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계

게릴라 가드닝

작곡가 지성호 2019. 5. 21. 16:43

간밤에 연못속의 개구리들이 미어지도록 울어댔습니다.

잠못드는 아내는 저놈들을 어떻게 좀 해보라고 성화를 내더이다.

이른 아침, 마당 가득 황금빛 햇살이 얼마나 찬란한지 나도 모르게 뜰에 나와 꽃들과 눈을 맞춥니다

앞산에서 은방울 같은 꾀꼬리소리 처렁처렁 울리고 5월의 들판에는 초록 바람이 말을 달립니다.

바람결에 언뜻언뜻 인동초 짙은 향기가 코에 스칩니다

다닥다닥 앵두는 붉게 익어가고 양귀비꽃은 더욱 요염해집니다




눈곱을 비비며 잠깐 마당을 들러본다는 것이 그만 동네어귀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나는 큰길가 열 지어 늘어선 샤스타데이지, 그 눈부신 순백의 사열을 받으며 모처럼의 봄날을 구가합니다. 이놈들은 모두 다 내손으로 씨뿌려 싹틔운 놈들이라 마음이 더욱 갈 수밖에 없습니다.

농부가 식전에 뒷짐 지고 자기영토의 농작물을 바라보는 바로 그 마음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며칠 전 페친 으로부터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게릴라들이 적지에 잡입하여 암약하듯 도처의 공터에 꽃씨를 뿌리는 행위를 그렇게 부른다면 참으로 탁월한 명명(命名)이 아닐수 없습니다. 

법적 권리나 사적소유권을 갖지 못한 땅에 꽃씨를 뿌렸으니 나도 게릴라 가드너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 행동양식에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땅의 소유권자가 땅을 경작하지 않고 방치하면 시골조차도 키를 넘는 잡초와 온갖 비닐쪼가리들이 현대미술의 난해한 설치물처럼 펄럭이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나칠 때마다 언짢아집니다.

이럴 때 게릴라 가드너는 토지소유자에게 땅이 방치 또는 오용되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게릴라같이 야음을 틈타 은밀하게 씨를 뿌리거나 식목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백주에 당당하게 우리 동네 놀리는 땅이나 도로변에 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니 나를 게릴라라 한다면 턱도 없는 소리지요.

세상에 실체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게릴라가 어디 있답디까?

냥 죽으면 썩어질 내 몸뚱아리, 조금만 바지런을 떨면 내 눈이 오늘처럼 호강에 겨워 즐거워지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내 좋차고 한 일이지요.

정말이지 무슨 이순신 병이 도져 <마을 가꾸기>같은 거창한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내가 그럴 위인은 애시당초 못되는 사람입니다

아니 사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면이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덤이지요.

그런데요, 사람마음이란 다 같은 것인가 봅니다.

예쁜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앞집 유화백님은 꽃을 가꾸는 나를 볼 적마다 가던 차를 멈추고 유리문을 내려 엄지 척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몇 분은 자기 집 정원의 남는 꽃모종을 도로변에 옮겨 심고 가물 때는 물도 줍니다.

 



이때쯤이면 바람도 순해지고 훈풍이기 마련인데 오늘 아침은 바람난 봄바람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네요.

꽃잎이며 이파리들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일제히 나부끼면서 환호작약합니다.

기온도 많이 내려가 가을날 소슬바람처럼 썬득썬득 피부에 스치는 청량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합니다

무슨 거름을 내거나 물한바가지 준 바 없지만 때 되면 죽은 땅을 헤집고 나와 저리도 생명을 길어내는 요놈들을 보노라면 우주와 삼라만상의 순환의 비밀을 언뜻 깨우친 느낌도 듭니다.

나는 날로 늙어가 끝내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이놈들은 억만년 죽고 또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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