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비루투오소 오르페우스
서양음악사에서 오르페우스 신화는 오페라, 발레, 관현악, 합창음악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초기 오페라 작곡가뿐만 아니라 후대의 작곡가들도 오르페우스 신화의 소재를 무척이나 자주 사용했다.
어느 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1599년부터 100년간 꽤 알려진 작곡가 중에서 이 신화를 오페라의 소재로 삼은 예는 20개가 넘는다고 한다. <고전음악의 이해 102쪽에서 인용>
또한 최초의 오페라 작곡가로 기록된 페리와 카치니, 인위적이고 실험적 산물인 오페라를 확고부동한 음악의 장르로 편입시킨 몬테베르디, 오페라가 만들어진 162년 동안의 적폐를 개혁한 글룩,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오르페이스에 투영시켜 교향시를 만든 리스트, 그리고 오펜바흐, 크셰넥, 미요, 스트라빈스키, 피에르 앙리, 가까이는 1986년 영국 국립오페라단이 상연한 버트위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의 가면’에 이르기 까지 오르페우스 신화와 관련된 수많은 작품들이 탄생되었다.
오르페우스 신화의 무엇이 이토록 음악적 상상력을 자극했을까?
신화를 읽어보면 리라의 비르투오소였던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어 신통력이 있었단다. 이러한 오르페우스의 신적인 음악적 재능은 그의 가계를 살펴볼때 부모로부터의 내림임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여러 시인들이 음악을 신들의 발명품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노래하거나 시로 남기고자 했으나, 이를 담당할 신이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인간의 얼굴과 용의 몸을 가진 거인 기간테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우쭐해진 제우스는 자신의 무용담을 노래로 만들어 영원히 기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제우스는 신중의 신이니 하고싶은걸 당장 실행에 옮겼다. 이 전쟁에 대해서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아홉 밤을 계속 동침한 끝에 아홉 명의 딸을 낳았다. 이들이 바로 무사이(Mousai)들이다. 이 무사이들의 후견인은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로 음악의 신이기도 하다.
이 아홉 명의 무사이들은 언제나 함께 모여 전체적으로 음악과 시, 무용 전반을 다루었는데 후에는 그럴듯하게 전문 분야가 정해졌다. 이중에 서사시를 담당하는 칼리오페(Kalliope)가 바로 오르페우스의 어머니이다. (어떤 신화는 오르페우스가 아폴론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인간은 물론 동물과 산천초목까지 감동시켰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면 온갖 새들의 무리가 날아와 그의 머리 위를 맴돌며 음악을 들었으며 짐승들도 그의 주변으로 몰려와 넋을 잃고 음악에 빠져들었다. 뿐만 아니라 강과 바다의 물고기들도 물위로 뛰어올라 그의 음악에 환호작약했다니 오르페우스의 신공을 알만하지 않은가. 이 것 뿐만 아니다. 오르페우스가가 노래를 부르면 강물들도 흐르는 물소리 때문에 노랫소리가 안 들릴까 흐름을 멈췄고 나무들은 좀 더 가까이 노래를 듣기 위해 오르페우스 쪽으로 휘어졌다한다.
심지어 생명이 없는 돌들까지 오르페우스의 아름다운 음악에 이끌려 그의 뒤를 쫓았다.
당연 올림포스의 신들까지도 오르페우스의 광팬이었다.
음악에 관한 한, 아폴론과 무사이만이 오르페우스와 견줄 수 있었다.
이게 신화에서 말하는 오르페우스의 정말 신화 같은 이야기 이다.
허황된 이야기 일 뿐인가?
조셉 캠벨이라는 사람이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이란 저서에서 우리가 허황되게 들릴지라도 신화에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고 하였다.
신화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그 숨겨진 힘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신화는 종족이나 집단의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과 체험을 바탕으로 발생된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융은 말했다.
집단 구성원들이 신화를 통해 형성된 공통된 인식적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르페우스 신화에 투영된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은 음악이 자연현상까지도 바꿔버릴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일 것이다.
사이렌
계속해서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일으키는 신통력 몇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르페우스의 리라 솜씨는 이제 그리스 전역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나 보다.
아르고스 원정대의 대장인 이아손은 바다의 괴물인 사이렌의 요사스러운 음악과 싸워 이기려면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꼭 필요하다는 스승 케이론의 충고에 따라 오르페우스에게 원정대에 참가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흔쾌히 이아손의 청을 들어주어 원정대에 참가했다.
원정 중에 오르페우스는 음악을 연주하여 노를 젓느라 지친 원정 대원들의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혹시 대원들 사이에 불화가 있어 서로 싸우게 되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노래로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되찾아 주었다. 바다가 사나워지면 리라를 연주해 파도를 잠재우는가 하면 떠 있는 바위 쉼플레가데스를 음악으로 감동시켜 얌전하게 만들었다.
콜키스에 도착해서는 황금의 양털을 지키는 용을 음악으로 잠들게 하기도 했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이토록 만능이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아르고스 원정 대원들을 사이렌의 유혹으로부터 구했을 때이다.
사이렌? 많이 들었던 소리가 아닌가?
바로 민방공 훈련 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며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이 바로 이 사이렌이다.
이 사이렌의 모습은 반인(伴人)반조(半鳥), 즉 반은 사람이고 반은 새인 모습이다. 여러분은 모두 이 요정의 모습을 익히 알고 있다.
못 보았다고?
만약 생각이 안 난다면 오늘 길거리의 스타벅스 커피숍의 로고를 한번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거기 그려져 있는 긴 머리의 여자가 바로 사이렌이다.
그러면 왜 스타벅스는 사이렌을 로고로 했을까?
사이렌은 남부 이탈리아에 있는 '안테모에사(Anthemoessa)' 섬의 바위에 앉아 아름다운 노래로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유혹했다.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행복한 마음이 되어 집도 아내도 아이들도 잊고 한없이 그곳에 머물고 싶어진다.
손과 팔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 나가 나른한 기분이 된 선원들은 배가 암초에 부딪히는 것도 모른 채 무아지경에 이르러 죽게 된다.
이쯤해서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 바로 사이렌임을 알 수 있다. 스타벅스의 창업자는 이점에 착안하여 “사람들이 내 커피숍 앞을 지날 갈 때 그 누구도 내 집 커피 향기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겠다” 는 의미에서 사이렌을 로고로 정했다고 한다.
아르고스 원정대가 이 섬 앞을 지날 때도 사이렌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노래로 대원들을 유혹했다.
부드럽게 철썩이는 파도처럼 감미롭고 투명한 목소리, 그토록 사람의 영혼을 깊숙이 빨아들이는 신비한 목소리를 대원들은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원들은 이 위험한 수로에서 그만 넋을 잃고 음악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이렌의 노래는 아름다운 만큼 치명적인 것이었다. 바로 그때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뜯으며 노래를 불렀다. 달콤한 죽음의 노래가 아닌 생명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한 수 위였다.
대원들이 하나씩 둘씩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들이 탄 배는 죽음의 바다를 무사히 빠져나가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싸움에서 진 사이렌은 그 자리에서 돌덩이로 변하고 만다.
오르페우스가 이긴 것이다. 노래로 노래를 이긴 것이다.
사이렌의 자매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년)의 오페라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의 모험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내 '에우뤼디케(Eurydike)'를 찾아오기 위해 죽음의 세계를 내려간 이야기다.
후대의 오페라에 수많은 전형을 제시하고 있는 걸작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우스>도 바로 이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최초의 오페라가 만들어진 공식적인 년도는 1600년이다. 이로부터 7년 후인 1607년에 작곡된 이 오페라의 음악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수없을 정도다.
르네상스 운동의 모토였던 ‘그리스로 되돌아가자’는 시대정신속에서 고대 그리스의 음악은 이랬을 것이라는 지식인들의 실험적 산물이었던 오페라를 음악의 확실한 장르로 편입시킨 기념비적 작품으로 오늘날도 여전히 무대에 올려지는 위대한 오페라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르페우스의 아름다운 아내 에우뤼디케는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산책을 하다가 꿀벌치기의 눈에 띄었다. 그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사랑을 얻고자 추근거리자 에우뤼디케는 놀라 도망쳤다.
정신없이 풀숲을 내달리다가 그만 독사를 밟아 물려 죽게 된다.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슬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오르페우스도 아내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어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아니 이 지상의 공기를 호흡하는 모든 것에 호소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아무리 오르페우스의 슬픔에 공감한다해도 삶과 죽음의 명운이 갈린 에우뤼디케를 살릴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아내를 깊이 사랑한 오르페우스는 달랐다. 그는 죽음을 인정 할 수 없었고 그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섰다.
음악의 신비한 힘을 믿었던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로 내려가 하데스에게 직접 부탁하여 아내를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에서 이 부분이 가장 감동적이다.
아래 동영상은 1978년, 원전연주의 대가 아르롱쿠르가 그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함께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한 실황으로, 이 중에서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부분만 발췌하여 올렸다.
공들여 제작한 무대 세트도 일품이고 장 피에르 폰넬(Jean-Pierre Ponnelle)연출 또한 훌륭하다.
오르페우스 역 필리프 후텐로허(Philippe Huttenlocher)의 열창이 심금을 울린다.
지하세계의 입구에는 뱃사공 카론이 죽은자들을 명부의 세계로 싣고 간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는 누구도 건널 수 없다.
오르페우스는 ‘이 곳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리라’(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라는 글귀가 새겨진 문을 통과하여 지하세계의 입구에 도착한다.
‘이 곳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문장은 단테의 <신곡>중 지옥편 제3곡에 나오는 그 유명한 문장 아닌가? 지옥문 위에 새겨졌다는.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오히려 강렬한 희망을 품고 지옥문을 통과한다. 에우르디케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는 곧 괴물 카론의 저지를 받게된다. 냉혹한 지하세계의 뱃사공 카론은 살아있는 자는 누구도 건널수 없다고 막아선다.
오르페우스는 카론을 향해 호소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 마음 떠난 나야말로 죽은거나 진배없으니 제발 강을 건너게 해달라는 애절한 노래가 결국은 비정한 카론의 유리심장을 녹여 명부의 세계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이 동영상을 편집하는 가운데 자막처리가 서툴러 많은 시간을 들였음에도 노래와 많이 일치하지않는다. 그래도 어떤 내용인가를 짐작하는데는 그리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명부의 세계에 들어가서도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연주하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절절하게 노래한다.
지하세계의 괴물들과 그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망령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깊게 감동하여 눈물을 흘림으로 자기들이 괴물이거나 망령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어 버렸다.
시쥐포스조차 굴리던 바위 위에 걸터앉아 오르페우스의 음악을 들었다. 복수의 여신들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이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감정, 바로 걷잡을 수 없는 연민의 정때문에 함께 손잡고 울었다.
증오와 복수와 울부짖음으로 들끓던 하데스의 명부세계는 오르페우스의 사랑의 노래에 감복하여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
결국 에우뤼디케를 오르페우스에게 인도하여 지상으로 데리고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오르페우스가 죽음을 이긴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에우리뒤케가 햇빛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는 아무리 궁금해도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켜며 앞장을 섰고 에우뤼디케는 창백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Edward Poynter, Orpheus and Eurydice, 1862,
되돌아 나오는 길은 멀었다.
오르페우스는 연약한 에우뤼디케가 험한 지하세계의 길을 잘 따라오는지 궁금했지만 꾹 참고 앞만 바라보며 길을 재촉했다.
드디어 동굴 입구 햇빛이 환히 비치는 곳에 도달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서둘러 햇빛에 들어선 오르페우스는 이제는 됐다 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가엾은 에우뤼디케는 아직 햇빛에 들어서지 못한 상태였다.
아! 하는 비명과 함께 에우뤼디케의 창백한 영혼은 지하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모든 것은 끝난 뒤였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에우뤼디케는 이 상황을 “너무나 사랑스런 당신의 모습, 너무나 달콤하고 너무나 고통스런 모습”이라고 노래하며 영원히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 만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경박함에 때늦은 후회를 하며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에우뤼디케의 혼을 붙잡으려 했으나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 장면을 바라보는 정령들은 “오르페우스, 당신은 지옥을 정복했으나, 자신의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열정에 의해 정복당했다”고 합창하며 안타까워한다.
Catherine Adelaine Sparkes, Orpheus and Euridice, 19세기,
Sarah Folkman, 2014
에우뤼디케를 잃은 오르페우스의 절망이 잘 표현된 그림
지하세계로 뒤쫓아 들어가려는 오르페우스 앞에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가로막았다.
죽은 자를 살릴 기회는 두 번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에우뤼디케를 두 번씩이나 잃은 오르페우스는 지상으로 돌아와 슬픈 나날을 보냈다.
말을 잃었고 모든 음식을 전폐한 채 이레 동안이나 들판을 헤매다가 강가에 앉아 한없이 울었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너무나 큰 비탄을 긴 리토르넬로 ‘산도 탄식하고 돌도 운다’고 노래하며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정말 이후로 여자들에게는 조금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여자들의 동정을 얻기 보다는 오히려 공분을 산 모양이다.
에우뤼디케만을 오로지 하고 자신들을 거들떠 보지않는 오르페우스에 화가 난 한 여자들은 몰려와 이 괘씸한 남자에게 돌과 창을 던졌다.
그러나 이 돌과 창들은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퍼지는 곳에서는 힘을 잃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러자 여인들은 피리와 나팔을 시끄럽게 불어대 오르페우스의 리라 소리를 삼켜버렸고 그 사이에 날아간 돌들은 오르페우스의 무릎을 꺽게했다. 단지 한 여자만을 지극하게 사랑했다는 죄로 오르페우스는 죽게된 것이다. 그래도 이 여인들은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오르페우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헤부르스 강에 그의 악기와 함께 내던졌다.
좌우지간 여자들을 조심할 일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마리 로랑생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 했다.
오르페우스의 영혼을 온통 사로잡았던 에우뤼디케는 비록 죽었지만 행복한 여인이었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이 부분은 좀 각색된다.
고통으로 쓰러져 있는 오르페우스에게 아폴로 신이 나타난다.
아폴로는 "어찌 이런 분노와 고통으로 괴로워하나?"라고 물으면서 오르페오의 손을 잡고 "노래하며 하늘로 오르자"라고 노래한다. 이때 정령들이 "가자, 오르페오여, 하늘나라로 가서 영원한 행복을 찾으라" 합창으로 하늘로 오르는 그들을 전송한다.
사랑과 괴로움, 열정과 파멸, 그리고 구원의 손길이란 인간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메시지가 텍스트와 음악과 무대의 결합을 통해 절묘하게 완성된 걸작이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우스’ 인 것이다.
어쨌든 오르페우스는 살아있는 인간에게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었던 죽음의 세계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넘나 든 까닭에 나중에 신으로 추앙된다.
바로 혼의 윤회와 응보설을 믿는 오르페우스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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