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계

적멸을 유영하며...

작곡가 지성호 2021. 1. 7. 17:05

이만하면 폭설이라 할만하다.

밤새 세상의 풍경이 완연하게 바뀌었다.

백설 애애한 순백의 세상으로.

어제 겨울 햇빛치고는 너무도 좋아, 추운 날 나들이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아내와 이웃의 점심초대에 운동 삼아 걸어서 갔다 온 터였다.

눈의 복병이 엄습할 어떤 기미조차 없었다.

세상에나, 이렇게도 소리 없이 세상을 바꿔놓다니!

 

 

 

두터운 어둠이 물러 갈 무렵, 허리가 아픈 나를 만류하며 아내가 겨우 사람이 다닐만한 길을 터놓았다.

사람도 차량의 왕래도 없는 도로는 절박한 사람이 새벽같이 움직였는지 타이어 자국이 두 줄로 나란히 골을 파 놓았다.

이 조차 삭도(削刀)같이 예리하게 얼굴을 때리는 눈에 점점 파묻혀가고 있었다.

눈은 세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막아 놓을 태세이다.

 

눈이 내려 쌓인 날은 이상하게 세상이 고요하여 지구의 자전과 공전도 멈춘듯하다.

하릴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적멸의 경지를 유영한다.

관자놀이의 맥동을 느끼며.

나를 떨어드린 소나무가 몸부림치는가 싶더니

처마에 밀려 내려온 눈 더미가 바람에 흩날리는 뒤끝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목덜미에 으스스 한기가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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