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수요일
어제 마라도에서 빠져 나온 후 제주를 동쪽으로 돌아 어디 성산 일출봉 근처쯤에서
잠자리를 마련할까 하다가 지원종 선생님 내외분이 제주도에 입도하신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일정을 변경해 공항에 나갔다.
거기서 미리 오신 김홍경 선생님 내외분 과도 반가운 해후를 했다.
모두 얼마만인가!
이로서 며칠 혼자 떠돌기로 한 계획은 무산됐지만
여행의 베테랑들인 이분들과 더욱 깊숙이 제주도의 속살을 헤집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학교로 출근하시는 산미인께서 한라산에 눈이 온다 하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귓전에 흘리며
우리 일행은 12인승 렌트카를 타고 1100도로로 접어들었다.
내가 어제 오후에 516도로를 타고 성판악 휴게소를 거쳐 한라산을 넘어오면서 보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큰소리를 탕탕 쳤는데 1100도로는 그게 아니었다.
굽이굽이 오르막에 싸락싸락 눈도 내리고 빙판길 인지라
아무 월동채비도 없고 눈길에 취약한 승합차로서는 긴장되는 국면이었다.
다행히 지선생님의 노련한 운전으로 1100도로의 정상 휴게소에 도착하니
제설차들이 분주히 눈을 밀어대고 나무들은 눈꽃을 피워 상고대를 이루고 있었다.
아래와는 달리 여긴 깊은 겨울의 한복판이었다.
매표소 앞 화장실 가는 길에는 만년설처럼 다시는 녹지 않을 것 같은 눈더미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겨울의 뿌리는 깊고도 깊어 지금도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는 중이었다.
영실매표소에서 출입을 통제한다. 도로결빙으로 더 이상 차량은 진입 할 수 없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가지고 간 아이젠을 꺼내고 방한모를 뒤집어 쓴 채 영실을 향한다.
눈이 다져진 산길을 저마다의 호흡으로 오른다.
울창한 숲은 정지된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납덩이처럼 무겁고도 깊은 겨울의 모습이다.
북쪽의 먼 바다에서부터 불어오는 날 선 바람은 우우 아우성치며 온 산간을 휘젓고 다니지만
백색소음처럼 숲의 적요를 흐트러트리진 못한다.
나무들은 어깨를 겯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 겨울을 견딘다.
속으로만 앙물며 단단해져 가는 것이다.
그 증표가 또 하나의 나이테로 그려질 것이다.
수척한 겨울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저절로 말을 잃는다.
숲의 침묵과 인내에 동화되는 것이다.
주차장으로부터 2.4㎞를 올라가니
눈 속에 표지석이 “여기가 1280미터 영실이요” 고하듯 얼굴을 내민다.
영실(靈室)이라 했으니 신령한 곳이란 뜻 아니겠는가?
얼마나 신비하면 이런 이름을 붙었을까?
뒤쪽으로는 거대한 위용의 병풍바위가 장벽을 치고
호락호락 접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를 벌인다.
정말 더 이상은 오를 수 없단다.
간발의 차로 12시 통제시간을 넘겨 우리 일행은 이 신령한 지성소에 발을 딛지 못했다.
안전을 염두에 둔 통제시간이겠지만
나태한 자, 게으른 자는 성소에 진입할 수 없다는 준엄한 신탁으로 받아드린다.
하릴없이 옆길로 접어드니 오백나한전이 나온다.
대웅전 앞에 웬 눈 더미가 처마에 닿을 듯하다.
절 마당 낭떠러지 쪽으로 조그만 탑들이 나열해있어
처리할 바 없는 눈을 저리 쌓았나 보다.
겨우내 스님들은 탑을 쌓는 마음으로 눈을 저리 쌓아놓은 셈이다.
그나저나 저 눈은 대체 어느 때나 녹으려나, 오늘도 싸락눈 더해지는데.....
대단히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서귀포를 향해 한라산의 남쪽 사면을 내려오니
거짓말같이 이른 봄날의 정경이 펼쳐진다.
동백꽃과 먼나무 꽃이 짙은 녹색 속에 붉디붉은 방점을 찍는다.
특히 육지에선 결코 보지 못했던 먼나무 가로수가 시선을 끈다.
가만히 박남준의 시 <동백> 중에서 떠오르는 부분만 읊조려 본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 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 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
내 욕망의 그늘에 뚝뚝 부러져 선홍으로 흩뿌려진 동백의 실체는 무엇일까?
세상도처의 허고 많은 길 중에서 저런 가로수 길을 걷는다는 것, 큰 축복 아니겠는가?
<출처 미상의 먼나무 사진>
그 유명하다는 서귀포의 덕성원에서 꽃게짬뽕으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쇠소깍으로 향했다.
쇠소깍이라, 참 이름 한번 희한하구나!
쇠소깍은 원래 소가 누워있는 형태라 쇠둔이라고 지명이 붙었던 모양인데,
효돈천을 흐르는 담수가 지층을 후벼 파 가지가지 기암괴석을 조탁하고
끝내는 해수와 어우러져 깊은 소를 만들었으니,
제주도 사람들은 이를 ‘쇠소깍’으로 불렀다한다.
‘쇠’는 ‘소’, ‘소’는 ‘웅덩이’, ‘깍’은 제주도 방언으로 ‘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쇠둔보다는 쇠소깍이 참으로 제주도 다웁지 아니한가?
도로에서 볼 때는 감추어져 보이지 않더니 그 밑으로 이러한 비경이 숨어있을 줄이야!
울울창창 짙은 그늘 속에 조용히 흘러 고여 있는 소에는 태고의 창조신비가 어려있는데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현대인들은 저곳을 수상레포츠의 떠들썩한 난장으로 바꿔놓았구나.
조용히 음미하고 우러러 경탄해야 할 자연의 내밀한 품을 저토록 휘저어 놓아야만 하겠느냐!
벼르던 올레길을 걷다
쇠소깍에서 가장 사랑 받는 올레코스 중 하나인 6코스의 일부 구간을 걷게 되었다.
저녁에 민동기 선생님 내외분을 공항에서 맞이하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질 않았지만
섶섬을 끼고 바닷가를 걸어 소천지 까지 왕복하는 길이다.
언덕배기 초입의 올레표시가 반갑다.
저 표식을 따라가면 내가 그토록 걷기를 염원했던 올레길에 드는 것이다.
올레하면 떠오르던 갖가지 상상들과 실제는 어떨는지, 자못 설레기도 하였다.
오가는 차 거의 없는 한적한 해변도로를 따라 걷는다.
돌담 넘어 유채꽃이 그 샛노란 빛깔로 미구에 들이닥칠 봄을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구나.
참고 견디며 긴 그리움 끝에 기적처럼 당도할 봄소식은 얼마나 가슴 뛰는 것이냐!
으등그려진 무채색의 겨울 끝에 저토록 선명하고 분명하게 존재를 부각시키는 색깔이 또 있을까?
바람 끝은 아직 차갑지만 알싸하고 감미로웠다.
용암들이 흘러와 바다에 장렬히 전사하면서 검은 돌로 뒹구는 해변,
끝없이 밀려오고 스러지며 웅얼거리는 파도,
섶섬의 침묵, 가뭇없는 수평선, 그 반짝임.
이것들을 가슴에 담으며, 깊게 심호흡하며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온다.
우리들이 지상에서 사는 한 기쁨에서 기쁨으로 인도하는 것은 자연의 은혜라고 워즈워스는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걷는다는 것만으로
나는 아무 부족함이 없다.
나는 충분하다! (Ich habe genug!)
.
멀리 해무에 어렴풋한 서귀포의 원경을 바라고 걷다보면
갑자기 어두운 숲을 지나기도 하고
뭐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비밀스런 돌담을 지나 소천지에 이르렀다.
아쉽지만 여기까지다.
내 반드시 여길 완주하리라는 결기를 가슴에 담으며 어쩔 수 없이 되돌아 올 수밖에.....
돌아와서 신문을 보니 마침 제주 올레 모든 코스를 완주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코스가 바로 이 6코스란다.
사람들의 느낌은 대동소이 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