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태풍이 많아 뜰 안에 감이며 사과며 대추며 수확할게 별로 없었다. 만약 내가 유실수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면 올 겨울 끼니를 걱정할 판이었다. 유일하게 모과만 평년작은 되는 것 같다.
이 모과나무로 말하자면, 이사 온 다음 해에 동네분이 선물로 이식시켜 주었는데, 마다 할 수 없어 심긴 심었지만 생긴 것이 별로 탐탁찮아 눈길조차 주지 않던 나무였다. 그러다 십년, 이십년을 넘어 삼십년이 다 되가니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로 변하는 것이었다. 갈수록 균형 잡힌 장대한 몸매에 알록달록 줄기가 터져 만들어진 문양은 꽃배암이 몸을 풀고 햇볕을 즐기는 것 같아 어떤 때는 선명한 붉은 빛이 섬뜩하기조차 하다. 6월초에 만개한 꽃은 또 얼마나 예쁜지, 멀리서 보면 꽃구름이 뭉실 뭉실 봄 신명을 지펴 올린다.
지금은 바비큐 장 지붕을 온통 다 덮어버리고 잔디마당까지 세를 펼쳐 내년 봄에는 가지치기를 해줘야 할 형편이다. 원래 흉고 직경 10센티는 넘는 놈을 옮겨 심었으니 정확한 수령은 모르겠지만 대략 4십년은 족히 넘은 장년이시다.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볼품없이 추레해지지만 나무는 늙을수록 표정이 생기고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모습은 외경심조차 생긴다. 그래 옛날 성황당 고목나무는 울퉁불퉁 등걸자체가 파란만장을 겪어내고 지켜본 한 동네의 서사인지라 울울하고 축축한 그늘자리는 늘 영기가 서려있어 축수를 비는 돌무더기는 그렇게 높아지기만 했었나보다.
어김없이 한해의 추수는 모과가 마지막이다. 모과를 따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다. 시장에 나온 모과는 죄다 같은 크기로 애호박처럼 미끈하게 잘 생겼지만 우리 집 모과는 유난히도 못생겼다.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깊은 밤이나 새벽에 둔중한 소리가 “쿵”하고 들리면 대갈통만 한 모과가 지붕에 떨어진 줄 안다. 이놈들을 따 거실에 들여놓으면 아내의 모과청 담는 작업이 시작된다. 내가 작곡을 하다가 지쳐 새벽녘에 잠자리에 들라치면 새벽잠이 없는 아내는 모과향이 가득한 방에서 언제나 모과를 다루고 있었다. 큰 독일산 칼등을 손으로 탁탁 쳐 단단한 모과를 조각내고 도마에서 깍뚝 썰기를 한다. 난 그 걸 볼 때마다 예리한 칼날이 미끄러운 모과의 표피에서 자칫 어긋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따뜻한 침대로 곤두박질해 들어간다. 가끔 도마에서 칼날을 받지 않고 뛰쳐나가는 모과소리를 들으면 실눈을 뜨고 무슨 사고는 안 당했나 확인하기도 한다.
유난히도 달콤한 새벽녘의 잠에 빠져들어 가면서도 나는 한석봉 어머니의 아들을 교훈하는 떡 썰기를 생각하곤 했었다. 아내는 세상이 들끓든 말든 유달리 쪼그만 손으로 제 할 일을 묵묵히 해치워 나갔다. 수확이 많을 때는 보름도 훨씬 넘게 모과 썰기는 계속되는데, 나는 내 작업의 진척이 지지부진하면 재주 없음을 핑계 삼아 너무 쉽게 포기의 유혹에 흔들리는 내 심사를 잠결에 가만히 다독이곤 하였다. 저렇게 무심하게 할일을 계속하다보면 아무리 힘든 내 작업도 기어이 끝날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번지는 모과 향처럼 풀풀 피어오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