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17일 오전의 일정
메스키타를 나와 코르도바의 고색창연한 골목길을 기웃거리다.
햇빛은 찬란하고 날씨는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상쾌하고 부드러운 대기를 호흡할 때마다 살아 있는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 기막히게 좋은 날씨다.
포트로 광장 (Plaza del Potro)
짙푸른 하늘아래 순백의 건물들이 눈부시다. 고무풍선처럼 부푼마음으로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광장에 이른다.
저 분수의 정점에 앞발을 들고 서있는 망아지 때문에 포트로 광장이라 부른단다. 망아지를 스페인에서는 표트르라 부른다니까. 이 망아지가 코르도바 시의 문양으로 되어있단다.
그런데 이 큰 마당 정도의 공터를 광장(廣場)이라고 한다면 그동안 내 뇌리에 형성된 광장이란 개념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광장이라기엔 너무 옹색하지 않은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운동장은 5000명도 넘는 아이들로 늘 바글거렸지만 뛰고 놀기에 부족함이 없는 광활한 공간이었다. 어른이 되어 우연히 들르게 된 그 운동장은 보는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코르도바가 흥청거렸던 시절, 말과 노새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이용했다는 여관 촌에 이만한 공간이면 좁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 광장에 인접해 세르반테스가 묵으면서 '돈키호테'를 썼다는 여관이 있다.
포트로 여관(Posda del Potro)이다.
포트로 여관 입구
안 마당을 정면으로 노출시키지 않는 이 예쁜 출입구는 그대로 우리집에 복제하고픈 강렬한 건축충동을 부추긴다.
이 여관은 '돈키호테' 속에도 등장한다. 그러니 유명세를 단단히 치루는 여관이기도하다.
‘돈키호테’는 성경처럼 너무나 유명해서 누구나 다 읽은 것 같이 생각하지만 누구나 다 읽지 않은 소설이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발간된 책이고, '유럽 최초의 베스트셀러' 란 평가뿐만 아니라 2002년, 54개국 100명의 작가를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역사상 최고의 소설'로도 선정된 소설이다. 내가 중학교 때 학교도서관에서 읽은 돈키호테는 세로로 인쇄된 책이었고 그 부피가 매우 묵직한 장편소설이어서 끝까지 읽는데 많은 인내가 필요한 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급 귀족 출신이지만 궁핍과 가난을 그림자처럼 끌고 이 고을 저 고을을 떠돌다 한때 해적선에 붙잡혀 노예 생활을 하는가하면,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서는 총상 끝에 왼팔을 잃어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세르반테스가 어떤 경로로 이 여관에 투숙했는지는 알 바 없다.
그는 이 여관에서 그가 맞닥트렸던 인생의 경험을 풀어 소설의 형식으로 기록한다.
이것이 평범과 비범을 가르는 분깃점이 되었다.
작품을 쓴다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는 떠돌이 불구자로 아무 삶의 족적 없이 스러져버렸을 것이다.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 말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고.....
현실이 고단할수록 예술가의 상상력은 끝없는 환상속을 떠돈다.
작가적 성공은 삶의 현장에서 맞보는 처절한 실패와 좌절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 촘촘한 방들 중, 어느 방이 세르반테스가 묵었던 방이었을까?
인근 마시장의 왁자한 떠들썩함과 말똥냄새를 맡으며 집필에 몰두했을 그를 생각한다.
밤이면 상인들은 침 묻혀 돈을 세며 그날의 손익을 따져봤을 터이고 집 떠난 사내들은 객수를 달래려 술잔을 기울일 때, 세르반테스는 등잔불 심지를 돋으며 한 줄 한 줄 글을 써내러 갔겠지. 시장 통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행적은 사람들에게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겠지만 사선을 넘나든 상이군인의 섬뜩한 눈빛에 눌려 감히 말도 붙이기 힘들었을려나?
울 각시가 2층 가운데에서 날보고 웃고있네
황금 오렌지가 알알이 단맛으로 영그는 가로수길, 그런 길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해 보셨남? 그런 길 걸어보셨남?
난 이 길을 걸으며 탱자가 노랗게 익어가는 과수원 길 울타리가 떠오르더만.
코르도바 출신의 유대 철학자 모세스 벤 마이모니데스(Moses ben Maimonides1135-1204)동상
마이모니데스는 창조의 문제와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중세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부각된다.
그의 주저 <방황하는 이를 위한 안내>에 서술된 지론을 간략하자면 시간 가운데 우주의 창조를 생각하였으며, 동시에 이성으로는 신의 우주 창조를 설명할 수 없으며, 다만 제일 운동자 혹은 부동의 원동자로서 신의 존재를 논증할 뿐이라 한다. 그리고 분명하게 신의 속성에 관하여 인간은 인식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스페인에 살던 유대인, 곧 세파르딤이라 불리는 학자가운데 가장 출중한 석학으로 꼽히는 그의 유대교적 신관이다. 하여튼 중세라는 크레도(믿음)의 시대에 코르도바의 방황하는 이들은 그를 많이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했나보다. 이렇게 그들의 거리에 동상을 세워 기리는 것을 보면.
깜직한 도마뱀으로 장식한 벽면. 저 장식 하나가 이 보잘것 없는 벽면 자체를 훌륭한 캔버스로 바꿔 놓는다.
아치며 분수며 이슬람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파티오.
코르도바에 5월이 오면 파티오 축제가 열린단다.
이 축제를 위해 집주인들은 열심히 파티오를 가꾸어 개방한단다.
파티오 콘테스트도 열리고, 여기서 등위에 들면 그 자랑이 자식자랑보다 앞선다나?
판을 벌리고 기타를 치는 악사. 그러나 그림으로서는 제 격이지만 연주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골목, 어느 도시나 있기 마련이고 삶의 속살이 노출되는 골목풍경은 각다분하고 꾀죄죄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 두 사람이 어깨를 겯고 걸을 수 없는 좁은 골목길에 집집마다 제라늄 화분을 내 걸어 누구나 가보고 싶은 명소,
‘꽃의 골목(Calleja de las Flores)’ 이 되었다. 골목 끝자락에 메스키타 미나렛이 보인다.
난 이 골목을 꾸미는 손길을 이타적 행위로 간주한다.
건조한 이 지역에서 저 많은 화분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더구나 손길 닿지 않는 벽면 높은 곳에 매달아논 화분 아닌가!
이 아름다운 골목을 무리를 지어 쫒기듯 걷기보다는 홀로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며 한가롭게 걷고싶다.
걷다가 다리 아프면 노천카페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한잔 시켜놓고 도시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며 오가는 사람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꽃의 골목 끝자락의 광장
골목안 기념품 가게.
2층 베란다에 늘어 선 화분. 제철이 아니라 꽃이 피지 않았다만 만약 저 화분이 저마다 꽃을 피우면 가게에 형형색색으로 뽐내는 스카프며 옷가지들이 주눅들어 볼품없어 뵈겠다.
아주 오래된 집 모퉁이를 장식한 석주.
들어 가 저 문을 톡톡 두드려 보고싶은 막다른 골목 길
알람브라 궁전이나 메스키타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말편자 모양 아취
나도 언젠가는 저 아취 형태를 직접 재현보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찰칵!
문앞에 놓여진 화분과 오렌지 두 알이 눈길을 끈다
저 오래된 것의 편안하고 포근함이라니! 유명화가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유대인 거리를 빠져 나오며 맞닥트린 놀라운 광경.
도시 한 복판에 심산유곡의 계곡물 보다 더 투명하고 깨끗한 수로가 놀랍지 않은가? 한 움큼 떠 마시고 싶다.
코르도바 출신의 세네카 동상이 이 맑은 수로를 내려다 보고있다.
내가 세네카를 대신해 저 곳에 올라 오래된 성벽과 도시를 떠도는 구름을 비추며 멈춘듯 흐르는 수로를 왼종일 바라보고만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겠다.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맞은 편 우람한 나무그늘, 공들인 철제 벤치가 좋아보여 잠시 앉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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