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사색

라 보엠

작곡가 지성호 2018. 8. 27. 09:22

하도 오래돼 언제던가 가물가물하지만 동네 어른들과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 일정 중에 경포대 바다를 바라보는 보헤미안이라는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아침을 하는 계획이 잡혀있었다.

당시만 해도 오늘날과 같이 커피열풍이 불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고 나는 커피를 마시면 생기는 증상 때문에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았었다

그 증상이란 단 한 잔 의 커피라도 마실라치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손이 떨리고 땀이 베어나는 흥분상태가 지속되는지라 밤을 하얗게 새야하는 아주 고약한 증상이었다.

따라서 이 우아한 계획이 여간 부담스런 것이 아니었지만 일행에 누를 끼칠 수 없어 이 촌놈 증상을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따라나섰다.

그렇게 그냥 따라나 갔으면 오죽 좋았을까.

내 잘난 채가 발동하여 보헤미안이라 했으니 그냥 커피만 마실게 아니라 보헤미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면 어떨런지요?” 제안하니 다를 아주 멋진 계획이라고 박수들 치셨다.

꺼낸 말에 책임을 지려 거의 밤을 새워 원고를 작성했고 사람 숫자대로 유인물을 만들어 스태플러 철까지 마쳐놓았다.

깜깜새벽에 출발해서 경포대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지라 텅 빈 백사장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파도가 저 혼자 갈기를 세워 몰려왔다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 허망한 일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드립커피는 알려져 있지 않았고 더구나 전설적 바리스타 박이추 옹은 아는 사람만 아는 때여서 손님은 우리뿐이 없었다.

동쪽 먼 바다의 창망한 기별이 아직은 미약한지 크지 않은 실내는 어둑신해 눈이 적응하기까지 몇 분의 시간이 필요했던 기억이 있다.

박이추옹이 원두를 갈고 진중한 자세로 드립을 시작하자 진한 커피향이 순식간에 실내 공기의 성분을 바꿔놓는 것이었다

간밤을 지새우고 새벽을 달려온 내 부석부석한 몸뚱어리의 세포들이 일제히 깨어나 환호작약하는 것이 느껴졌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토스트와 큰 머그잔 가득 진하고 검은 커피가 엷은 김을 풍기며 탁자에 놓여졌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가방을 열었다.

오 마이 갓!

당연히 있어야 할 유인물이 없는 것이었다.

일상 사용하는 구어체가 아니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어휘들로 가득 찬 내용인지라 활자를 눈으로 따라가며 진행해야 하는데 이걸 빠트리다니. 기억에만 의존하는 내 설명은 횡설수설, 엄벙덤벙 최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생애 두고두고 음미되는 치욕사건의 목록에 또 한건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음미되는 기억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뿌리칠 수 없는 커피향의 유혹 때문에 에라, 마시고 죽자!”라는 심정으로 커피를 빈속에 한 모금 넘기자 뜨거운 액체가 타고 내려가는 내 신체기관이 쩌릿쩌릿 감전이라도 된 듯 반응하는 것이었다.

, 이것 봐라!” 

처음엔 커피가 너무 진해서 그러나 싶었다

이윽고 언제 이걸 다 마시지 싶던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쯤에는 아주 기분 좋고 매끄러운 각성이 내 뇌를 스캔하여 찌든 피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쇄신과 명징함으로 채워지는 아주 괜찮은 느낌이 찾아왔다.

인스턴트가 아닌 드립커피의 신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 커피도 내 몸에 받는 것과 안 받는 것이 있구나!

뭐든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이날, 보헤미안 박이추 옹이 내려준 한잔의 드립커피는 내가 녹차를 버리고 커피로 갈아타는 마중물이 되었다.

 




이때 준비는 창대 했으나 내 부주의로 사장된 자료를 언젠간 써먹을 때가 있겠지 하다가 이제야 다시 꺼내든 계기가 전북대학교 큰사람 교육원의 강좌 때문이다

2시간씩 진행되는 10회의 강의를 2학기 개강과 맞춰 진행해야 한다.

가을은 음악 하는 사람에게 몹시 바쁜 계절이다

더구나 진척이 더딘 신작 오페라를 생각하면 마음이 납덩이같이 무거워지지만 인문학과 결합된 교양강좌는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오던 참이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니체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 맞아! 일이란 게 시작이 무섭지 시작하면 반드시 끝이 나게 되어있다구.

, 출발!


보헤미안


보헤미안(Bohemian)은 좀 싱거운 소리 같지만 보헤미아지방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코리아가 코리안이 되는 것과 같겠다. 지정학적으로 본다면 현재 프라하를 중심으로 한 체코의 서부지역이다.


체코




                                               보헤미아 지방

원래 보헤미안의 어원은 집시(Gipsy)와 관련되어있다

유랑민족 집시가 어디서부터 유입됐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분분하지만 이들이 유럽 각국에 떠돌면서 나라나 지역마다 집시들에 대한 호칭이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프랑스에서는 보헤미안, 북구와 북독일에서는 타타르, 또는 사라센인, 독일에서는 치고이너, 헝가리에서는 치가니,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에서는 히따노라고 부른단다

이 다양한 호칭사이에 어떤 계통적이거나 어원적 유사성이 없어 좀 의아하기도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라사테의 바이올린 곡, 치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은 독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치고이너(Zigeuner)는 집시, 바이젠(weisen)은 선율이란 뜻이니 곧 집시의 선율이란 말이 되겠다

이곡을 우리나라에서는 <집시의 달>이라 그럴듯하게 의역해서 부른다.

이로 보건데 보헤미안의 어원은 프랑스 사람들이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이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된다고 보면 되겠다. 프랑스어로는 보엠(Bohême)으로 표기된다.

그러나 이 지역에 집시의 밀집도가 높다고 해서 집시를 보헤미안이라 부르는 것을 여기 사람들은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집시는 유럽 사람들이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때 나치가 아리안족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40만 명의 집시를 학살한 것으로만 봐도 이들의 집시에 대한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오늘날에도 유럽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 집시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내가 20년 전, 발칸반도 불가리아에서부터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로 북쪽을 향해 홀로 여행할때도 이들 집시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춤추는 집시


그러나 실생활에선 그렇다 해도 집시들의 삶의 방식으로 규정지어진 떠도는 삶, 정열, 멜랑콜리, 에트랑제, 사랑,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은 여전히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한 예로 보헤미아 최고의 서정시인이라 불리는아돌프 헤이독은 집시들의 삶을 시로 담았고 드보르작이 여기에 노래를 붙인 것이 바로 집시의 노래이다. 드보르작도 보헤미아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에서 출생했다.


집시의 언어에는 의무소유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그들이 내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말이겠다. 소유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소유라는 말이 없으니 소유에 따르는 의무도 없을 수밖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대신 그들이 알고 있는 단어는 사랑자유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았고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대신 오로지 사랑과 자유를 위해 살았다한다

그러니 대지에 뿌리박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다가 또 어디론가 떠나는, 민들레 홀씨와 같은 정처 없는 삶이었다한다.

19세기에 이르면 이제 보헤미안이란 말은 특정 지역사람들이나 집시들에 갇히지 않고 집시적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사회적 관습과 통념에 코 꿰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일단의 노마드나, 예술가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음악학자 홍정수에 의하면 이들은 혈통을 통한 집시가 아니라 예술을 통한 집시가 된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감수성 많은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던 전혜린(田惠麟)수필을 보면 1960-70년대 학생들이나 지식인들이 동경했던 삶의 지향을 엿볼 수 있다.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만의 시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이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노래와 모닥불가의 춤과 사랑과 점치는 일로 보내는 짧은 생활, 짧은 생

내 혈관 속에는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공상해 보고 웃기도 한다.”


 -전혜린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안다중에서-

 

기왕에 전혜린 얘기가 나왔으니 전혜린이야말로 그 시대의 진정한 보헤미안이었다

전혜린은 요즘말로 하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다. 일제때부터 아버지는 고위 관료였다

하다못해 6.25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부산피난시절을 낭만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다

게다가 영민하기까지 했다.

1953년 경기여중고를 졸업한 그녀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여자에 대한 편견이 시퍼렇게 작동하던 그 시대에 그녀의 이런 이력은 당연히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뜻밖인 것이, 공부만 하는 사람인줄 알았던 그녀는 사람의 시선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지금이야 일상화 됐다지만 그때만해도 이런 모습을 보면 세상이 곧 망할 징조라고 어른들이 곰방대를 두들기며 장탄식을 할 때다

그뿐인가? 세수안한 얼굴에 아이섀도만 바른다든가, 입술 반쪽에만 립스틱을 칠한다든가, 새까맣게 때 낀 손톱으로 다닌다든가 등등. 그녀의 거칠 것 없는 행동은 파행을 넘어서는 기행이었다

그녀는 적성에도 맞지 않은 법대 3학년 때 미련없이 서울을 떠나 뮌헨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그곳 독문과에서 니체와 루 살로메에 깊게 몰입한다. 

뿐만 아니라 뮌헨의 슈바빙 지역에 흠뻑 빠진다

슈바빙은 파리의 몽마르트르나 쌩 제르맹 데 쁘레와 같은 지역 색으로 사랑, 자유, 예술, 청춘, 모험, 천재 등이 <슈바빙적>이라는 말속에 수렴된다고 보면 되겠다

전혜린의 다시 나의 전설 슈바빙을 읽어보면 그녀는 슈바빙의 안개와 가로등에서부터 더위에 이르기까지 그의 신경세포, 감각세포 하나하나 마다 깊은 인상을 간직한 정신적 고향이 된다

오늘날도 전혜린을 추억하는 한국의 보헤미안들은 뮌헨의 전혜린 코스를 순례한다고 한다



                             만추의 슈바빙 거리


그녀는 유학 시절부터 번역을 시작해 독일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 독일문학작품을 쏟아 내놓는다

아마도 누구나 그녀가 번역한 책 한 권쯤은 읽었으리라.

파비안’, ‘안네 프랑크의 일기’,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막시모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등이 있고, 특히 재독문학가인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번역해 전혜린을 대중에게 독문학자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혜린이 세상에 충격을 준 것은 그의 자살이었다.

죽기 전날 밤 10시경, 친구를 비롯해 몇몇 아는 문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그녀는 먼저 일어나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인사를 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나이31세 때였다.

그녀는 한 남자와 결혼을 했으나 이혼했었고 그와의 사이에 딸 하나가 있었고 성균관대 교수였었다

아무도 그녀가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정신의 무국적자로 남아 철저히 자기만을 탐닉하다 돌아갔다고 그녀를 평한다

그녀는 보헤미안으로 살다가 보헤미안으로 죽은 것이었다.

 



 보엠 (La Bohème)

오페라의 세계에도 바로 이런 보헤미안을 대상으로 한 오페라가 있다. 바로 푸치니의 <라 보엠>이다.

1894년에 푸치니는 작곡에 돌입하여 이듬해 12월에 작곡을 완료한다

그러고 보니 1894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해이다.

오페라 <라 보엠>원작은 프랑스의 시인 앙리 뮈르제(Henry Murger)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Scenes de la vie de Boheme>이다

이 소설 중에서 보헤미안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자기 주장이 심한 몽상가의 부류에 속하며, 이들에게는 예술이 일이 아니고 신앙이다

이들은 열광주의자들로서, 걸작을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끓어오른다

이들의 심장은 작가의 이름이나 학파를 모르면서도 아름다움 앞에서 높이 뛴다

이 보헤미안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 또는 희망을 실현시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 무사태평. 수줍음. 실생활에 대한 무지로 인한 것인지 모르지만 - 작품을 끝낸 것 만으로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일반적 인정과 행운이 갑자기 밀어닥칠 것을 기대한다

이들은 이른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고독과 수동적 저항속에 살아간다.(.....................................) 

이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의 제자로 자처한다

이 순진파들이 이해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서로를 하늘까지 치켜올리우고, 주소도 모르는 우연에 자신들을 맡기고, 서로를 돕지 않으며, 기념비의 받침대가 그들의 발 아래서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한편으로 그들은 바보스런 영웅주의 안에서 논리적이다

이들은 소리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으며 자신들이 택한 어둡고 드센 운명을 침묵으로 감수한다

이들 대부분은 과학이 그 진짜 이름을 댈 수 없는 병으로 죽는다

이 병은 고난이다.

     -홍정수 미학적음악론 85쪽에서 발췌-


이 원작의 내용을 가공하여 대본 작가 일리카(Illica)가 전체적인 틀을 잡고 아리아 부분은 쟈코사(Giacosa)가 손을 보아 썩 괜찮은 대본이 나온다

푸치니는 이 대본에 상당한 까탈을 부린다

당연한 일이지만 대본이 좋아야 좋은 곡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원작을 가지고 경쟁관계였던 레온카발로를 따돌릴 수 있었던 요인이 바로 이 대본에서 성패가 갈렸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레온카발로는 원작에 충실한 대본을 가지고 먼저 <라 보엠> 작곡에 착수한다

레온카발로는 이 오페라가 자신의 출세작 <팔리아치>보다 더 히트할 것이라고 기대에 들떠 있었다

그만큼 원작의 스토리가 오페라의 성공을 담보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레온카발로는 이 일급 영업 비밀을 경쟁관계에 있는 푸치니에게 발설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후의 오페라 사는 다시 써졌을 것이다

레온카발로는 어리석게도 자기가 새로 쓰기 시작한 오페라의 스토리가 얼마나 기가막힌지 푸치니에게 자랑을 실컷 해버렸다

푸치니를 경쟁자로 생각하기보다 친한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러나 푸치니는 다르게 생각했다. 친구가 제공한 원작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자기도 오페라를 쓰기로 작정한다

똑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두 사람의 작곡가가 서로 작곡을 시작한 것이다

마음이 급한 푸치니는 대본이 반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작곡을 서두른다

결과적으로 작곡완료시점을 레온카발로보다 1년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

이러한 선점이 승패를 가린 측면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영리한 푸치니는 원작에 매이지 않고 좀 더 관객의 정서에 맞게 가공을 해 성공을 거둔다

오페라는 예술성도 중요하지만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관계로 흥행도 되어야 한다. 태생부터가 그렇다

이 점이 예술의 절대성에 깊게 천착하는 리트의 세계와 다른 점이다

레온카발로의 작품은 음악적인 면에서도 더 현대적이고 드라마틱하다며 평론가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지만, 그건 평론가들의 입장이고 대중은 푸치니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열광하여 푸치니의 손을 들어준다

한 원작에서 출발한 두 가지 버전의 오페라 <라 보엠>이 각각 초연된 지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전문가 아니면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다

우리나라 오페라 관계자들이 이 지점에서 곰곰 음미해봐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페라<라보엠>의 주인공들은 가난하고 불편한 변두리 쪽방촌의 삶을 살아간다.

1830년대 파리의 라탱(Latin) 지구. 

세 사람의 예술가와 한 사람의 철학가가 다락방에서 공동생활을 할 정도로 이들의 가난은 심각하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시인 로돌포는 추위에 떨며 자기가 쓴 드라마 원고를 난로에 구겨 넣고 불을 지핀다

장작 살 돈 조차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밀린 집세를 재촉 당하지만 이에 기죽지 않고 이브 날을 보내기 위해 카페 모뮈스 Momus’로 떠들썩하게 몰려간다.

가난도 멀리 도망갈 수밖에 없는 기쁜 우리 젊은 날이 아닐 수 없다.

친구들을 먼저 내보내고 잠시 혼자 방에 남아 원고를 마치려던 로돌포에게 이웃에 사는 처녀 미미가 문을 두드린다

촛불이 꺼져 불을 얻으러 온 것이다

불을 붙여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던 미미는 열쇠를 잃어버렸고, 공교롭게 바람 때문에 촛불까지 다시 꺼져버린다

로돌포는 당연, 하늘이 내린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열쇠를 찾는 척 더듬다가 미미의 손을 잡으며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을 노래한다.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


이 조그만 손이 왜 이다지도 차가운가,

내가 따듯하게 녹여 주리다.

(열쇠를) 찾아보지만 어쩌시겠어요?

캄캄한 어둠 속에선 찾을 수 없어요.

 

다행히도 달밤이어서,

여기 달빛이

곧 비쳐 드니까.

기다려 주세요, , 아가씨,

두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가 무엇 하는 사람이고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말해도 되겠지요?

 

내가 누구냐? 누구냐고요?

나는 시인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면

그래도 살아갑니다

 

거칠 것 없는 가난한 생활이지만

시와 사랑의 노래라면

임금님처럼 사치스럽습니다.

꿈과 환상으로

하늘에 그린 궁성에서

마음만은 백만장자입니다.

 

이따금 내 금고에서

보석을 도둑맞습니다.

2인조에게, 아름다운 두 눈이라는 도둑이.

 

지금도 또 당신과 함께 들어와

내 늘 꾸던 꿈은

아름다운 꿈 모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립니다.

허나 도둑맞은 것은 조금도 슬프지 않아요.

 

대신 두고 갔으니까

희망을!

 

이제 나에 대한 것은 알았을 겁니다.

, 이젠 당신 이야기를 해주세요.

당신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겠지요!

  

뭐 이런식으로 수작을 부린다.

가사가 무슨 서정성이 있다거나 아름답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굉장히 설명적이다

그러나 푸치니의 마력의 손을 거쳐 음표로 바뀌는 순간

죽어있는 활자는 꿈틀꿈틀 살아 움직여 가난하지만 꿈꾸는 청년의 무지겟빛 사랑이, 그 기대가. 크리마스이브의 설레임보다 더 설레다가 드디어는 la speranza! (희망을!) 이란 부분에서 하이 C 의 페르마타로 폭발하고야 만다.

객석의 청중은 바로 이 부분에서 숨죽이며 긴장하다가 그 절정의 극점에서 난데없이 엄습하는 한기에 몸을 떨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는 벌떡 일어서기도 하고 누군가는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이 C의 음역은 세상의 모든 테너들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지만 그 비밀의 길을 찾을수 없어 소수의 축복 받은 테너만이 오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영역이다

그 바로 반음 아래 B음 까지도 무난한데 마지막 반음의 허들을 넘지 못해 낙마하는 테너도 많다.

하이 C는 그래서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니다. 이 세상을 초월한 저 세상의 소리이다

하이 C 가 오페라 극장의 그 광활한 공간을 점령하는 순간, 권태와 불신과 미움은 다 사라지고 

청중은 그 황금빛 빛나는 세계의 영적 충만함으로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  


 Che gelida manina /Roberto Alagna




가난한 시인이 간청하는 절절한 사랑에 외로운 미미가 어찌 거절할수 있겠는가.

미미의 답가가 이어진다.


 내 이름은 미미 (Si, Mi Chiamano Mimi)


.

제 이름은 미미라고들 부릅니다.

허나 사실은 루치아입니다.

제가 이야기할 거란

조금 밖에 안 됩니다, 수를 놓는 일뿐이에요,

주단이나 명주에, 집안에서나 밖에서요.

아무 스스럼없이 즐겁게.

그 일에 지치면

장미나 백합화를 만들지요.

좋아하는 것이란

마음을 빼앗는 듯한 힘이 있고

사랑이나 봄에 대해 이야기하며

꿈과 환상을 그려내는 등,

소위 시라고 하는 것이에요.

아시겠어요?

()

사람들이 미미라고 부릅니다만

그 까닭은 모릅니다.

홀로 내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미사를 드리려 교회에 가진 않으나

기도는 자주 합니다.

혼자 살아갑니다,

저쪽의 희고 조그만 방에서.

지붕 위로는 하늘 밖에 보이지 않지만

봄이 올 때면

햇빛은 맨 먼저 나를 비칩니다.

이른 봄이 맨 먼저 내게 입맞춤합니다.

제일 먼저 해 빛은 나를 비춥니다.

화분의 장미가 눈을 뜨면

잎사귀 하나하나를 지켜보죠.

얼마나 우아한

꽃의 향기인가.

그러나 내가 만드는 꽃에는

내가 만드는 꽃에는

없어요, 향기가.

그저 이 정도입니다,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웃이면서,

이런 시간에 폐만 끼쳐 드렸군요.




 Si, Mi Chiamano Mimi/ Angela Gheorghi


'미미가 만드는 꽃에서는 향기가 없다'라는 대목에서 미미의 비극적인 운명이 예감되기도 한다.

아래층에서 친구들이 내려오지 않는 로돌프를 재촉하지만 로돌프는 사랑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이 때를 놓칠 수 없다.

로돌프는 한걸음 더 바짝 미미에게 다가간다.


오 사랑스런 아가씨 (O Soave Fanciulla)


로돌프- 오 사랑스런 아가씨

부드러운 달빛에 둘러싸인 사랑스러운 얼굴이여...

그대로 인해,

늘 내가 꿈꾸어 왔던 꿈을 이루었어요!

미미- ! 당신이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요

사랑으로 이끌어요

로돌포- 영혼은 이미 전율하고.... 이 달콤한 환희여

영혼은 이미 전율하고.... 달콤한 환희여

달콤한 환희로 전율하고

키스 속에 사랑이 떨려오네!

미미- ! 그의 마음이 부드럽게 내 마음 속에 스며드네

오직 당신만이 사랑으로 이끌어 줘요!

(로돌포, 미미에게 키스하려고 한다)

미미- 안돼요, 제발!

로돌포- 당신은 나의 것!

미미- 친구들이 기다려요

로돌포- 벌써 날 보내려고 하나요?

미미- 하고픈 말이 있는데 용기가 나지 않네요...

로돌포- 말해요...

미미- 당신과 함께 가도 될까요?

로돌포- 뭐라구요? 미미!

아늑한 이 곳에 머무는 게 어때요, 밖은 추운데...

미미- 당신 옆에 있을께요!(따뜻하게 해 줄께요)

로돌포- 돌아올 때는..?

미미- 글쎄요!

로돌포- 내 팔을 잡으세요, 나의 작은 아가씨

미미- 뜻을 따를께요, 나으리(signore)!!

(함께 밖으로 나간다)

로돌포-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미미- 당신을 사랑해요...!

(미미와 로돌포, 나가면서)

함께- 사랑, 사랑, 사랑....! 

 

맨 마지막 Amor, Amor. Amor 부분은 통상 무대 뒤로 사라지면서 부른다

친구들이 기다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이 로맨틱하기 그지없는 장면에서 우리는 모두 사랑의 환상에 넋을 잃게 된다.

그래 그런지 세계적인 가수 '로베르토 알랴나 Roberto Alagna''안젤라 게오르규 Angela Gheorghiu'는 이 공연을 같이 하게 된 인연으로 결혼하기까지 한다.



 O Soave Fanciulla /Jonas Kaufmann & Kristine Opolais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두 사람 사랑의 급격한 진전을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운명적인 사랑이기 때문인지 계기가 만들어진 한순간에 마법처럼 사랑이 이루어지는 모습이 어째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실은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도 없기 때문에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바로 사랑을 시작하는 사회 계층을 그려낸 장면이기 때문이라고 애써 변호하기도 한다

보헤미안의 속성이 그렇다는 말이겠다

일견 고개가 끄덕여 지기는 하나 실제적으로 오페라는 2시간에서 3시간사이에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야한다

우리나라 연속드라마처럼 시시콜콜하게 늘여 나갈 수 없다

과감한 생략과 압축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오페라 <라보엠>에서는 로돌프와 미미의 청순하기 그지없는 사랑 반대편에 화가 마르첼로와 거리의 처녀 무젯타 와의 현실적인 사랑을 대비시켜 극적인 효과와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후의 줄거리는 굉장히 슬프고도 비극적이다.

로돌프와 미미의 사랑은 지속되지 못하고 위기가 오고 만다

친구 마르첼로가 미미와 헤어져 술집에 잠들어 있는 로돌프를 찾아가자 로돌포는 미미가 바람기가 있어 정리해야겠다고 말하지만, 내막을 잘 아는 마르첼로는 맘에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제야 로돌포는 진실을 밝힌다

사실은 자기와 함께 살아서 미미의 폐결핵이 더욱 악화일로인데, 자신은 미미의 치료는 고사하고 체온을 지킬 장작조차 살 수 없어 마음이 무너진다는 얘기였다.


세상에 사랑이 깨지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사랑을 잃으면 둘만의 체온으로 따뜻했던 둥지는 버려진 슬픈 추회의 섬으로 변한다.

화인(火印)처럼 내 몸에 각인된 사랑의 기억처럼 괴로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나 궁핍 때문에 그 사랑이 죽어 가는데도 속수무책이라면 억장이 무너지는 자책과 고통이 수반될 것은 자명한 일.

로돌프는 미미의 곁을 도망친다. 차마 볼 수 없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술에 의지해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로돌프의 사랑은 열정은 있었으나 헌신은 부족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관계에는 책임이 따른다

무책임! 이것 또한 보헤미안의 특성이다

이것이 예술가의 다른 이름인 보헤미안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한편으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을 떠나 예술가의 운명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예술가는 그의 예술이 생전이나 사후에 인정받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얻게 되는 예술적 성취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그런 운명의 소유자들이다

누군가는 베토벤을 인류를 위해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에 비교했다

그 대가로 베토벤은 현실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화가 모딜리아니가 자꾸만 떠오른다.

마침 모딜리아니가 활동했던 시점과 오페라 <라 보엠>이 만들어지고 공연되는 시점이 중첩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부르조아 출신이지만 파리의 몽마르트에 진출해 그만의 독특한 화력을 구축한 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르의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며 가난한 예술가의 아이콘이 되었다

모딜리아니도 결핵환자였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자포자기로 스스로 몸을 학대했다

술과 마약, 니코틴에 탐닉했고 그 중독에 시달렸다

그가 죽기 3년 전인 1917년. 19세의 미술학도 쟌느 에뷔테른을 알게 된다

쟌느는 모딜리아니에게 매료돼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뛰쳐나와 모딜리아니와 동거에 들어갔다.

둘은 난로에 불을 지필 수조차 없는 지독한 궁핍에 시달렸지만 깊은 사랑으로 결속하여 작품에 매진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모딜리아니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 춥지 않다고 했고 그런 모딜리아니를 바라보며 모델을 해 주던 쟌느는 옷을 입지 않아도 춥지 않다고 했다. 잠을 잘 때는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둘은 꼭 끌어안고 서로 온기에 기대었다.” 


이 부분을 읽노라면 참으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둘 사이에 딸까지 가진 쟌느에 대한 사랑과 가장으로서의 책무, 화가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내가 늘상 말하는 예술을 쫒아 가면 생활이 안 되고 생활을 쫒아 가면 예술이 안 되는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더구나 쟌느와의 사랑은 뜨거울수록 모딜리아니로 하여금 더욱 술과 마약에 의존하게 했다

이게 바로 로돌프가 겪는 상황과 동일한 심리상태이다

미미를 사랑하지만 병으로 죽어가는 미미를 속수무책 지켜봐야 하는 고통과,  

쟌느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모딜리아니의 고통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 괴로움 때문에 모딜리아니는 술과 마약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모딜리아니는 실제 현실이고 로돌프는 가상이라는 것뿐이다

현실과 가상이 같다는 것은 그것이 보헤미안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기 시작한 지 3년째인 1920124

36세의 모딜리아니는 사랑하는 쟌느 앞에서 피를 토하며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 쓰러져 세상과 결별한다

쟌느는 죽은 모딜리아니의 입술에 산사람에게 하듯 그렇게 오래도록 키스를 한다

쟌느는 이틀 뒤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로 모딜리아니의 뒤를 따랐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겠어요."라는 말을 남긴 채

뱃속에는 8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


나는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를 접했다.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누드'(Nu couche)가 경매에 나왔다

낙찰 예상가는 15000만달러, 1620억원에 달한다.“

https://news.v.daum.net/v/20180425143328237




사용가치 보다 교환가치로 환치되는 게 자본주의의 거래방식이라 하지만 1620억이란 액수는 현실감이 없다.

한 예술가의 궁핍과 사랑과 슬픔과 눈물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인다

모딜리아니의 묘소에 새겨졌다는 비문(碑文)이 내 가슴에 골 깊게 새겨진다.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모딜리아니, 열정의 보엠  앙드레 살몽 저 / 강경 역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어떤 사람은 화가중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라 말하기도 한다




쟌느 에뷔테론(Jeanne Hebuterne 1898~1920)


 

, 다시 오페라 <라 보엠>으로 돌아와서 어쨌든 미미는 끝내 결핵으로 죽고 만다

친구들보다 늦게 미미의 죽음을 알게 된 로돌포는 미미의 이름을 부르며 서럽게 운다.


나 어릴 때만 해도 폐결핵은 지금의 암보다 더 무서운 불치의 병이었다

내 성장기의 우리 집은 언제나 약을 달이던 냄새가 배어있었다

결핵을 앓는 형 때문에 어머니는 몸에 좋다는 모든 비방을 쫓아다니셨다

라 트라비아타도 그렇고 비극적 작품의 주인공은 대개가 결핵환자로 설정된다

핏기 없는 여윈 얼굴에 미열로 홍조 띤 애잔한 모습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더할 나위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격렬한 기침 끝에 하얀 손수건에 밭아내는 붉은 피 선연한 각혈은 어찌 보면 천편일률적이어서 식상하기 조차한다

그러나 오페라 <라 보엠>의 극적 설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들려지는 음악은 이 클리셰를 뛰어넘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려주기에 충분한 주옥같은 곡들이 즐비하다

앞서 1막에서 언급한 <그대의 찬손>, <사랑스런 아가씨>, <무제타의 왈츠>, <미미의 이별노래>, <외투의 노래>, <미미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라 보엠>에서 가장 처연하고 애잔한 로돌포와 미미 의 <이별의 2중창>, 무제타와 마르첼로의 목소리가 더해지는 <이별의 4중창>까지.

 

                       라 보엠 초연 포스터 

 

위의 포스터를 보면 대본가 둘의 이름과 전면에 도배하다시피한 작곡가 푸치니의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창작오페라는 대본가 뿐만이 아니라 작곡가 이름도 홀대받는다

어떤 경우는 유령이 작곡했는지 그냥 창작오페라라고 한다

그대신 오페라 단장의 이름은 주목받는 위치에 큰 폰트로 절대 빠트리지 않는다.



푸치니가 활동하던 시대를 오페라사 에서는 베리스모(verismo; 사실주의) 의 시대라 말한다

대략 1890년에서 1910년까지의 20년간이다

신화나 성경속의 영웅들처럼 특별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그리고 그들의 사랑, 격정, 절망, 배반 등의 감정을 가공하지 않고 날것으로 오페라화 했다

지금은 더블 빌로 묶어서 같이 연주되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가 그것들이다

그러나 푸치니는 같은 시대에 활동하면서 구시대적인 슬픈 사랑 이야기와 서정적인 멜로디로 승부를 걸어 성공한 작곡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 6장에서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을 통하여 감정을 카타르시스(catharsis)시킨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비극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비극을 통해 나의 운명을 깨닫게 되고, 그 비극을 바라봄으로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포를 배설해 버린 채후련해진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게 된다


마치 화장실을 나서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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