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계

벌써 7월이라니!

작곡가 지성호 2018. 7. 5. 19:26

7월하고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선 돌아온 7월을 인정하기가 너무나 억울하여 쉽사리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다.

일 년의 반을 날려버리고 7월이라니!

, !”

빨라도 너무 빨라 속이 다 쓰리고 아플 지경이다.

많이 웃기지 않은가?

내가 인정하던 말든 세월의 시간은 째깍째깍 한 치의 어김도 없이 타 들어갈 뿐이다

시간의 강물 속에서 나는 이리 텀벙, 저리 텀벙 열심히 그물을 들어 올렸지만 번번이 헛손질 일뿐, 시간은 잘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흘러가버렸다

빈 그물을 털어 텅 빈 고깃바구니를 들고 우두망찰 언덕에 올라 흰머리를 쓸어 올리며 속절없이 굽이쳐 휘도는 강물을 바라보는 어공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오늘 오후

점심 먹고 커피 잔을 앞에 놓고 몇 번인가 폭우가 쓸고 간 정원을 바라본다.

마당은 적나라한 7월의 햇빛에 하얗게 눈부시다

난 용기를 내어 저 뙤약볕 속으로 카메라를 들고 7월과 마주한다.

능소화는 작열하는 태양을 머금고 다홍빛으로 피어나 주렁주렁 태양의 찬가를 나팔로 불어댄다




그런가 하면 어떤 놈들은 간밤의 비바람에 목을 꺾고 부러져 나뒹군다.




호접의 날개인양 사뿐히 즈려 앉은 자귀 꽃, 부챗살처럼 퍼진 그 섬세한 분홍사이로 하늘은 모처럼 드높고 푸르르다.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떠난 아래텃밭에는 때는 이때라고 망초가 제 스스로 거듭나 세를 형성하더니 구름처럼 부풀어 올라 우리 집 마당을 에둘렀다.







망초! 얼마나 하찮고 성가신 것이냐

잔디밭이고 꽃밭이고 자고나면 스멀스멀 간첩처럼 스며들어 솟아오르던 것들과 맞서 

아내와 나는 여름 한철 실랑이를 벌어야 했다



저 몹쓸 것들이 하필이면 1910(경술)년 나라가 망할 즈음에 북아메리카 먼 곳에서 어찌어찌 이 땅에 뿌리를 내리더니 

해마다 지천으로 번져나가 오죽하면 망초가 땅을 차지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떠돌았을까

가뜩이나 죽을 판에 느닷없는 놈까지 나타나 극성을 부리니 힘 팽긴 농민들은 나라가 망한 이유를 이놈들에게 몽땅 뒤집어 씌어 망국초라 부르며 탄식하다가, 입에 잘 붙게 망초라고 줄여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망초의 정확한 한자표기는 亡草가 아니라 網草이다.

무리지어 피어나는 세가 그물망처럼 촘촘해서 그런 것인가?

망초밭을 헤치고 들어가 보면 외대가 길게 뻗어 어깨까지 닿은 키에 얼마나 빼곡하게 들어찼는지 그속에 사람이 앉으면 찾을 길이 없을 정도다.




우리 집 정원에 각개약진으로 스며든 놈들은 보이는 대로 뿌리째뽑혀 던져지지만 저렇게 세를 형성하면 방법이 없다

모든 하찮은 것들의 생존방식이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이놈들에게 속수무책이 된다.

그런데 말이다. 꽃이 드문 요즘, 저렇게 무리지어 우윳빛 꽃구름을 피어 올리니 의외의 볼만한 정경을 연출한다.




봄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 정원에는 숱한 꽃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들은 모두 아내의 손끝에서 알뜰하게 보호받고 살뜰하게 양육됐다

장소를 가려 꽃모종을 하고 목마르면 물을 줬고 끝없이 침범하는 잡풀을 뽑아줬다

그럼에도 이것들은 하룻밤 가는 비에도 허리를 꺾었고 쉬 병들었으며  꽃대조차 올리지 못하고 시들곤 했다.

그러나 제척의 대상이었던 망초가 보란 듯이 저절로 자라나 저리도 장관을 이루니 바라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명의 비밀, 잡초라 불리는 그 모질고 끈질긴 생명의 신비를.

어둑새벽이나 늦은 밤, 뜰에 나서면 이것들이 하얗게 우리 집을 에워싸고 무언의 시위를 벌인다

이놈들의 향기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씁씁한 풀 내가 코끝에 어린다. 망초꽃 무리진 침묵의 함성이 풀 내로 번지는 것이다

네 놈은 지난 6개월, 그 긴 시간을  작곡을 합네 하면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 했지만 

보라, 우리는 소리 없이 키를 키우고 세를 형성해  꽃을 피웠노라고!

 

 

'우리집 사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메,꽃천지여!  (0) 2019.05.14
가을을 따다  (0) 2018.10.24
비님이 오시네!  (0) 2017.05.31
피어오르던 꽃봉오리 무참히 잘렸느니  (0) 2017.05.03
바람을 바라보다  (0) 2016.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