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고원.히말라야 종단기

티벳고원, 히말라야 종단기7

작곡가 지성호 2005. 8. 8. 21:45

작곡가 지성호

 

표박(漂迫) 제8일(2005년 8월8일)

히말라야 대장정 5일째.

 

간밤의 처치로 다행히 열은 떨어져 움직일 만 하였다.

열이 그렇게 무서운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머리가 뽀개지게 아팠던 두통은 사라졌지만

내 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가 걸음을 디딜 때마다 허방을 딛듯 휘청 거려졌다.

입은 마르고 소태처럼 써 식욕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듣자하니 호텔 내에 외국여행객들에게도

한국사람 하나가 고산병으로 쓰러진 것이 화제라고 하였다.

사실 티베트 여행객들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고산병이니 당연히 그럴 만하겠지만

나로서는 나라망신까지 시켰으니

창피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일행들의 동정어린 눈길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다는 고산병을 죽지 않고 경험(?)했으니 다행이고

저지대로 후송되어 여행을 엉망으로 망치지 않았으니

더욱 다행이라고 애써 위로하며 또 다시 차에 올랐다.

 

티베트의 첫날 라싸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사람들이

흰색 스카프를 우리 일행의 목에 일일이 걸어주는 이국적 풍경을 접하면서

내가 티베트 땅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했을 뿐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의식을 그저 관광 상품 정도로만 치부했었다.

그러나 ‘카닥’이라고 부르는 이 하얀 천은

환영과 무병장수의 뜻으로 먼 길 떠나는 우리 일행에게

별 탈 없이 여행 잘하라는 그들의 마음이 담겨있었다는 사실은 잘 몰랐었다.

그만큼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를 적응력 없는 외지인이

여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고산병은 점령국 베이징의 거들먹거리는

관료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1988년부터 티베트 자치구 당 서기로 근무하던

진타오 주석도 1992년 고산병을 얻어 치료차 베이징으로

돌아온 뒤 복귀하지 못했다한다.

후진타오의 전임자였던 우징화도

1988년 고산병 후유증으로 심장병을 얻어 베이징으로 후송된 뒤

돌아가지 못했었고

최근엔 양촨탕이 심장과 뇌혈관 계통 질환으로

베이징으로 후송됐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다.

그만큼 오지의 여행은 즐겁기 보다는 힘들 때가 많다.

그래 안온한 집이 그립고 귀향의 날을 손꼽아 보지만

오늘이 어제와 다를 바 없고 내일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는

권태로운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배낭을 메고 머리칼을 나부끼며

모르는 언어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여행을 끊임없이 꿈꾸는 것이니, 참 모를 일이다.

과연 우리에게 길 떠남은 무엇일까?

떠도는 여정 속에서 두고 온 삶의 현장을 뒤돌아보면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던 삶의 조건들이

부질없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이 속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럼 돌아올걸. 왜 떠나니?

정말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그건 말이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견고한 삶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삶을 갱신하는 제의(祭儀)와 같은 것이지.

진흙에 묻혀 사는 미꾸라지가 가끔은

수면으로 솟아올라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그래저래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하는가보다.

사로교(絲路敎) 信者란 말을 들어봤남?

사로는 바로 실크로드(Silk Road)를 말함이지.

이 신심 깊은 신자들은 시설 좋은 유명관광지를

쾌적하게 ‘관광’하기보다는

오지의 거칠고 험난한 길을 좋아하는 별종들이란다.

그들은 구도자처럼 고행도 마다하지 않고

생각하는 여행, 모험하는 나그네 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란다.

나도 이들에 공감하여 사로교 신자가 되려했지만

어쩌랴,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어젯밤 일로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날 아침의 일정은 타쉬룬포 사원을 관람하는 것이었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저 차안에 등대고 누워 일행들을 기다렸을 거라고만

막연히 추측해볼 뿐이다.

단지 일행들이 몸에 묻히고 온 마을 골목의 냄새와

사원의 버터램프 냄새만 어렴풋할 뿐이다.

 

시가체를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초모랑마를 향한다.

다시 하늘과 구름,

우리나라의 겨울산과 같은 메마르고 헐벗은 산들이 나타난다.

역시 도시를 벗어나야 숨쉬기가 편하지.

그렇게 이름 모를 산하와 마을을 지나

캐러밴은 맑은 시내가 풀숲을 숨어 흐르고

노란 꽃이 지천으로 핀 광막한 초원지대로 진입하였지.

그곳엔 말들이 기름진 갈색 몸뚱어리를

햇볕에 번쩍이며 풀 뜯기에 열중하고 있었고

저 멀리 하늘 끝 길게 누워있는 산에서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듯

렇게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지.

삽상한 미풍은 코끝을 간질이고 시간이 멈춰 버린 초원.

이 절대적 위로와 평화 속에서 난 쇄신되었지,

착하고 여린 마음으로.

그리고 못내 아쉬웠지.

이 형언키 어려운 아름다운 풍광을

같이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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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천막에선 목동들이 의외로 하얀 거품을 인

황금빛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고 있어 어리둥절하였다.

문명은 지척에도 있었던 것이었다.

나에게 시간만 허락한다면 천막주위의 함부로 나뒹구는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워

저 초원의 빛나는 순결을 보존하고 싶었었지만.......

한 가지, 저기 보이는 말들은 방목이 아니라

두 발 사이가 짧은 끈으로 묶여있어 속도를 낼 수 없고

원할 때는 언제나 포획이 가능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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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난 고산병 환자

 

중식은 핑졸링 마을 노변 공터의 흙바닥에서 먹게 되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리 굶었지만

조심스러워 뜨거운 물에 누룽지를 불려 먹는 걸로 대신했다.

곡기가 들어가니 한결 속이 부드러워 지는 것 같고

원기가 솟아올라 몸이 회복되는 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다.

(누룽지는 김홍경 선생님의 귀한 비상식량이었는데

제가 다 먹어치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식사중간에 어디서들 왔는지 동네 꼬마들이 몰려와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는 것이었다.

우리의 60년대처럼 참으로 옹색하고 가난한 풍경이었다.

최 팀장을 비롯한 일행들이 이 철없는 것들에게

사과를 쪼개 나누고 준비해간 학용품을 분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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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를 분배하는 팀장님(사진:이동준 선생님)

 

라체를 향해 가는 길,

광활하고 황량한 대지에 알룽창포가 따라간다.

도중 강변에서 홀로 양을 치는 소녀를 만났다.

학교나 다니고는 있는지 열두서너 살 넘어 보이는 소녀는

돌팔매질과 알 수 없는 소리로

이탈하려는 양들을 능숙하게 한데모아 풀을 뜯겼다.

강변의 풀은 듬성듬성 빈약하기 그지없지만

럴수록 양들은 집요하게 풀을 탐하였다.

캐러밴과 조우한 소녀에게 이날은 아주 운 좋은 날이었다.

일행은 소녀와 함께 사진 찍기에 바빴고

학용품이며 먹을 것을 저마다 안겨주었다.

이 소녀는 이후로 아마 양치기보다는

관광객을 기다리기 위해 매일 이곳에 나타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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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홍자 선생님과 양치기 소녀 (사진 이동준 선생님)

 

라체는 우정공로상의 화물트럭 정거장으로

여행객들이 무심히 지나칠 수밖에 없는

먼지 풀풀 나는 도로변의 조그마한 마을이다.

우리가 지난날 그렇게 살았듯

마을 아낙들이 공동 수돗가에서

물도 긷고 야채도 다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행 안내서에서는 라체 이후에

편안한 잠자리와 입에 맞는 식사는 기대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그만큼 때 묻지 않은

거친 티베트의 속살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겠지.

라체를 떠나 가쵸 라(Gyatso-la)에 이르는 길은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이었다.

중장비도 별로 보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손으로 돌을 깨고 축대를 쌓고

5000m 가 넘는 험난한 고개 길에서

기약 없어 보이는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성과 몰골에서 형벌처럼 고단한 빈궁이 묻어나왔다.

고개 마루에 다가갈수록 하늘에 먹장구름이 잔뜩 몰려들어

그 스산함과 황량함이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변방으로 유배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쵸 라(Gyatso-la),

이 고개의 높이가 해발 5220m 이니

내 생애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는 순간이다.

이 대단한 높이를 일행은 차를 타고 편안하게 올랐다.

뭔가 떳떳치 못한 일을 한 사람처럼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이곳의 산소량은 해수면의 반 정도에 불과하단다.

평지에서 한 번 호흡했다면 이곳에서는 그 배를 호흡을 해야 한다.

그러니 호흡이 가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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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정성으로 치장은 했으나

이발소 그림처럼 생뚱맞은 초모랑마 자연보호구 간판을 뒤덮은

오색의 타루쵸가 아우성처럼 펄럭인다.

고갯마루의 맵고 찬 바람은 깃발의 염원을 쏜살같이 쓸어 대기에 흩뿌린다.

이 고원에서 형상 있는 것들은

사나운 바람의 조탁 앞에 날금날금 다 닳아 문드러질 수밖에 없다.

그래 이 고지에는 모난 것들이 없이 다 둥글다.

순환의 법칙, 엔트로피의 법칙이 위세를 떨치는 곳이다.

그러나 이 위세가 미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마구 버린 쓰레기들이다.

이 썩지 않는 쓰레기들이 가뜩이나 황량한 고원의 풍경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한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물질은 쓰레기를 낳는다.

버린 손들에 저주 있으라!

멀리 먹구름 속에 설산이 날렵하게 그린 하얀 선이 눈에 시리다.

사람들은 히말라야 하면 가장 먼저 설산을 떠올리게 된다.

히말라야(himalaya)라는 이름 역시 만년설을 품었다.

산스크리스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의미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이니

‘눈의 거처’ 즉 ‘만년설의 집’을 의미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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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지평선 넘어 설산이 구름과 교접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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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쓰레기를 어찌하누?

 

가쵸 라는 히말라야의 관문이다.

그 내밀한 첫 번째 문을 우리는 통과한 것이다.

가쵸 라를 넘어 뉴 팅그리로 가는 비포장 길.

결국 2호차가 펑크를 내었다.

캐러밴 기사들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손발을 척척 맞춰

금방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

캐러밴은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이나 하듯

구름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달리고 또 달린다.

달 표면을 달리는 듯,

갈비뼈를 들어낸 맨살의 산들이 울퉁불퉁 말이 없다.

대지는 거칠고 황량하고 말할 수 없이 쓸쓸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차에 탄 사람들도 말을 잃었다.

뉴 팅그리의 new란 말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뉴 팅그리의 이름이 주는 신생의 이미지는

불모지대의 신기루에 불과했다.

뉴 팅그리는 본래 쉐가르(Shegar)라 불리는 마을이었단다.

그런데 멀지않은 곳에 초모랑마 베이스 켐프가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

산악인들과 트래커들이 이곳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쉐가르를 쉐가르라 부르지 않고

자꾸 팅그리라 부른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니 본래 팅그리는 올드가되고 쉐가르는 뉴우가 되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우리 캐러밴은 갑자기 미친 듯 내달리기 시작한다.

일본인 캐러밴들과 속도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일본인이기에 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숙소형편상 불가피한 경쟁이란다.

이 경쟁에서 우리가 간발의 차로 먼저 도착하였다. (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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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홍철이 묵었다는 유서 깊은 초모랑마 호텔.

티베트 고유 양식의 호텔이지만 2층 어두운 복도의 낡은 카펫을 걸어가면서

어쩐지 유령의 집을 들어선 듯 괴기스런 느낌이 들었었다.

티베트에 갔다 온 뒤 11기로 갔다 오신 선생님말씀을 들으니

이분 부부가 이곳에서 귀신을 만났다는 곳이었다.

두 분이 두 눈으로 똑바로 목격하셨다니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하여튼 충분히 그럴 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나를 찾아온 건 그린 듯 선명하고 요염한 초승달이었다.

난 창을 열고 만추의 한국처럼 쌀쌀하고 스산한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밤하늘의 별을 우러렀다.

비질을 하면 쏴아 쓸릴 듯

숱한 별들이 그들의 비밀스런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저렇게 별이 초롱초롱하면 다음 날 날씨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