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태어난 날, 신생아실 유리벽을 사이에두고 강보에 싸인 빨간 너의 얼굴을 바라봤을 때
우주의 여러 별들을 전전하다 지구에 갓 도착한 어린왕자를 생각했었다.
넌 긴 여행에 지쳤는지 곤한 잠을 자고있더구나.
그러구 오늘, 네가 드디어 100일이 되었다.
이 100일 앞에 ‘벌써’나 ‘어느덧’이란 말을 덧붙일 수 없는 게
하루, 이틀이 한 이레, 두 이레가 되고 한 달, 두 달이 되는 과정이 마냥 더디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란다.
내가 겪는 세월의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데 너의 성장을 지켜보는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가는 이 모순은 뭐랄까, 농부가 아침마다 밭에 나가 싹을 틔운 작물을 바라보는 심정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구나.
아직 실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새싹은 얼마나 연약하니?
목말라도 안 되고 너무 습해도 안되고, 매일 매일 정성으로 가꿔도 자라는 속도는 언제나 제자리이고.
이 100일 동안에 어설프고 서투르기만 했던 너의 엄마와 아빠는 육아의 달인이 되고
우린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말이 익숙하게 돼버렸구나.
그동안 보내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너의 여러 표정과 동작에 미소 짓고 신기해하던 할미와 할애비는 이제야 너의 앙징맞은 손과 발을 잡아 보고 너를 품에 안아보는구나.
너를 처음 안을 때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스럽기도 했단다.
혹시라도 너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얼마나 조심스런지 땀이 다 나더구나.
나는 네 아빠를 키웠지만 아무 기억도 없고 처음으로 아기를 안아보는 사람이 돼 버렸단다.
내게 안긴 너의 육신은 너무나도 연약하여 할애빈 이 어린 것에 대한 무한한 연민이 앞서더구나.
너의 단 내 나는 살 내를 맡고 너의 팔딱이는 심장과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나는 거룩한 섭리의 자장에 정화되어 숙연해 졌단다.
이 어린 생명은 어데서 왔을꼬?
너는 내품에 안겨 잠이들었고 난 너의 그림같은 얼굴에 현혹되어 너의 눈썹과 눈과 코와 인중과 입술을 보고 또 보았단다.
세상의 모든 아비들은 먼 옛날부터 그렇게 눈물겨운 어린 것을 품에 안음으로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비로소 아비가 된다.
아비는 어린것의 꼼지락 거리는 손가락과 옹알이와 배냇짓과 힘차게 젖 빠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비의 마음을 스스로 간직하고 말없이 평생을 아비의 길을 걷는다.
그것은 모든 거룩하고 숭고한 것들이 그렇듯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니에 넋이 빠진 할애비
깊게 잠든 이니의 표정은 잔잔하지만 변화무쌍하다.
때로는 방싯거리고 때로는 움찔하고 때로는 찡그리기도 한다.
네가 여기까지 거쳐온 먼 길에서 마주친 기억들이냐?
마치 잔잔한 수면에 구름이 지나가며 갖가지 그림을 그리는 것 같구나.
이 할애빈 너의 앞날이 순탄할 것을 바라고 또 바라며 축수하지만
세상의 이치를 짐작하는 할애비로선 오히려 굴곡지고 비탈진 인생길에서
쉬 절망을 배우지 말고, 비겁을 배우지 말며, 걸어야 할 인간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길 바란단다.
만약 네가 우뚝 서야 할 자리라면 그 자리는 인간의 보편적 선과 정의에서 어긋남이 없는 자리가 되어야한다.
모쪼록 너의 존재가, 너의 성장이, 할애비와 가족의 기쁨이 되고 웃음이 되고 행복이 되길 바란단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이니야!
이니의 백일을 축하하는 양가 가족
할머닌 그저 좋아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으앙! 졸려요!