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계

비님이 오시네!

작곡가 지성호 2017. 5. 31. 19:11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winterreise>24곡을 스트링 오케스트라 용도로 편곡하는데 거의 한 달여를 소비하였다. 처음 한 주는 하기 싫은 마음을 달래느라 보내고 다음 한 주는 편곡의 방향을 잡아 정상괘도에 오르는데 보냈다.




상처에도 꽃이 핀다는 5, 얼마나 바람나기 좋은 계절이냐!

이원규 시인의 말대로 산 그늘에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기에도 좋고, 죽기에도 좋고 누군가 태어나기도 좋은봄날을 어둑신한 방구석에 웅크린 체 오선지를 메워 나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 잡아 말일을 넘기지 않으려고 끙끙 거리다 5월이 훌쩍 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미국 갔다 온 후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없구나!

밤을 홀딱 세워 가까스로 일을 각단 지어 메일로 보낸 후, 점심으로 빵 두 쪽을 구워 진한 커피와 곁들여 먹었는데도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홀가분하게 침대에 누우니 아련히 포성처럼 천둥이 쳤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오더니 기어이 세찬 비로 폭발하고야 만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장맛비처럼 제법 예사롭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던 비님이시냐. 자리를 박차고 거실로 나가 창밖을 보니 나무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두운 하늘을 쓸고 있었다. 가로등도 때 아닌 먹구름에 놀라 심봉사 번쩍 눈을 뜨듯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었고....

저 소리, 저 몸짓

바짝 마른 대지가 손뼉 치며 큰소리로 환호하고 춤을 추는 구나야!

더도 말고 딱 한 시간만이라도 내려주렴!

이 비가 그치면 개구리 쫒는 뱀들도 살이 오르고 돌담에 허물을 벗겠지

숲은 또 얼마나 짙어져 엉클어 질 것인가

아래 밭 꼬부랑 할머니가 애꿎은 하늘을 보며 바짝바짝 속을 태우던 남새들도 땅속에 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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