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루갈다

“죽음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작곡가 지성호 2018. 6. 20. 08:04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9.11 테러의 비극을 배경으로 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에 이런 구절이 있다.

 

"태어난 이상 천 분의 일 초 후든, 며칠 후든, 몇 달 후든, 76.5년 후든 누구나 죽어야 한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 말은 우리 삶이 고층 빌딩과 같다는 의미다. 연기가 번져오는 속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불길에 휩싸여 있기는 다 마찬가지이고, 우리는 모두 그 안에 갇혀 있다."

 

그렇다!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한 행진을 시작한다

교황도 달라이 라마도 영생교 교주조차도 이 길을 벗어날 수 없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목숨의 애착은 너무나도 맹목적인 것이라 애써 외면할 뿐이지 결국 우리 삶이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안에 갇혀있는 것이고 종국엔 화염과 연기에 싸여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같은 책에서 아홉 살배기 소년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다.

 

왜 모든 것을 마지막처럼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가장 한스러운 것은 미래를 너무 많이 믿었다는 거야.”

 

이런 통한의 후회가 없으려면 미래를 너무 믿지 말고 마지막에 대한 차분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너무나 비관적인 삶의 태도이고 이 밝은 대낮에 웬 어두운 이야기로 마음을 울산바위처럼 무겁게 하느냐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영원히 살 것 같이 죽음을 배제함으로 정작 죽음의 순간에 오스카의 할아버지처럼 후회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란 책에서 성찰한 죽음은 깊이 음미된다.

그는 말하길 과학의 첨단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통제되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모든 것들을 삶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죽음이 아니겠는가? 현대인이 활동하는 공간은 삶을 위한 공간이지 죽음을 위한 공간일 수 없다. 이 밝고 즐겁고 풍요가 넘쳐나는 시대에 어둡고 칙칙한 죽음은 예측불허의 불편한 것이기에 멀리 격리시켜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작 죽음에 임박해서는 당황하게 되고 마치 죄인처럼 배척당하며 고독하게 죽어간다는 것이다.


현대 의과학(醫科學)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연장에 놀라운 진전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태초의 처음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죽음에 당면한 문제는 다를 바가 없겠다

현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나 이는 무망한 욕망으로 인간이 신이 되려는 만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생태론 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생과사의 순환이 균형을 맞춰야지 죽지 않으면 인류에게 재앙으로 작용할 것이다.

 

죽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가장 심각한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미소 짓게 만드는 아인슈타인의 낙관적 사생관(死生観)이 돋보인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태도는 한사람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자 고유한 내적 경험이기 때문에 다 같을 수 없다

내가 젊었을 적 다니던 교회의 장로님은 큰 병원의 의사였다

이분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직업 때문에 죽음의 순간을 많이 목도하는 사람이지만 참 의외의 현장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평소 존경받던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의외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몸부림치다가 임종하는가하면 반대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의연하고 담담하게, 때로는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여 보는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분 말씀이 임종에 대한 태도에서 신앙인들의 궁극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니 우리가 평소에 분명한 사생관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내 기억 속에 각인된 말씀이다.

 

죽음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멕시코 꼴리마에서 백미러에 비친 꼴리마 화산을 촬영


어떤 사람인지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써진 문구를 패러디한 재치가 기가 막힌다.

그렇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나에게도 죽음은 이제 아주 가까운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배척할일이 아니라, 죽음을 인정하고 순응하며 영접하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모아야 할 때이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있다

오스트리아인들이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죽음은 삶의 일부이지 종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죽음'을 외면하거나 격리시키지 않고 미구에 닥칠 자신의 장례식을 대화의 중요한 주제로 삼는단다. 그네들은 자신이 죽게 되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된 후 가족과 친지와 조문객에게 보여지길 원하며 격식을 갖춘 장중한 의식의 애도를 받으면서 꽃과 음악 속에서대지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유명인 들의 성대한 장례식은 전국에 중계되고 사람들은 스포츠를 보듯 그것을 즐겨본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인들의 이런 장례문화를 집대성해놓은 곳이 빈의 중앙묘지(젠트랄프리드호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빈을 여행하게 되면 들르게 되는 필수 코스인데 우선 묘 내부에 버스까지 다니는 엄청난 규모의 크기에 놀라고 묘소마다 아름답게 꾸며져 예술품으로 손색없는 기념비며 건축물들, 거기에다 모차르트(빈 묘지이지만), 베토벤,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짜한 위인들의 무덤에 놀라게 된다


            

                                      빈 중앙묘지의 베토벤 묘


음악사에 보면 빈에 활동의 뿌리를 둔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불후의 대 작곡가들은 다 장엄미사곡을 남겼다

이는 합스부르크가의 영광과 위엄이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실례라고 할 수 있겠다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합스부르크가의 위대한황제가 죽게 되면 시신은 나뉘어 심장은 아우구스티누스 성당에, 방부 처리된 내장은 스테판 대성당에,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땅에 매장되었다한다

이 과정마다 여기에 준하는 장대한 의식이 당연히 따랐을 것이다

이승의 권력이 저승의 세계까지도 선점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겠다. 아니면 남겨진 사람들이 황제권력을 절대시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고히 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작용이거나.

다 부질없는 짓이다. 거대한 피라미드도 고인돌도 이것을 세운 권력자들의 영생불사를 보장해 주지 않았고 장구한 세월 속에 바람 따라 모래알로 흩어질 것이다.

모든 목숨은 생명을 준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 갈뿐이다.


                                                                           베토벤 데드마스크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가 되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 수 없을 때 스스로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곡기를 끊어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한 후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그는 죽음이란 배가 한쪽에서 수평선 너머 사라지면 반대편에선 수평선너머에서 배가 나타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죽음이란 이 세계에서 사라지면 저 세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우리의 죽음을 그렇게 소란스럽게 만들어야 할까?”라고 요란한 죽음에 의문을 품었다.

내 바람도 다를 바 없다

삶의 집착에서 놓여나 때가되면 떨어져 대지로 돌아가는 나뭇잎처럼 그렇게 무르익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며칠 전 비올리스트 용재오닐과 김기수 기자의 대담을 실은 기사를 읽다가 눈에 띄는 대목을 접했다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음악에는 공포를 유보하는 담대함이 있다.”

나는 이 견해에 적극 동의한다

음악에는 힘이 있다. 이 힘의 배후를 따져보고 대체의학으로 사용하는 것이 음악치료이다

그 음악의 힘이 죽음의 순간에도 공포를 물리치고 평온함을 줄 것임에 확신을 갖는다

그렇다면 최후의 순간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가.

나에게 고종명(考終命)이 허락된다면 그 마지막 순간에 꼭 듣고 싶은 곡이 있다

내가 작곡한 오페라 <루갈다>중에 요한 유중철이 형장에서 최후의 순간 불렀던 아리아 내 사랑, 내 그리움이여이다.

오페라 한편을 작곡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악보를 넘겨야 할 정한 날짜는 시한폭탄처럼 타들어 가는데 좀처럼 작업이 진척되지 않은 초조가 과연 내가 이 오페라를 완성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로 이어져 심장이 옥죄어오는 새벽녘이었다

밤을 꼬박새운 피곤이 누적돼 껄끄러운 눈으로 대본을 앞에 두고 곱씹고 있는데 갑자기 음악의 신이 나를 찾아왔는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르며 눈물과 함께 선율이 막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이것을 놓칠까봐 정신없이 오선지에 주워 담아 선율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내 사랑, 내 그리움이여 

우리 약속한 그 시간 오네

천상에서 다시 만날 그 시간이 오네

눈물 없는 그 곳

슬픔 없는 그 곳

고통과 이별 없는 그 곳

영원히 함께 지낼 그 순간

항상 꿈꿔왔던 바로 그 순간

천상에서 다시 만날

그 시간, 그 시간이 오네

내 사랑, 내 그리움이여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내 사랑, 내 그리움이여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루갈다! 루갈다! 루갈다!


     지성호의 오페라 <루갈다> 중 '내사랑 내그리움이여' 명동성당 공연 실황 (ten/강훈)


내 블로그에 이 아리아에 대한 해설이랄까, 배경설명 같은 걸 포스팅 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중철 요한의 최후의 아리아입니다. 

요즘 정치가들이야 말로만 목숨을 잘도 내놓지만 순교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유중철 요한은 23세의 피 끓는 나이에 단지 믿는다는 것 때문에 교수형을 당합니다.

요한은 마지막 순간에 11월의 시퍼런 하늘을 우러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옥중에서 밤낮 없이 무거운 칼을 차고  앉아  다가오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곱씹고 또 곱씹었을까요?

믿음과 회의 사이를천국과 지옥 사이를 시계추처럼 수도 없이 왕래했을 것입니다.

당장 바위처럼 목과 어깨를 짓누르는 커다란 칼과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그대로 입고 지내야만 하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물 없는 그곳슬픔 없는 그곳고통과 이별 없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루갈다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모든 의심과 회의를 억눌렀기에

요한은 기꺼이 그 길로 걸어갔을 것입니다

요한이 순교한 뒤옥중에 있던 아내 루갈다는 그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하였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마침내 편지 한 장이 집에서 왔습니다그 편지에는 이러한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요한의 옷안에서 자기 누이(즉 아내 루갈다)에게 보내는 쪽지가 발견되었는데그 쪽지에는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위로하오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