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삶을 살아 맨발의 성자라 일컬음을 받는 이현필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농사는 자기도 없고, 세상도 없고, 자연과 하나님만이 아는 이가 하는 일”이라고.
사람이 뿌리거나 심되 자라고 영글게 하는 몫은 신의 숨결임을 그리 말하신 겐가?
누군가는 농(農)자는 별 신(辰)자에 노래 곡(曲)자가 합쳐진 말이니 문자적으로 보자면 별의 노래라고 풀이했다.
별의 노래라, 아름답지 아니한가.
행성이 우주를 유영하며 노래하는 우주의 하모니!
불가사의 한 것이 옛날 그리스의 철인들도 밤하늘의 별 밭을 우러르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우주의 가없는 공간을 운행하는 행성의 속도가 일정한 음고(音高)를 지닌 소리를 생성하게 되고, 저마다 다른 속도로 운행하는 여러 행성들은 당연히 서로 다른 음향들을 생성하여 온 우주를 가득 채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로운 천상의 하모니가 바로 "소리 나는 코스모스"가 되겠다.
우리의 귀에는 별의 노래가 들리지 않지만 이것들이 곡식과 열매들에 스며있음에랴!
햇빛, 바람과 비, 다 우주에서 비롯된 것이니 곧 농사일은 하늘에 매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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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되니 우리 집 울안의 감들이 주렁주렁 익어간다.
단감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요즘이 제 철이다.
이 때를 놓치면 물러져서 아삭아삭 깎아먹는 단감 맛이 없어진다.
일구더기 속에 파묻혀 밤잠 못자고 사는 내가 안쓰럽던지 그림자처럼 내 뒤를 봐주던 아내가 요 며칠 한가한 듯싶어 뵈는지 이 것 저 것 지시사항이 많으시다.
오늘 오전은 감을 따라신다.
감 따는 것도 일이다.
모든 일은 힘이 든다.
고개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등짝으로 땀이 벤다.
같은 나무에 달린 감이라도 어떤 놈은 크고 실하고 어떤 놈은 벌레 먹고 볼품이 없다.
어떤 놈은 담 밖에 떨어져 귀찮음을 무릎 쓰고 돌아가 주워서 돌담에 올리면 기어이 굴러 떨어져 아래 밭, 물 고인 고랑으로 쳐 박힌다.
“까짓거 하나쯤이야!”
포기할까 싶다가다 한 여름 땡볕과 가뭄과 풍우를 이기고 여기까지 온 과정이 차마 아까워 허리춤까지 차는 풀숲을 헤치고 찾아본다.
난 예수도 아닌데 잃은 감 하나를 찾아 이리도 헤매는고?
쌀 한 톨도 허수히 여기지 않는 농부의 마음도 다를 바 없다.
온몸에 도깨비 풀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일일이 하나하나 찾아 떼어내야 한다.
세상이치가 다 그런가보다. 어떤 놈은 수월하고 어떤 놈은 지독하게 말썽을 피우고.
안에서는 머리가 억새처럼 하얗게 센 아내가 감을 깎아 거실 깊숙이 들어온 햇빛에 말린다.
바구니에 빙 둘러 감을 너는 손길에 음전함이 묻어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된 아내를 보노라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부부는 늘그막에 연민으로 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