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계

생울타리를 깎다가...

작곡가 지성호 2020. 8. 17. 16:14

노아의 홍수처럼 끝없이 쏟아 붓던 장마가 물러난 후 연일 불볕더위다.

눈부셔 실눈을 뜨고 바라봐야만 하는 하얀 마당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햇볕이 작열한다.

보기만 해도 목과 등이 따끔거린다.

한낮의 풍경은 숨죽인 정물화다.

얼기설기 얽히고 층층이 짙어진 메숲 그늘에 조용히 스며든 적막을 못 견뎌 매미울음소리 홀로 드높다.

이때가 시골살이의 단 고비다.

풀들은 베고 나서 뒤돌아서면 어느새 키를 넘는다.

지난번에 제멋대로 산발한 쥐똥나무 울타리를 92세의 아버님이 견디다 못해 전지를 하셨다.

허리가 아픈 나는 바라보고만 있자니 애가 탔다.

저러다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허리가 두 동강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전지를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어제는 마당의 잔디를 깎아줬고 오늘은 울타리며 정원수들의 머리를 깎아 줘야만 한다.

우리 집은 길가에 있어 이런 관리에 게으르면 오고가는 사람들이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복대로 허리를 단단히 죄고 장화를 신고 토시를 끼고, 완전무장을 한 채 전장에 나서는 장수처럼 깊은 심호흡을 하고 뙤약볕에 나선다.

 

완전무장을 한 집사의 옷은 이내 젖어들었고 파란 하늘은 거칠것 없이 땡볕을 쏟아붓는다.

 

셀카로 내 자신의 모습을 찍어보는게 처음이라 스스로 어색하였다

사람들은 나를 방안에 틀어박혀 곡이나 쓰고 책이나 읽는 샌님중의 골샌님으로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당신들처럼 벌레 한 마리에 호들갑 떠는 허약한 자연예찬론자가 아니다.

집도 지어봤고 주차장이며 창고며 시골살이에 필요한 공간을 다 내 힘으로 직접 지었다.

온종일 시멘트와 모래자갈을 비비는 날들이 모여 손에 굳은살이 두꺼워졌었다.

일을 무서워하고 걱정만 하고 있으면 눈곱만큼도 진척되지 않는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뛰어들어야 한다.

러면 어떤 식으로든 끝을 보게 되어있다.

 

쥐똥나무 생울타리가 제멋대로다

 

울타리를 깎다말고 말벌들이 날아다녀 살충제를 뿌려 만약에 대비한다.

 

일단 생울타리 전지는 마쳤다. 목을 축이면서 노동의 결과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보람차고 즐겁다. 그러나 몸이 부실하여 내 실력이 다 발휘되지 못하였다.

 

빈틈없이 엉킨 철쭉사이로 파고들어 전지를 한다

 

슬슬 피곤이 짙어져 힘이들고 옷은 짜입어야 할 정도로 젖었다.

 

모악산 그늘이 동네에 내려오는 오후 5시쯤 시작한 일이 8시에 가까워서야 중단되었다.

중단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갑작스럽게 왼쪽 엉덩이에 심각한 근육경직이 생겨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쥐가 난 것이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숨쉬기도 힘들어 쩔쩔매었다.

통증은 왼쪽 허리를 타고 겨드랑이까지 타고 올라갔다.

왈칵 겁이 났다. 허리에 무슨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나 복대로 단단히 조여진 허리는 어떤 통증도 못 느껴 일단 허리는 안심이 되었다.

쭈그리면 안 되는 나의 몸이 바닥의 풀을 베는 과정에서 견디다 못한 골반 뼈가 반기를 든 것이다.

아픈 부분을 주무르면서 겨우겨우 몸을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서서히 발걸음을 떼 봤다. 통증이 심하게 몰려오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반 시각 정도를 마당을 맴돌며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니 통증이 엷어지다가 점차 정상을 찾아갔다.

오늘 중으로 일을 끝마치려는 마음으로 조바심대며 무리를 한 뒤탈이었다.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된다는 넉넉한 마음이 부족한 나를 스스로 탓해 본다.

언제나 시간에 쫒기는 삶을 살다보니 밥도 허겁지겁 먹고, 일도 서둘다 동티가 난 것이다.

'우리집 사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멸을 유영하며...  (0) 2021.01.07
모과를 수확하다  (0) 2020.11.25
해거름에 잔디를 깎다  (1) 2020.08.03
베롱나무 그늘  (0) 2020.07.31
아무도 모르게....  (0) 2020.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