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넌 왜 곡을 쓰니?

작곡가 지성호 2016. 12. 28. 05:14

                           넌 왜 곡을 쓰니?

 

잔기침과 몸살 기운이 있어 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더니 의식은 몽롱하고 끈적이는 땀이 배어나와 잠이 쉬 오지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얼만가를 전전반측하다가 결국은 잠을 포기하고 작업실로 나왔다

의자에 몸을 부리니 의외로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페라 한편을 쓰면서 지난 5개월을 난 이 의자에 앉아 숱한 좌절과 포기의 유혹사이를 뭉그적거리며 살았다

작곡은 엉덩이로 쓴다더니 정말로 엉덩이에 굳은살이 잡힌다. 이 의자는 내 몸을 잘 기억하고 내 몸에 길들여졌다. 내가 곡 감옥이라 부르는 이 조그만 공간에 들짐승의 잠자리처럼 내 흔적과 체취가 고스란히 베어있다.

지난밤은 얼마나 소원하던 잠자리던가.

그동안 쪽잠을 자면서 이 곡을 다 끝내면 일주일을 내쳐 잠만 자고 살리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잠이 오지 않는다. 관성의 법칙은 이리도 무서운 것인가 보다.




 

언제던가, 그때도 천신만고 끝에 오페라 한편을 끝내고 무너진 몸뚱어리를 추스르려 모악산 수왕사 오르는 단 고개를 헐떡거리며 오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집사님! 큰 곡 끝냈다면서요?” 목돈 받았을 텐데 저 돈 좀 빌립시다순간 욱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단호하게 집사님, 죄송합니다만, 전 교인들과 돈 거래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런 전화 하지 마세요!” 오래전 일이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내 평생에 이런 단호한 말은 다신 없었을 것이다.

 

 

월남 전쟁이 한참이던 때는 우리나라가 무던히도 가난하던 때였다. 이등병도 못단 훈련병이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들은 돈을 써가며 애써 피하는 사지로  자원을 한다.  가장 위험한 장거리 정찰소대에서 숱한 사선을 넘기며 일 년의 복무기간을 채웠지만 이 친구는 복무연장을 한다. 이 소식이 부대 내에 퍼지자 죽지 못해 환장한 놈정도로 부대가 들썩거렸던 모양이다. 이런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부대도 당황을 하지만 일단 강제로 휴가를 보냈던 모양이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가니 동네사람, 일가친척이 다 모여 돈을 많이 벌었을 테니 부모가 진 빚을 갚으라느니, 술 좀 사라느니 했던 모양이다. 은근히 부모님도 기대를 하고... 결국 이 친구, 목숨 값으로 받은 돈 다 내놓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복귀를 한다. 휴가를 다 쓰지도 못한 체...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한테까지 이런 전화를 했을 까만은 불쾌한 기분을 녹자 치며 산을 오르는 내내 언젠가 책에서 읽은 이 군인의 자서전을 생각 했었다. 우리 삶의 실존은 이토록 모질고 그악스러운 것이다.

 

나도 그 군인과 다를 바 없다. 한 열흘정도 쉬고 나면 다시 다음 오페라를 쓰기 위해 감옥에 스스로 갇혀야만 한다.

곡을 쓰다보면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페라 작곡가의 돈벌이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성공의 척도를 오로지 잘 먹고 잘사는 생존 프레임으로만 해석하는 우리사회에서 순수예술그것도 작곡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배객 없는 사원의 종지기처럼’ 외롭고 힘든 길이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기적과도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예술과 생활은 서로 상극이다. 예술을 쫒아 가면 생활이 안 되고 생활을 쫒아 가면 예술이 안 된다. 이 두 상극사이에서 곡예를 하듯 살아온 셈이다.

그러면 난 왜 곡을 쓰지?


언젠가 나와 같은 작곡가의 길을 걸어가는 제자가 작곡발표회 축사를 부탁해서 쓴 글로 대체한다

그게 답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사람들은 모르는 게 있지.

 비록 돈도 안 되고 명예도 안 되지만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온 영혼으로 오선지를 채워가는 그 은밀한 기쁨을,

그리고 이 고통의 산물이 무대에서 빛나는 음향으로 현실화 되는 그 희열을.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받는 일은 절대로 오지 않겠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은

진창길을 걸어야 족적이 남듯 내 전 존재의 확인이 작품으로 남기 때문이지.

○○○작곡가야!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순간에도 이 고통이 언젠가는 내 작곡인생에 귀한 소재가 되겠지 생각하면서 긴 호흡으로 먼 길을 가듯 그렇게 그 길을 같이 걷자구나 ....”

모쪼록 성공적인 작곡발표회가 되기만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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