사의 방 벽면 세부
레콩키스타가 완성된 이면에는 이교도들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살육과 파괴의 어두움이 있었다. 이를 일선에서 직접적으로 담당한 중·하급 전사 귀족들이 해외 식민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이미 살육과 약탈에 익숙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만의 신대륙에 도착해서 이방인을 만났을 때 거리낌 없이 칼부림부터 시작하였다. 침략자들의 앞장에서서 종교적 명분으로 살인의 면죄부를 주던 신부 가운데 그래도 일말의 양심을 가진 신부가 있었던 모양이다. 라스카사스 신부이다. 이 신부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기록을 보면 끔찍하단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기독교도들은 말과 칼, 창을 사용해 학살을 시작했고 원주민들에 대해 이상할 정도의 잔혹성을 보였다. 마을을 공격하면서 어린이, 노인, 임산부, 혹은 출산 중인 여인까지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칼로 찌르거나 팔다리를 자르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마치 도살장에서 양을 잡는 것처럼 갈가리 찢었다. 그들은 한칼에 사람을 벨 수 있는가, 머리를 단번에 잘라낼 수 있는가, 혹은 칼이나 창을 한번 휘둘러서 내장을 쏟아낼 수 있는가에 대해 서로 내기를 걸었다. 어머니의 품안에 있는 아이를 낚아채서 바위에 집어던져 머리를 부딪치게 하든가 강물에 집어던지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자식들아, 그곳에서 펄펄 끓어라.’ … 그들은 키가 낮은 교수대를 만들어서 발이 겨우 땅에 닿을까 말까 할 정도 높이로 사람을 매달아 놓았다. 구세주 예수와 12제자를 기념한다면서 13명을 이렇게 매단 다음 불타는 장작을 발치에 두어서 산채로 태웠다.”
당시 신부들은 그럴듯한 도그마를 만들어 정복대열에 앞장섰다. 원주민들은 세례 받은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죽여도 동물을 죽이는 것과 같이 살인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주었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 무려 천오백만 명이라면 믿어지는가?
설마 싶은 이 참혹함은 ‘흑색 전설(Black Legend)’이 된다. 학자들은 이 믿을 수 없는 광기를 실제 일어난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한 문명권의 처절한 멸망의 대가는 금으로 모아져서 1503~1510년 사이에 19톤의 금이 스페인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정복 홀리건 들은 운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수많은 문화재급 보물들을 녹여 금괴로 만들기도 하였다. 이 금괴는 또 다른 탐험과 정복사업의 비용으로 충당되었다.
참고로 많은 미국인들은 10월 12일을 ‘콜럼버스 데이’로 기념하지만, 진보적인 대학이 위치한 버클리 시에서는 이 날을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기념한단다. 일베와 어버이연합 노인들은 어느 곳으로 합류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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