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프로젝트

대망

작곡가 지성호 2018. 10. 9. 01:59

#굿프로젝트 1일째.

열흘에 걸쳐 날마다 한 권씩 소개하는 #굿프로젝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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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잠자리는 언제나 뒤숭숭하지만 지난 밤 잠자리는 유독 그랬다. 
울 림교수가 부여한 숙제가 하 걱정되어 잠인지 꿈인지 열심히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나 궁리하다 눈떠보니 역시 어김없이 새벽 1시30분!
어젯밤 잠들기 전에 대충 써놨던 첫 번째 과제물을 올려보도록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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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말 정말 바쁘다. 


매일 작업량과 싸워야 하는 오페라 쓰는 일 이외에도 한글날도 쉬는 것은 고사하고 두 곳의 강의 ppt 만들어야한다. 
한 곳은 전북대학교 심천학당이고 또 한 곳은 한옥마을 인문학 강좌이다. 
(그러고보니 심천학당 건도 10회를 계속해야하는 것이네! )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은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세계테마여행>과 <걸어서 세계 속으로>도 못 보고 산다. 
아까는 무슨 모모 예술공장 이라는 데서 강의 부탁하는 것도 단칼에 잘랐다. 
근데 울 림교수가 내 아킬레스 건을 파고들어 울며 겨자 먹게 생겼다. 
26년 전 책장 무너진 얘기를 꺼내든 속내는 아주 고단수다. 
그때 노력 봉사한 사실을 슬쩍 흘려 당신의 갑질을 그때는 말 못했지만 이제라도 값을 치루라는 은근한 협박 아니겠는가.
(내가 수염이 하얗게 되니 요것들이!)

대개 무슨 명사들의 <내 인생을 바꾼 단 한권의 책> 같은 코너에 어마무시하게 거룩하고 숭고하고 뻑적지근한 고전들이 소개되던데 이런 걸 기대하신 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난 사소하지만 사연 있는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망> 야마오카 소하치 저 / 박재희 역 | 동서문화사


<대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일본의 군웅할거를 평정하고 

막부의 쇼군으로 등극하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다룬 장편대하 소설이다.
난 이 20권짜리 전집을 사고 싶은 생각은 애당초 1도 없었다. 
젊은 시절, 우연히 친구 집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넘겨보다 무협지처럼 강력한 흡인력에 빠져 그만 빌려보기로 했다. 
문제는 이 책이 친구의 어머님 책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친구 어머님께서 책을 보따리에 싸주시면서 한 말씀 하시는 것이었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이고 지금도 곁에 두고 인생의 반려로 읽고 또 읽는 책일세. 
이런 전집류를 빌려줘서 만약에 한 권이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책 전체가 버리게 되는것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 같으면 절대 안 빌려주지만 자네는 절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지라 내 큰맘 먹고 빌려주는 것이니 그리 알게나”


뭐 대충 이런 말씀이었을 것이지만 워낙 각단지게 말씀하시는 지라
속으로 “ 나를 어찌 보고 저렇게까지 말씀하신담?” 하고 좀 언짢았던 기억도 있다. 
특히 그 반복되는 ‘절대’ 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책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해서 밤을 꼴딱 세워가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일상생활이 곤란할 정도로 책에 빠져 지냈다. 
다음편이 너무나 궁금해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 것이었다. 

내가 본래 그런 경향이 심한편이지만 아내가 걱정돼서 몸 버린다고 잔소릴 다 할 정도였다.

그러다 처가에 갈일이 생겼다. 
처가는 충청도 서산인지라 전주서 갈라치면 장항을 거쳐 가야 했기 때문에 택시며 버스며 배며 기차며 탈수 있는 모든 것들을 타고 가야했다. 
나는 그 많은 탈것들 속에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다가 처가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책을 기차에 놓고 내린 것이었다. 
애 키우는 아내가 늘 그렇듯 이보따리 저 보따리 챙기며 싫은 소리를 했건만 

모르쇠 책만 읽다 허둥지둥 내리느라 그리 돼버린 것이었다. 
어쩌것는가? 

전주에 돌아와서 제5권만을 낱권으로 살 수 있는지 헌 책방도 다녀보며 백방으로 수소문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책방에서선가는 5권이 아닌 다른 낱권이 헌책으로 나와 있었지만 약만 바짝 오르는 일.

돈 없는 학생신분에 애까지 딸린 가난뱅이가 할 수없이 20권 전집을 다 구입해서 친구어머님께 반납을 했다. 
울 각시가 연탄을 백장씩이나 들여놓고 사는 집을 몹시 부러워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난 5권이 빠진 이 전집을 버리지 못하고 모셔두고 산다. 
늙어 심심할 때 읽어볼까 책장을 펼쳐보니 세로 글에 글씨가 너무 작아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림교수 말대로라면 가성비가 왕 짱인 셈이지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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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꾸가와 이에야스는 말했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이라고.

난 이 책 한권 때문에 20권의 무거운 책을 지고 제법 먼 길을 걷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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