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계

해거름에 잔디를 깎다

작곡가 지성호 2020. 8. 3. 22:03

 

올해는 길고도 긴 장마였다.

추적추적 종일 내리거나 아니면 장대같이 쏟아 붓는 비로 무거운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와 연못에서 물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다.

 

오랜만에 비가 개니 수목들이 그토록 개운한 몸짓으로 짙은 녹색을 풀어 어두운 그늘을 만든다.

이로써 지루한 장마가 끝이 났나보다.

어젯 밤 산책길에 둥실 뜬 달을 반갑게 마주했었다.

 

오늘, 분꽃이 만개한 해거름에 벼르고 벼르던 마당의 잔디를 깎았다.

들쑥날쑥 더벅머리 같던 마당이 이발소를 막 갔다 온 아들내미 뒤통수같이 가지런하여 얼마나 보기 좋은지.

 

 

 

사실 다친 허리가 염려되어 잔디를 깎을 수 있을까 망설였지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지라 복대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잔디깎기 기계를 밀었다.

아직 땅이 물러 바퀴는 잘 구르지 않고 흘러내리는 땀으로 눈은 쓰리고 옷은 젖어 들어갔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앞뒤 마당의 잔디깎기를 모두 끝을 내었다.

노동 끝의 세레모니로 길섶의 반 마른 쑥대를 모아 소각로에 넣고 불을 지핀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에 쑥냄새가 짙게 어린다.

여름날 저녁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시골의 정취가 아닐 수 없다.

 

그 빗속에서도 모과와 대추는 알알이 영글어 제법 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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