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쓰러진 분꽃더미를 지주를 박아 조심스럽게 세워 주었다.
이와 같이 돌이킬 수 없이 쓰러진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만 있다면.......
눈 한번 마주치진 않았지만 난데없이 한 사람을 떠나보낸 허망한 마음에 스며든 생각이다.
지금은 오후 5시, 분꽃이 닫혔던 꽃잎을 여는 시간이다.
꽃 모양은 그저 시골 시악시 같이 수수하지만 새벽이나 깊은 밤, 분꽃 주변에 고인 향은 얼마나 그윽한지!
옛날 남대문, 동대문은 시간 맞춰 열리고 닫혔다지만
요놈들은 절대로 꽃잎 벌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허리가 아직 완전하지 않는 나는 오후 시간이면 하릴없이 창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 요놈들의 꽃잎 여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기도 했지만,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어느덧 꽃잎을 열고 “나 요로코롬 피어버렸슈!” 놀려대듯 은근하고 소박한 미소를 보낸다.
요놈들은 내 시선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은근한 눈치 싸움에서 나는 오늘도 패배자가 되고 만다.
참을 수 없어 인위로 꽃잎을 열라치면 그만 시들고 만다.
요놈들은 어느덧 피고 어느덧 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