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명옥헌 원림

작곡가 지성호 2017. 8. 4. 16:57

장마가 끝이 난 것인가, 한낮의 폭양이 두려워 밖에라도 나갈라 치면 심호흡을 해야 한다.

망설이다 냉방기를 켠다. 오래된 냉방기에서는 깊은 계곡을 몰려다니는 바람소리가 난다.

거실 통 창 곁에 편한 등받이를 하고 책 한권을 들고서 졸음에 겨워 고개를 떨구다 읽다를 반복하며 하일서정(夏日徐精)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 한낮의 정적이 고인 연못엔 연꽃조차 봉우리를 닫아버리고 그 끝에 쌀잠자리 한 마리 앉아 머리를 주억거리다 휭하니 소나무 어둔 그늘로 사라져 버린다.

미당의 시처럼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이다.




오늘은 좀 습기가 빠졌는지 건너 뵈는 배롱나무 붉은 꽃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연하다. 저 나무, 한 여름 꽃이 귀할 때 백일동안 핀다 해서 백일홍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석 달 열흘 피는 꽃은 없다. 저 꽃들은 벚꽃처럼 일거에 피었다 일거에 지는 꽃이 아니라 같은 나무에서 서로 다른 꽃송이들이 시차를 두고 피고지고를 반복하므로 백일동안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합창에 컨닝 브레쓰(cunning breath)라는 용어가 있다. 몇 마디에 걸친 긴 음표가 있다면 한 호흡으로는 불가능하니 합창단원들이 산발적으로 교호함으로 교묘하게 그 지속을 유지하는 기법을 말한다. 저 배롱나무 꽃들은 말하자면 컨닝 브레스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집 정원에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덤가나 있는 배롱나무를 왜 집 뜰에 심었느냐고 타박하지만 모르시는 말씀이다. 예로부터 배롱나무는 절집이나 서원 향교에 많이 심었다. 정신을 연마하는 청풍고절한 공간에 배롱나무를 심는 이유가 사뭇 웅숭깊다. 절집에서는 서슬 푸른 스님들이 베롱나무 껍질을 벗듯이 세상의 잡다한 번뇌망상을 탈각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라는 뜻이 있고 공부하는 선비들이 있는 서원이나 향교에 심는 이유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매일 껍질을 벗고 새롭게 성장하라는 뜻이 있단다. 어떤 이는 그래서 배롱나무를 학자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껍질을 벗는다는 것과 미끄러운 등걸에 무늬가 있다는 점에선 모과나무와 비슷하기도 하다. 요놈들은 한 해 동안 성장한 만큼 묵은 표피가 검게 마른 미역 가닥처럼 이리저리 갈라져 터진다. 그 어지러운 모습이 보기가 싫어 걷어 내주면 속에서 뽀얀 새살이 들어나 보이는 것이 여간 신비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모습이 여인의 은밀한 속살을 연상시켰던지 근엄한 반가에서는 배롱나무 심기를 꺼려하기도 했단다.




                                          명옥헌 배롱나무 튼 가지 모양



이런 면에서 옛날사람들이 사물을 대하는 모습은 확실히 현대를 사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 그저 보이는 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물()에 심상(心象)을 투여하여 가려서 피할 것과 가슴에 새겨 본받아야 할 것을 구별하였으니.... 

 

그러고 보니 8월초 순이다.

이때쯤이면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명옥헌 원림을 꼭 가 봐야한다. 이웃에 연락을 하니 반색하신다. 석양의 불타는 노을처럼 그보다 더한 정염을 불사르는 원림의 장관을 바라고 길을 나섰다.

그동안 수차례의 탐방이 있었지만 오늘같이 때와 일기와 시간을 잘 맞춘 적이 없었다.

 

주차장에서 명옥헌에 이르는 시멘트 길은 한낮의 열기를 머금어 후끈 거린다. 6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햇빛이 상기 아니 위세를 떨치는 마을은 조는 듯 고즈넉하다. 이 더위에 우리 같은 탐승객 외에는 돌아다니는 마을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 길, 잊혔던 농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방죽주변 아름드리 고목의 그늘로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수면은 거울처럼 주위의 풍경을 투영한 체 낮잠에 빠져 미동조차 없다




봉숭아꽃도 무리지어 한창이다.




과수원이라면 복숭아나 사과나 배를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 마을은 감이 주산물인지 과수원마다 파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모습이 낯설다. 어디선지 코끝에 그윽한 향내가 어린다. 이 기분 좋은 향기의 근원을 찾아 두리번거리니 엉클어진 한삼덩쿨사이로 인동초 꽃 몇 송이 숨어있다. 고개를 넘어 명옥헌에 다다른다.




            

                             


명옥헌을 앞에 대하면 우선 마음이 그윽하고 편안해진다. 미움과 분별과 공명의 다툼이 부질없다.

명옥헌(鳴玉軒)이라 했으니 방문을 열면 똘똘똘연못으로 흐르는 물소리 옥구슬 같다 해서 그리 불렸으리라. 하지만 오늘에는 아쉽게도 흐르는 물소리 들리지 않아 그 정취와 격조를 느낄 수 없다. 긴 장마 끝인데도 여기는 비가 그리 오지 않은 모양이다.

이 땅을 선택하고 이런 원림을 조성한 사람의 고졸한 인격과 풍류를 헤아려본다.

그리고 도시의 시멘트 숲에 빼곡히 입립한 마천루며 아파트며 매일 매일 지옥을 만드는 아귀다툼을 생각한다.

 



조선 시대 오희도란 지조높은 선비가 있었다.

임진왜란과 광해군과 인조반정이라는 비바람 맵찬 풍운의 시기에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나 죽림에 묻혀 조용히 책읽기에 몰입하는, 드높고 쓸쓸하고 가난한 삶을-내가 언제나 꿈꾸는- 염원했었나보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터를 잡아 뒷산에서부터 발원하는 개울물을 모아 연못을 깊게 하고 둘레에 배롱나무를 심고 조그마한 서재를 지어 공부에 매진하며 그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궁량을 내어 그만의 낙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담양은 유명한 누정과 원림으로 짜하게 소문난 고장이다.

배롱나무 흐드러진 꽃빛 붉게 여울지는 자미탄(紫薇灘)기슭, 꼭 있을만한 자리에는 어김없이 누정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명옥헌을 비롯하여 소쇄원,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등이 그것이다. 이곳에서 햇빛과 바람소리를 아비삼고 철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어미삼아 깊은 관조와 침잠에 들어 저마다의 문학적 성취를 일궈냈다. 이를 후대는 가사문학이라 칭한다.

 

                                       연못에 반영되는 배롱나무 붉은 꽃그늘 그 선연한 분홍빛


            

                   



                 얽히고 설킨 가지사이로 비수와 같이 파고든 햇빛이 물위에 번쩍인다         

  

                      

            

                                         긴 그림자를 뒤로하고 붉은 꽃구름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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