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박(漂迫) 제9일(2005년 8월9일)
히말라야 대장정 6일째.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초모랑마의 베이스캠프를 찍고 올드 팅그리까지 가야하는 만만치 않은 일정 때문인지 모닝콜이 빠르다.
막상 차에 올라 길을 나서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음산하고 어두운 먹장구름이 내 마음까지도 어둡게 한다.
그러나 동이 트는지 구름틈새로 강렬한 햇살이 마치 서치라이트를 비추듯 산봉우리에 집중적인 조명을 쏟아 부어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보여준다.
저 조짐을 해독할만한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제발 좋은 날씨 이기만을 바라고 바랄뿐이었다.
에베레스트라는 이름
에베레스트라는 명명(命名)은 세계의 최고봉에 자신의 이름을 슬쩍 붙여 공명심을 드러내기 위한 영국 측량기사의 욕심일 뿐이지 저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에 대한 외경심은 전혀 없다.
서구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일이다.
서고동점의 시대에 정복자들은 원래 있었고 원래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힘으로 마구 유린하며 자기의 알량한 이름을 함부로 붙이고 다녔다.
이들에게 자연은 명예를 얻고, 돈을 벌고, 지위를 얻기 위한 정복의 대상일 뿐이다.
옛 말씀에 ‘지인(至人)은 자기(自己)가 없고 신인(神人)은 공(功)이 없으며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다’고 무기(無己),무공(無功),무명(無名)의 드높은 경지를 가르치셨지만 탐욕을 합법화하고 영웅시한 그들에겐 공소한 말장난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떠오르고 저무는 태양이 그 산을 온갖 모습으로 물들이는 장엄함을 늘 바라보며 찬탄과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산록의 사람들은 모든 산들의 으뜸인 신령한 봉우리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 그들의 외경심을 표현하였다.
남쪽의 네팔 사람들은 사가르마사(Sagarmatha)라 했으니 하늘바다의 여신이라는 뜻이요 산 넘어 티베트 사람들은 초모랑마(Chomolangma)라 했으니 대지의 여신이라는 뜻이란다.
왜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마다는 모두 신의 이름들이 붙여져 있는지, 그리고 그 신들은 한결같이 모두 여신인지는 내가 알 바 없다.
그러나 구름을 거느리고 우뚝 선 빛나는 설산의 신비로운 자태는 바로 신이 임재 하는 성스러운 영역이요, 산자락에 안겨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에게 그 너른 터는 바로 어머니의 품이 아니었을까?
내가 기대 사는 모악산도 골짜기 마다 어미 닭이 병아리 품듯 옹송옹송 동네를 품고 있다. 치마 자락을 펼친 듯, 두 팔을 펼친 듯 그 너른 자락을 볼 때마다 왜 어미 모(母)자가 붙었는지 이름 지은 사람의 탁견에 고개가 끄덕여 지곤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바다가 없는 내륙국 네팔사람들이 하늘이면 하늘이지 난데없는 바다를 갖다 붙인 이유는 뭐람?
히말라야가 본래 바다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추측해 보건데 한자의 바다 해(海)자에는 어미 모(母)자가 들어있다.
불어의 바다 메르(MER)는 어머니의 메르(MERE)와 다를 바 없다. 지구의 생명체의 기원은 바다라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어머니 속에 바다가 있고, 중국에서는 바닷속에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 바다는 생명의 시원이며, 양수이다. 바로 어머니이다. 산에 기대 사는 사람에게 산도 역시 바다와 같이 어머니의 너르고 포근한 품이다.
기욜 라를 오르며
출발한지 한 시간이 채 못돼 초모랑마 국립공원 검문소를 통과하여 기욜 라 의 급경사면을 자동차는 헐떡이며 올라간다.
지구의 최고봉 초모랑마 가는 길은 높은 고개들이 방벽을 둘러 그 근접을 호락호락 허용치 않는다.
5000m 가 넘는 기욜 라도 초모랑마의 외호(外護)중 하나이다.
이 가파른 경사면을 누가 감히 차가 다닐 길을 생각했을까?
누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초모랑마 기슭까지 길을 뚫을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뚫었을까?
처음 이 길을 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자동차를 갖게 되면서부터 무언가 있음직한 길이면 무턱대고 들어가 기어이 그 길의 끝까지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주인 잘못만난 자동차는 흠집 투성이였다. 누가 언제 뚫었는지 모르지만 나 같은 호기심 많은 사람이 이 길을 열지 않았을까?
옛날, 옛날 머언 옛날 호랭이 담배 먹던 시절에 저 고개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하고 고개 너머 세상을 동경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먹고 살기에 별로 유익하지 않은 행동과 생각에 빠져있어 주위 사람들이 좀 엉뚱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겠지.
체구도 왜소하고 영악하지 못하여 살림살이는 언제나 서툰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눈빛만큼은 형형하고 맑은 사람이었겠지.
이 사람, 핏빛 노을이 서편을 낭자하게 물들이면 어둠에 완전히 잠길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별똥이 꼬리를 길게 끌며 떨어지면 그걸 찾아 풀섶을 헤매는 그런 사람이었을 거야.
마을 사람들은 고개 너머에 무심했겠지만.......
어느 아지랑이 아른대는 안타까운 봄날, 결국 이 호기심 많은 젊은이는 고개를 올랐겠지.
조그만 발자국 하나 남기며…….
그 뒤를 이어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 그 희미한 흔적을 쫒아 고개를 오르고…….
몇 번의 시도가 있은 후 실낱같은 길이 열리게 됐을 거야.
이 길을 달구지가 생기니 조금 넓혀 사용했고, 자동차가 생기니 또한 그 길을 넓혀 오늘과 같은 길이 생기게 되었을 거야…….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일행은 기욜 라에 올랐다.
히말라야의 8천 미터가 넘는 14개 좌중 마칼루, 로체, 초모랑마, 초오유, 시샤팡마등 5개의 봉우리가 산맥으로 연결되어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기욜 라, 그 정상에 오르자마자 급한 마음으로 초모랑마가 보인다는 쪽을 바라보니
아뿔싸, 안타깝구나!
짙은 먹구름이 겹겹이 쌓여있어 그 실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행기로, 자동차로 산 넘고 물 건너 당신을 우러르기 위해 9일 동안의 여정 끝에 천신만고 예까지 왔는데 당신은 어이하여 외면하시는 것입니까?
겨우 초모랑마의 최정상 부근만 아슬아슬하게 구름위에 떠있는 것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기욜 라를 내려가는 길은 말단까지 그 전모가 다 내려다 보여 공포와 경탄을 동시에 자아낸다.
붓으로 마구 칠 한 듯 길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차라리 롤러코스트를 타고 말지 저 길을 차를 타고 어찌 내려가누! 조금만 한눈을 팔거나 제동장치라도 파열이 된다면 그때는 말 그대로 뼈도 추리지 못할 길이다.
기욜 라를 오를 때도 그랬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한다.
어찌 이런 비탈에 길을 낼 생각을 했단 말인가?
처음 이 길을 낼 작정을 한 사람의 무모함에 혀를 내둘 수밖에 없다.
원철 스님이 쓴 옛날 현장법사나 신라 혜초 스님 같은 고승들의 목숨 건 구도 행각을 소개한 글을 읽다보면 목숨을 초월한 그들의 진리를 향한 열정에 숙연해진다.
그들은 눈물을 천 줄기나 흘러야 넘어 갈 수 있는 고개를 넘고 줄로 연결된 계곡을 건너다 사나운 바람에 사람이 날아가기도 했으며 깎아지른 절벽에는 안전하게 발 디딜 곳도 없었고 평지에 도착해 남은 사람을 헤아려 보면 스물다섯 명 가운데 열두 명을 잃기도 했단다.
그런가 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도 없고 땅위를 달리는 짐승도 없는 사막에서는 사방을 바라보아도 방향조차 잡을 수 없어 죽은 사람의 뼈를 표지판으로 삼고 걸었다는 것이다.
그런 위험천만한 험로를 사람들은 끊임없이 갈고 닦아 후세사람인 우리는 자동차의 안락한 시트에 기대 내려가고 있다.
아, 초모랑마여!
올드 팅그리 갈림길을 지나 바송에 도착하였다.
초모랑마 출입통제소에서 EBC (Everest Base Camp)퍼밋을 받기위해 여권을 걷어간 체 대기한다.
헬렐레 풀어헤친 군복 차림에 바지에 손을 찌른 껄렁한 젊은이가 그보다 더 풀어진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대충 훑어보더니 사무실로 들어간다.
전혀 외국인을 의식하지 않는 군기가 쏙 빠진 모습이다.
내가 군 생활 할 때 고참들이 쫄병을 다그치면서 자주 쓰던 말이 “넌 당나라 군대냐?” 이었다.
그 나무람의 의미를 이제야 깨우친다.
당나라의 후예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대국근성이라 그런지 참, 손님대접 치고는.......
드디어 초모랑마 풍경구, 바람과 햇빛에 육탈된 거대 공룡의 잔해처럼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산들은 속내를 드러내 그 시루떡 같은 지층의 골격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아침보다는 날씨가 많이 개었지만 제발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십사 하는 간절한 기원을 가지고 두 손을 모아본다.
누렇고 푸른 코를 훌쩍이는 남루한 아이들이 먼지를 아랑곳 않고 가는 길 목 길 목 지켜 서서 손을 흔든다.
일단의 서구인 남녀 그룹이 산악자전거로 트레킹을 한다.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헐떡거릴 수밖에 없는 고소에서 자전거라니…….
보기에도 가녀린 젊은 처자들도 보인다. 대단하다.
이들은 자동차 캐러밴이 일으키는 뽀얀 먼지를 뚫고 앞만 보며 잘도 달린다.
안장위의 탄탄한 엉덩이와 구리 빛 종아리! 이 들의 건강한 몸뚱어리와 레저가 부러울 뿐이다.
기온은 갈수록 쌀쌀하다.
또다시 어설픈 차량통제소가 나온다.
타고 온 차에서 모두 내리게 하더니 고물인 현지 승합차에 짐짝처럼 빼곡히 몰아넣고 돈을 받는다.
요놈들! 가만 보니 자연보호라는 명목으로 돈 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거친 산록에는 인간들이 구축한 어떤 형태의 인위는 없고 그야말로 무인지대다. 가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말을 탄 현지인들이 멀어져 갈뿐. 점점 작아지며 산모퉁이로 사라지는 모습이 그렇게 쓸쓸하게 보일 수 없다.
오른 쪽으로는 초모랑마 북벽에서 발원한 빙하 녹은 물이 폐수처럼 짙은 회색으로 흘러간다.
이 모든 풍경이 불시착한 혹성의 불길한 적막처럼 아득하고 허허롭다.
갑자기 오른쪽 하늘이 열리더니 만년설에 뒤덮인 시리도록 하얀 연봉이 얼굴을 내민다.
탄성이 쏟아진다.
그러나 아직 초모랑마는 산자락에 가려 그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언뜻 깎아지른 갈색 경사면의 오른 쪽으로 해가 구름 속에 빵끗 나타나듯 눈부신 순백의 예리한 선이 한 뼘 정도 나타난다.
가슴이 콩당콩당, 이윽고 산굽이를 돌아서자 신비롭고 아름답고 장엄한 초모랑마가 베일을 벗듯 흰구름속에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일순 차안이 크게 술렁거린다.
으아! 드디어 초모랑마 북벽이 그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신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물 많고 누추한 저에게 어인 은총이십니까!
그 순간 합격통지서를 들고 엄마에게 막 달려가는 아이처럼 이 광경을 보지 못한 세상의 모든 가련한 사람들에게 소리쳐 외치고 싶었다.
“나는 봤어! 봤단 말이야!”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는 과묵한 버스 기사에게 부탁하여 포토타임을 갖는다.
이때를 놓치면 언제 구름이 몰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이후 내가 컴퓨터를 켜면 어김없이 살아나는 초기화면이 되었고 나의 자랑스러운 훈장이 되었다.
5000미터 이상 가까워진 태양은 내 흥분된 마음과 같이 찬란하고 눈부시다.
그래 썬 글라스가 없다면 저 쏘아대는 햇살은 내 눈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같이 거침이 없다.
길고 긴 너덜지대를 지나,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롱북사(Rongbuk Monastery, 5030M)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승합차를 내려 다시 2인승 마차로 갈아탄다.
아니면 걸어가야 한단다.
참 여러 가지를 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래 걷고 싶은 사람은 걷고 타고 싶은 사람은 마차에 흔들리며 베이스캠프를 향한다.
말이 마차이지 조악하기 그지없고 끄는 말도 마부도 다 궁상스럽다.
세상에서 첫째가는 초모랑마를 참배하는 캐러밴의 위용이라면 적어도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갈기 세운 백마나 아니면 서부영화에 나오는 포장마차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손수레의 바퀴위에 거친 솜씨로 겨우 않을 좌석을 얹고 비가 올 때 차일을 치는 건지 울퉁불퉁 철사를 두른 마차의 행렬은 무슨 난민 대열 같기도 하다.
더구나 그들 중 가장 젊고 불량하게 뵈는 마부 하나가 말라서 불쌍하기 그지없는 말을 칼을 빼들고 죽일 듯 사납게 다뤄 지켜보는 일행을 불안하게하고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소요가 있었다.
그러나 시퍼런 하늘에 흰 구름은 아랑곳없이 흘러간다.
그래 천지무친(天地無親)이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던가.
벼락이라도 때려 저 못된 놈을 치죄해야 마땅할 하늘은 인간들의 일에 무심한 체 그들의 운행을 계속할 뿐이다.
극지의 혹독한 자연조건 때문인지 너덜지대는 거칠고 황량하기만 하여 생명체가 도무지 살 것 같지 않은데 멀리서 야생 산양 몇 마리가 보이다가 카메라에 잡을 새도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저들은 무얼 먹고 무얼 바라고 이곳에 산다는 말인가.
탐욕스런 인간들을 피해 여기까지 왔더니 징하고 징하다, 떼로 몰려왔느냐는 한탄을 듣는 것 같다.
멀리 소실점상에 구름을 거느리고 우뚝 선 초모랑마를 바라고 계곡사이로 뻗은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티베트식 하얀 텐트촌이 나타난다.
둘레가 어지러워 꼭 난민촌과 같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어김없이 쓰레기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여기가 우리 궁극의 목표인 베이스캠프인가?
<초모랑마 베이스캠프 해발 5200미터>라는 초라한 표지탑에서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를 지나고 있다.
뭔가가 허전하여 롱다가 펄럭이는 조그마한 언덕에 오르다.
그러니까 고도를 50미터 더 올린 셈이다.
8월이라 그런지 눈은 저만치 산 밑까지 물러나 있고 빙퇴석들로 둘레는 온통 자갈밭이다.
산악영화에서 보던 눈사태가 엄습하는 눈 속에 파묻힌 베이스캠프를 기대했던 나에겐 좀 실망스런 광경이다.
멀리 초모랑마 발치 빙하가 흐르는 곳까지는 평탄하게 보여 맘만 먹으면 못갈 것도 없어 뵈지만 나 혼자가 아니니 단념할 수밖에 없다.
정상과의 고도차는 3천 700미터가 넘는데도 그렇게 높게 뵈지는 않는다.
이편에서 바라보는 초모랑마는 건너편 네팔 쪽에서와 같이 가파르고 압도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티베트 고원자체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네팔쪽에선 고산병과 싸워가며 죽기 살기로 일주일 이상을 꼬박 걸어야만 베이스캠프에 도착 할 수가 있다고 한다.
기회가 허락한다면 언젠가 네팔쪽도 가보고 싶다는 조심스런 희망을 가져본다.
어쨌든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 하나는 하늘의 도우심으로 훌륭하게 달성한 셈이다. 이제 뿌듯함을 가지고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오를 때의 역순으로 마차를 타고 롱북사 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3시를 지났다.
뜨거운 물을 2위엔에 사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우고 식당의 티베트식 소파에 기대 고장이나 언제 올지 모를 셔틀 승합차를 느긋하게 기다린다.
늦은 점심후의 식곤증과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고산증세와 뭔가 대단한 일을 성취했다는 포만감이 혼재된 나른한 오후, 밖에서 들리는 말울음 소리와 사람들의 외침소리 가 꿈결같이 비현실적이다.
그러잖아도 낡은 차 한 대가 결국 고장이 나 이래저래 일정의 차질은 불가피하다.
올드 팅그리 가는 길.
하늘의 먹장구름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꾸밀 듯 흉흉하다.
풍우에 할퀴어 늑골을 드러낸 벌거벗은 산이 이제 익숙할 만도 한데 여전히 낯설다. 사막처럼 건조한 자갈밭에 못 얻어먹은 풀들이 거칠고 해성하다.
윤택하고 기름진 것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르고 아득한 정지된 풍경,
그 무겁고 두터운 적요 속을 4륜구동 도요타는 난바다의 외로운 조각배처럼 기를 쓰고 달린다.
꽁지에 자욱한 먼지구름 달고서.
분명히 소리는 있지만 진공상태에 잠긴 듯 난 아무소리도 듣지 못한다.
세상의 소리란 소리는 이 광야에서 모두 증발해버렸다.
단조로운 엔진소리, 돌 튀는 소리가 오히려 적막감을 더한다.
일행은 차창 밖의 풍경에 압도된 듯 저마다의 상념에 깊이 잠긴 체 흔들리는 차에 몸을 맡긴다.
모두가 혼자이다.
두통과 함께 아슴아슴 무거운 졸음이 눈꺼풀에 매달린다.
두통도 잊을 겸 파적으로 우리 차를 운전하는 님아에게 말을 건다.
“저게 뭐야?” 구름을 손으로 가르킨다.
“찜바”
“저건?”
“즈(산)”
“음, 저건?”
“삼바(다리)”
이 친구 계속되는 세 살배기와 같은 질문에도 끝까지 성실하다.
비오기 전의 스산함이 어지럽더니 기어이 먼 산에 우박이 비와 함께 떨어진다.
티베트의 산하는 아기자기함이란 없다.
무자비할 정도로 거칠고 광대하고 산소조차 희박하다.
견디어야만 생존한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도 없는 벌거숭이 인간은 이 거대한 자연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가.
그러니 티베탄들의 신앙은 결사적일 수밖에 없나보다.
길가에 돌담 치고는 이상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상에나! 경전이 정교하게 조탁된 마니석 무더기이다.
오체투지보다 더한 집념을 보는 것 같다.
석양의 땅거미가 질 무렵 초오유가 바라 뵈는 드넓은 평원에 도착했다.
멀리 흰 구름 이리 저리 찢기는 하늘 아래 물결치는 산맥의 굽이마다 비끼는 석양빛이 다양한 농담(濃淡)을 연출한다.
그 정점에 흰 눈을 뒤집어 쓴 예각의 초오유,
해발8201m라 하지만 그리 높게 보이진 않는다.
저 봉우리에서 피어나는 빛나는 흰 구름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초오는 여신이고 오유는 푸른 터키옥(玉)을 말하는 것이니
곧, 저 파란 하늘을 닮은 ‘터키보석의 여신’이 막 구름을 타고
자신의 영지에 임재하려는 것일까?
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리니 기온이 얼마나 쌀쌀한지 오싹 소름이 돋는다.
우리나라의 겨울날씨와 다를 바 없다.
긴 그림자를 끌고 숙소에 도착한다. 8시가 넘었다. 강행군인 셈이다.
고단함을 무릅쓰고 포토 포인트로 유명한 이 집 옥상에 올라 석양빛에 물든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렌즈에 담아 보려했으나 봉우리들이 짙은 먹구름에 가려 아쉬웠다.
그런데 왜 이리 여긴 춥지?
우리나라는 지금쯤 열대야로 잠 못 이룰 때지만 여긴 겨울날씨 못지않다.
따뜻한 온돌방과 뜨거운 물이 철철 넘치는 목욕탕이 절절하게 그립다.
Everest Snow Leopard Guest House라는 멋지고도 긴 이름의 산장이지만
실제는 퀴퀴하고 썰렁한 4인실 방에 어두운 알전구 불빛이 애처롭다.
화장실과 세면실은 공용으로 다 밖에 있다.
물은 또 얼마나 차고 찔끔거리는지…….
저녁은 뭘 먹어야하지?
열도 오르고 식욕은 전혀 없다.
아침도 멀건 흰죽으로 때우고 점심도 컵라면 하나로 때웠다.
내일을 생각하면 굶을 수는 없고 겨우 겨우 식당에 가 오렌지 한 캔과 물 한 병을 10위안에 사들고 썰렁한 침대에 앉아 망연자실하다.
아, 집이 그립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우릴 얼마나 설레게 하는가.
그러나 길 떠남은 바로 고생이 아니던가.
밤마다 바뀌는 잠자리에 몸을 뒤척여야 하며
맞지 않은 음식, 기후, 일기 모두 몸으로 맞서야 한다.
제기랄! 집에서는 여행을 꿈꾸고 여행에서는 집을 그리워한다.
이게 인생인가, 세라비!
어데 하나 의지할 곳 없어 처량한 참에 호출이 왔다.
밤하늘에 별이 저리 초롱초롱한데 나와 별바라기를 하자는 것이다.
정말 못 말리는 사람들, 못 말리는 사람들.
제법 사나운 바람이 뼛속까지 스미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도 부르고 박수도 치고-
산에서 내려온 자들의 기쁨과 방랑자들의 자유분방함이 저들을 저리도 천진난만하게하나보다.
저리 살면 되는 것을........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친다.
사위가 온통 별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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